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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어부 Mar 10. 2017

인도를 노래하다

#46 살다가

살다가(맥그로드 간즈)


살다가 한 번쯤은 돌아갈 수 있을까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 사이로

영원을 바라는 사람들 사이로

산기슭 산기슭마다

별처럼 빛을 내며 사는 사람들

언젠가 그들이 발하는 빛처럼

내 마음에도 별 하나 간직할 수 있는

그곳으로 

언젠가 다시 한번

돌아갈 수 있을까







염려와 다를게 하나 없었던 장거리


델리와 멀어짐과 동시에 창이 뿌옇게 흐려지더니

어디론가부터 흘러나온 콤콤하고 퀴퀴한 냄새로 가득 찼고

분명 창이 없는 버스임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자꾸만 차가운 바람이 느껴졌다

기분 탓인지 으슬으슬한 게 무릎이 시리고 발가락에 감각이 무뎌지는 것만 같았다


시간의 흐름이 더디다


얼마나 지나갔을까


흐느적거리는 힘없는 목과

말도 안 되는 급작스런 추위와의 전쟁

그것만으로도 부족했던 것일까

비포장 도로와 허접하다 못해 대충 만들어 놓은 방지 턱들은 

운전자 이외의 승객들은 무차별 공격에 시도 때도 없이 잠에서 깨웠다


급기야 

옆자리에 앉으신 티베트 여승이 토를 한다

(분명한 건 창이 없는 버스 안인데)


썩 괜찮은 환경이 아닌 것 같은데

분명 아닌데

신나게 라임까지 맞춰가며 코를 골며 자는 저 인도 아저씨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으로 보였다


죽어라 시간을 보내도

시간은 공간을 힘겨우리만큼 더디다


잠시 붙였다 뜬 눈꺼풀 사이로 

달무리를 가득 안은 커다란 달이 곧잘 따라왔다

한참이 지난 듯하였는데도  

그 날의 그 달은 계속해서 나를 따라왔다


어제 낮처럼 이날의 밤도 길었다


발가락의 감각이 사라지듯

시간의 개념도 사라진 지 오래

그저 모든 흐름에 나를 내 던졌다

내 던져졌다


고요함이 무색하리만큼

조용한 차장 총각의 읊조림

'다람살라'


다람살라라

눈은 감고 있었지만

모든 감각의 촉이 살아 있었던지라


차장의 침묵 같던 읊조림에 귀가 열리고 눈이 열렸다


맥그로드 간즈와 다람살라는 같은 곳이라 봐도 무방하겠다

윗마을과 아랫마을의 차이니 거의 다 왔다는 거겠다


나의 관심이 그대가 아니라 해도

눈 한번 팔지 않고 잃어버릴세라

빛 한번 잃지 않고 조용히 따라왔다

너무나 차가우리 환하여 따뜻하다고만 생각했다



커브를 도는 순간


옅흔 미명의 진한 채도 사이로

눈이 하얗게 내려앉은 히말라야 높은 고봉들과

그 주위로 옅은 파람 아래로 붉은 장판이 깔려 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온몸에 소름이 돋아 모든 감각을 마비시키는 듯했다


어떻게 이런 곳이 존재할 수 있을까

너무나도 깊숙한 산속에 말이다

비밀스러워서 진입하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운

요정들이나 살듯한 너무나 깊숙한 곳

해발 2000m 의 은밀한 비밀의 정원처럼

아름답다 못해 경이롭다




AM 7시가 조금 못되어 도착한 맥그로드 간즈

겨울이 길어서 그런지 여전히 사위가 어둡고 구분이 되질 않았다


릭샤들은 거의 보이질 않으나 승용차의 택시들이 많다

어딜 가나 호객행위가 판을 치지만 극 소극적이다

시골틱함이 물씬 묻어난다


동이 트기 직전의 아침은 가장 춥다

어스름 푸른빛이 내 몸을 감돈다


아주 다행스럽게 버스 종착점에 자그마한 짜이집이 있다

여전히 남인도의 짜이 맛은 없지만

지금의 분위기만큼은 끝판대장의 맛이다


내친김에 오믈렛까지 한 접시 하는 사이

동이 트고 주위가 밝아 오니

하나 둘 움직임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고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이 되었다


