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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어부 Mar 08. 2017

인도를 노래하다

#45 그중에 델리를 만나

그중에 델리를 만나 (델리)


수많은 도시들 중 델리를 만나

서로를 알아 보고 꿈도 꾸었지만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에

모든 것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에

모든 것들을 색안경을 끼고 보았다

분명 그중에 아닌 게 아닌 것들이 존재할 것인데

아닐 것이라고 하던 절대적인 생각에

나는 기적이라는 것들을 스쳐지나 버렸고

나는 운명이라는 것들을 스쳐지나 버렸다

그저 그것이 맞다고만 생각했다








델리라 하여 긴장하였는지

지난밤 꿈에 내가 릭샤꾼이 되어있는 걸 보고

화들짝 놀라 깬 뒤

뒤숭숭한 것이 웃으며 일어날 수 없었던 델리행 기차 안


조금의 부스럭 거림에도 

눈이 떠지는 자동 조건반사


큰 배낭과 작은 배낭을 오픈된 곳에 두고 잔다는 것이

어지간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시간상으로 

충분히 잔듯한데

잔 것 같지 않고

안 잔 거 같은데 

잔 것 같은

잠과의 밀당


밀고 당기기는 모든 것들은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주 약간의 분주함에 

또 한 번 반사적으로 눈이 떠짐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누군가 읊조리듯 올드델리 올드델리 하더니

뭐라는 거야 하며 주윌 사람에게 물어보니

올드델리에 도착했는데 곧 떠난다는 말에 부리나케

신발을 신고 배낭에 배낭을 짊어졌다


급하게 챙기느라

눈을 떴지만 정신은 아직도 차리지 못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헐레벌레 뛰어내리듯 도착을 했다

델리에


델리에 한 번도 와본 적 없지만 와본 적 있는 듯

익히 들어 잘 아는 도시가 되어버렸다


여행을 하며 만난 모든 친구들이 낭패를 보았고

모든 못된 짓을 당한 곳이 바로 델리였다

(샤샤는 이곳에서 노트북과 자그마치 USD 3천불을 빼앗겼다고 했다)


입국을 할 때에 델리가 아니라 뭄바이라

나에겐 뭄바이가 델리나 다를 게 없겠다

아니 그간에 몹쓸 대도시들도 충분히 나를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델리는 델리겠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

날카로운 신경에 조금 더 날을 세웠다


역에서 터미널까지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으며

그간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열거하자니 혈압만 오를 뿐이었다

(하나하나 다 간섭에 모두가 등에 빨대를 꽂으려 했고 뭉쳐있는 놈들의 눈들은 흡혈귀처럼 보였다)


인도

그중에 델리를 만나

나의 영혼은 육체를 이탈한 지 오래며

초싸이언인 3단계에 쉽게 올랐으며

한 나라의 수도에 그 흔한 레스토랑 하나 보이질 않았고

그 흔한 외국인 하나 보이질 않는다는 것에

더 한 예민함이 미궁으로 빠졌다


아주 약간의 공황과 더불어 배고픔에 눈이 멀어가기 시작한다

얼굴에선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것이 흐르고

궁극의 짜증스러움이 몰려와 지쳐 쓰러지기 직전에

작은 골목에서 허름한 짜이집을 발견했다

피어오르는 작은 연기가 사막의 신기루처럼 사라지지 않길 바라며

뛰고 또 뛰었다


개부럽

무언가가 밀려오는데

그 감정이 무엇일까 생각을 해봐도

알 수 없는 짙은 메아리로 돌아왔다


개 허무함


집주인의 개였을까

이 동네 개 깡패였을까


사람이 앉아 있어도 모자랄 공간에

개자식이 일광욕과 함께 개꿀잠을 자고 있다


참 너는 가질 것도 바라는 것도

아니 없고 

세상 어디든 누우면 잡이니 

참 개 좋겠다 

개 부럽다

개 같은 상황

개 같은 잡생각뿐이었다


개 같은 장면에 개부러움으로 개 상식을 깨트린 개 녀석

그중에 델리를 만나서 더 개탄스러웠다


아주 약간의 당을 충전하고선

거닐었던 시간이 어언 2시간 더 지나있었다

미로에서 헤매는 듯

나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레스토랑은 끝내 찾지 못했지만

뜻밖에 시간 때우기 참 좋은 극장님을 영접했다

(과자 부스러기라도 먹으면 되니 나쁘지만 않았다)


크리스마스 때 세계 동시 상영이라도 하는 듯 

스타워즈 포스트가 있었지만


별들의 전쟁


이것은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면

얼마든지 다시 볼 수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과감히 버렸다(만에 하나 친절하게 영어자막을 깔아 주더라도 난 이해 못할 것이니...)


