#36 일상과 이상
일상과 이상 (우다이푸르)
일상과 이상 사이
이해하려는 것과
이해받고 싶은 것
하고 싶은 말을 듣고 싶은 것과
듣고 싶은 말을 하고 싶은 것
보는 것과 듣는 것 느끼는 것들 사이에
알 수 없는 무수한 것들의 틈들이
살갗을 스치고 지나가다
이것은 이거고 저것은 저거다
겸허히 받아들이면
그것은 그것만의 고유한 것이 되고
이것은 이것만의 유일한 것이 된다
그냥 바람이 되고 물이 된다는 건
일상과 이상은 같으면서 다르다는 것
이해하려 들지 말고 이해받으려 하지 말 것
러시아 럼주
마약처럼 마법처럼
쓰디쓰고 독하디 독했지만
알 수 없는 따뜻함의 모유와도 같았다
지도상 제법 북부
하루 사이에 계절이 바뀌다니
하나의 나라에 몇 개의 계절은 몹시도 당황스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지난밤 대비책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함은 굴욕적
그냥 버스 타고 쉼 없이 올라왔을 뿐인데
방문과 창문 틈틈 사이로
따뜻한 공기를 밀어내고 원래의 자기 자리처럼 스산히 눌러앉았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그간의 죽일 놈의 모기들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는 것
어제의 모기와의 복수혈전은 한여름밤의 꿈만 같았다
내가 안식을 구할 수 있는 오지 마을은 아니지만
앞전의 대도시들과는 전혀 달라 이색적인
아니 이 곳만의 느낌이 매력이 물씬 풍기는 우다이푸르
충분히 끌리는 도시임에 분명하다
배낭 깊숙이 넣어둔 긴팔 옷들을 꺼내 입고 아침 마실을 나선다
살결에 부딪히는 이 곳의 공기는
이전과의 느낌과는 달랐고
현지인들의 옷 차림세는 가을에 적응 중이었다
작은 골목골목
영업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들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고 살맛이라는 게 난다
조금은 이른 시간이었을지 몰라도
대부분이 상업에 종사하고 그 외의 직업군은 릭샤 정도
거닐다 보이는 풍경들
누군가에겐 식수고
누군가에겐 빨래터고
누군가에겐 샤워장이고
누군가에겐 그저 그런 산책로
나쁘지 않아 보이는 작은 레스토랑
아침을 하는 동안 많은 인도인들이 강에서 목욕을 했다
고지식하고 아주 작은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이곳에선 인도에선 너무나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일
이해할 수가 없는데 이해하려고 하니
머릿속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일
그들의 삶과 역사를 그저 받아들이면 될 일들을
나는 이상과 일상 속에서 자꾸만 합리화를 시키려는 일
별로 두르지 않은 옷으로 지저분한 강속으로 다이빙을 하고
몸을 헹구고 그 옷을 벗어 세탁을 그리고 탈수와 볕에 너는 것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는 그들에게
겸허히 박수를
그저 대단하다는 생각과 그들의 삶을 인정하고 그대로 바라볼 것
우다이푸르는 호수의 마을답게
바다만큼 커다란 호수를 끼고 골목골목들이 발달되어 있다
끊임없이 미로처럼
그리고
유독 한글이 눈에 많이 띈다
한국인의 배려 일련 지는 모르지만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도 한다 현지인이
조금은 당황스럽지만 어색하지 않게
안녕하세요
분명 무슨 일이 있었을 게다
라오스의 꽃청춘과
그리스의 꽃할배 같은
한 가지의 바램이라면
그만의 고유한 색이 바라지 않길
그로 인해 언젠가 다시 당도했을 때
그때의 기억들이 되살아나길
코딱지만큼 작은
대한민국을 알고 이야기한다는 것
뭐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한참을 동네 구경 삼매경에 빠져 돌아온 숙소
한국 여행객 4명이 앉아서
그들은 한식을 시켰고
이 곳에서 만난듯한 그들의 많은 이야기 속엔
여행책들처럼 좋은 풍경과 좋은 이야기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허세와 허풍이 난무했고 환상에 빠져있는 듯했다
(인도를 와봐야지 여행했다고 하지 뭐 이런.. 이 또한 상품의 하나 같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인사는 하지 않았다
주문을 받은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티비를 틀며 무비?? 하길래 오케이 오케이
"김종욱 찾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중에 한편
이 영화를 정말 인도에 와서 보게 될 줄이야
생각지도 못한 꿈만 같았다
감동이다
인도 조드푸르가 배경인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인도라는 나라가 참 궁금했고
2번 3번 횟수가 늘어 갈 때면 영화의 장면들과 대사가 생각이 났다
"도대체 인도가 뭐길래 10년을 기억하냐구요
그 여자는 십 년 전에 갔다 왔대요. 혼자 그런데 그런데 대체 그게 뭐길래
거기 사람들은 어떻고 그 냄새는 어떻고 분위기는 또 어떻길래 대체 못 잊겠다는 건데요?
대체 그게 뭐길래 십 년 씩이나 잊혀지질 않냐구요."
극 중 주인공의 대사
그 사람을 참 좋아하나 보다
그 사람을 참 그리워하나 보다
그저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것은 나에게
인도라는 나라는 대체 어떨까
보지도 듣지도 관심도 없던 내게
참 좋아하게 되었고 참 그리워하게 되었다
기회라는 것이 나에게 다가온다면
그것을 놓치지 않고 꼭 한번 만나 보고 싶다고
일상과 이상은 언제나 항상 공존했다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는 확연히 너무나 완전히 달랐다
영화는 영화였고
인도는 인도였다
생각만큼 나쁘지도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다
솔직히 인도에 무엇이 있는 건지
내가 왜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또 멍하니 영화를 보다 끝난 시간이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점심을 놓쳐버렸다
간식이라도 먹을 겸
아침에 갔던 레스토랑(현지인들이 다이빙을 하던 바로 옆 레스토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름과 상호가 같다
리틀 프린스, 어린 왕자
작은 피자를 시켜서 해 질 녘까지 앉아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건 기적이야."
내가 좋아진 곳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는 건 기적일지도 모르겠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작은 서점을 지나치는데 어린 왕자가 보였다
나는 여행을 다니다가 생긴 이상한 버릇 중에 하나가
읽지도 못할 그 나라 언어의 어린 왕자를 사 모은다는 것
책갈피로는 그 나라 지폐로
그럼 여행의 반은 성공한듯한 기분
보물을 찾았다
정말 정말 멍만 때리다 끝이 난 하루
꼭 그러고 싶은 날이 있다
쉼표 같은 하루
일상과 이상이 교차하던 하루
모든 게 있지만 모든 게 없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