딱 내가 좋아라 하는

정말 작은 읍내 정도의 사이즈

델리의 수고스러움이 보상이 되어 돌아왔다



테벳망명정부 답게 티베트인들이 많다

버스를 타고 국경이라도 넘은 듯


인도지만 인도스러움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냥 여긴 티베트이다


내가 더 신기하다

그대들도 내가 신기하겠지만

크게 표가 안니 니 덜 부담스럽다


너무나 들뜬 나머지


긴장도 풀리고 어느 정도의 설렘도 풀리고 나니

숙소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잠시 놓고 있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다른 지역보다 아주 조금 높은 곳이었다는 것

몰랐지만 알고 난 뒤부터 조금은 약해진 척 헛기침을 해댓다

스스로가 우스웠다


이런 작은 마을도 숙소를 잡는 것만큼은 쉽지가 않다

(예민하고 까다로운 나의 지랄 같은 성격이 크게 한몫을 하겠지만)


여기저기 허름의 끝을 보이는대도

뭄바이 보다도 비싸게 부르니

황당함을 감출 수가 없다


발품을 팔던 중 만난 외국인 친구가 저기 계단 밑이 싸고 괜찮다고 말을 하며

손짓을 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손끝으로 향한 눈길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계단 밑이. 

계단 밑이.. 

계단 밑이... 

끝이 보이질 않는다


자신이 없다

아니 난 못한다

끝이 없는데 어떻게 가나?


고민할 것도 없는데

고민하고 고민하고 고민하고 고민하고 있는

약한 마음을 가진 내 모습


내려간다


손 닿을 가까운 곳에


내려가는 중에도 후회다

육두문자가 난무한다

주체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메아리가 되어


싸고 괜찮지 않으면 이 계단은 내가 장담컨대 폭파시켜 버리겠노라고


몇몇의 숙소 컨디션과 딜을 보다


적당한 값에

적당한 뷰와

적당한 볕이 드는

적당한 숙소와

적당히 계약을 했다


숙소를 잡은 기쁜 마음에 비해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남루한 몸 덩이

경건한 마음으로 씻으려니

호스트의 당당하던 햣샤워는 묵묵부답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열쇠를 걸 수 있는 자물쇠 따위가 존재하질 않은 것


계단을 내려가던 모습이

오버랩이 되어

히말라야의 높은 고봉 사이로 메아리가 친다

@#@!@#$%#%@!@$#@!#%


인도 중에서도 새해 해돋이 최고의 명소로 꼽히며

새해 덕담을 하신다는 달라이 라마

14번째 달라이 라마가 이곳 맥그로드 간즈에 살고 계신다는 것

그리하여

이곳엔 내가 들린 모든 숙소들이 높은 값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충분히 배짱을 튕길만했겠다는 것


이곳을 떠 난다면

더 이상의 적당한 값과 적당한 뷰 적당한 숙소를 찾지 못할 것만 같다


깊은 한숨이

높은 고봉을 스치운다


한번 해보자

3일간 쉽지 않게 더러움을 유지했던지라 냉수마찰을 시도했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뼈와 살이 분리되는 수행을 마쳤다


하나는 해결했지만

잠길 수 없는 문을 바라보며

오늘은 그저 멀리 보이는 히말라야 설산과 초록으로 

산뜻함을 주는 이곳 맥그로드 간즈에서 여독을 푸는 걸로 하겠다


최고의 선물


내가 좋아하는

너무나 원했던

조용하고 작은 예쁜 마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해독이다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이


감사하다

이곳으로 이끌어 주신 누군갈


허허 춥다

별빛 또한 예술이다


근데 너무 춥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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