세계 영화 제작률이 할리우드를 가볍게 누르고 있는 인도의 발리우드

또다시 인도영화를 선택했다(포스터가 우선 마음에 들었지, 쌈빡했어)


지난번 뭄바이에서 실패한 인도영화(아주 병맛의 영화 너무 병맛이라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이번엔 끝까지 봐야 하는 의무감 같은 게 생겼다(시간이 너무 많이 남은 탓이기도 했다)

델리를 만나 할 것이 없었으므로 

포스트만보고 전쟁영화인 줄 알았던 그 영화

굉장히 집중했다

몰입했다


멜로 영화다

영어자막 따윈 없는

이기적인 인도영화

이기적이던 인도영화는 친절하게도 중간에 쉬는 타임까지 줬다

배려가 깊다

충분히 흐름이 끊어진다


전반전과 휴식타임이 끝이 나고 후반전 상영을 다시 시작한다


여전히 자막은 없고 알아들을 수 없는 힌디가 난무한다

느낌적인 느낌에 스토리가 꼬일 때면 갑자기 춤을 춘다

발리우드의 매력일까(춤의 근원은 나도 모르지만 아이덴티티는 확실했다)

에너지가 넘친다

빠져든다



문득

이런 식의 영화를 보는 것도 나쁘지만 않았다

대사와 자막이 없으니

나에겐 무언극이나 다를 게 없었고

내가 제작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나도 시나리오 작가가 될 수 있겠다며

혼자 낄낄 거리며 영화를 만들어 봤다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났다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던

나쁘지만 않았던 영화였던 것 같다 

애잔함도 있었고 사랑도 하려면 당당하게 멋있게 해야 한다며

부러움도 샀다


나는 겁이 많고 비굴하기 짝이 없는 남자라 

내심 부럽기도 했다


오랜 잔향이 남았다



겨우 트렌스퍼 차 들리는 것인데도

지루하기가 끝이 없다

맥그로드 간즈행 버스는 4시간이라는 시간이나 남아있다


때 늦은 점심은  피자집 앞에서 나눠주는 쿠폰을 받아

 + 1 Free로 삽시간에 2판을 증발시켜 버렸다


순식간에 사라졌기에

어디로 갔는지 나도 알 수가 없다


갈 곳이 없어 가고 싶은 곳도 없어

죽치고 앉아 있자니 눈칫거리가 장난이 아님에

옆집 맥도날드로 이사를 했고

또다시 미친 듯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델리

이름 참 달달한데

현실은 참 씁쓸했다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게

이렇게 힘이 든다라는 것이

참으로 나는 몰랐다

그리고 그 긴 기다림도 끝이 난다는 것도

참으로 늦게 알았다



밤 8시


맥그로드 간즈행 버스

12시간을 곡예하듯 낭떠러지를 달린다고 한다


이럴 땐 밤이라 차라리 다행이다라는 것


장거리에 취약한 나에겐 분명 고통스럽겠지만


작은 바람이 있다면

일출이라는 시간에 맞춰 눈이 떠진다면

새하얀 히말라야의 작은 설산들 사이로 빛이 나에게로 쏟아진다면

지루하고 비루하기 그지없던 델리의 모든 순간들이

눈 녹듯이 사라질 것만 같은데

간절히 바라고 바라다보면

이루어지겠지?


오늘 하루도 그 험난하다는

달콤함의 탈을 쓴 델리라는 큰 산을 무사히 넘어

다행이다


수고했어 이제는 날을 조금 무디게 놔둬도 될 것 같아

조심스레 눈을 감고 깊은 잠을 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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