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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어부 Mar 20. 2017

인도를 노래하다

#49 happy new year

Happy new year (트리운드 마운틴)


나의 낡음을

너의 새로움으로

감싸 안아 포근하게

무엇이든 당당함으로

깨끗함으로 익숙함으로

내일이라는 하루의 이름으로

이타적임이 이기적이지 않기를 바라다

오늘쯤은 너보다 잘 되는 이기적인 하루이기를








카운트다운

5.4.3.2.1


수많은 폭죽이 검은 컴버스 같은 하늘에 찬란한 꽃을 그리고

모두의 환호 속에 새로움이 다가왔음을 느꼈다


인도 시각으로

1월 1일 00시 01분

모두의 새것으로부터

낡은 것들을 뒤로하고

활기찬 새것을 기리며

일찍 누운 잠자리


단 몇 분만에 하루가 일 년이 되는 순간


차디찬 침대에 누워

꼼딱 꼼딱 추억을 먹었고

순식간에 한 살도 먹었다


시끄러운 시간도 점점 작아지더니

어느새 깊은 침묵으로 이어졌다



새해의 민낯을 보려

둔탁한 기계음의 알람을 무장했고

명령에 복종하듯 쏟아내듯 새해 알람 소리는

귓바퀴를 몇 바퀴 공중제비하고선 고막 깊숙한 곳으로 침투해

은밀하고 강력하게 몇 번을 강타당했다


휴대전화기를 베개 밑에 지뢰처럼 깔고 잔 것이 신의 한 수였다

 



평소 같으면

새소리와 개소리로 잠에서 깼겠지만

자연스러움은 무언가 나태해지는 기분이 없잖아 있어

오랜 시간 작년 속에 갇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발코니에선 아직도

별들이 지난해의 묵은 빛을 잃지 않고

짙은 어둠 속에서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다


가벼운 세안과 양치

나름 새해에 합당한 행색을 갖추고

가볍지만 않은 옷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검푸른 어둠은 조금씩 미명으로 밝아 온다

한국보다 3시간 30분이 늦은 일출이

오르고 있다


새해로 물들다


인도 속 티벳

등산은 수행이다


천천히 천천히

한 발씩 한 발씩

맥간이 점점 작아진다


디딤돌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겠단 무서운 생각들..


고도가

높아질수록

조금씩 버거워짐은 당연한 것이겠지

백두산 보다도 위에 있으니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산의 가장자리로만 길이 나 위험하다

그리고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처럼 

거칠다



오롯이 올라야 한다는 집념 하나만으로

그저 높은 곳만 바라보고 걷고 있다만  

(사실 몇 시간째 해피 뉴 이어만 되뇌며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는지)


세상 쉬운 게 하나도 없다


마법의 순간



좁다

위험하다

힘들다


그래도

죽을 만큼 버거울 때면

어김없이 보상을 해줬다


얄밉게도

아름다웠다



중간 즈음

매직뷰라고 하는 곳이 있었는데

할 말을 잃었다

마음의 길도 잃었다

마법이 행해지고 있음을 느꼈고

그 마법에 내 발목을 잡혔다


마법의 뷰임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구름이 산을 안고 있고

산은 마을을 안고 있고

마을은 사람을 안고 있다

어느 하나 빠질 수 없는

마법의 순간



멀리서 쉼 없이

위풍당당히 올라오는 노새들

짐을 한가득 싣고선 묵묵히도 오른다

이건 말인지 당나귄지 당최 존재감을 몰랐었는데

세상 쓸모없는 존재란 어디에도 없다


애들은 이렇게 좋은 뷰가 있는데 쉬엄쉬엄 가렴


그나저나

이 길이 끝이 있긴 한 걸까

해가 중천을 넘은 지는 한참 하고도 한참이다


힘겨움에 불안함이 겹치다

걸음이 버거워지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해피 뉴 이어를 말하며

얼마 남지 않았다고

힘내라는 친절한 인도인들

(그래 새해만큼 너희들도 좀 건전하고 예의 바르고 깨끗한 사람이 되려무나)


해피 뉴 이어


그들이 말하던 얼마 남지 않은

1시간을 걸었고

끝이 없을 것만 같던 끝이 났다


점처럼 보이던 하얀 산봉우리가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

무언가를 이뤘다는 성취감에 가슴 벅참이 차올라

"야호"라는 전유물도 사용하지 못했다


보통의 존재란 없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가가 울컥해짐은

나도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는

가볍지 않은 존재라는 것에

감사했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바라봤다

그리고 그렸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기를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올라갈 때 보지 못 한 꽃

내려올 때 보았네


오르막 길이었지만

내리막 길이 기도한

다른 풍경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과

조금 많이 가벼워진 배 속

수행을 잘 마무리했으니

보상을 줄 차례다


산의 높이를 가늠하지 못했던지라

에너지 바 하나로 겨우 연명했다

지금 내 머리 속은

온통 밥 생각뿐


집념 하나로
내려왔다

4시간은 족히 넘게 걸렸지만

괜찮아 새해니까



때 늦은 저녁식사


접시도 씹어 먹을 강력한 식욕을 자랑했다

뭐가 뭔지도 모르고

아쉬움이 남는 듯한 식사를 마치고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의 포만감과 넉넉함


주윌 둘러보니 모두가 새것들의 웃음으로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듯

행복하다



내려오는 길에 약간의 두통을 느꼈다

그게 끝인 줄 알았는데

지금에서야 본격적으로 심해지는 듯 바운스 라임이 일정하다

모든 병에 내성을 가지고 있듯 아픔과는 거리가 먼 나인데

긴장이 풀리니 고산병이라는 몹쓸 병이 달라붙었나 보다


끝이 아니다

마지막 수행이 남았다


공포의 300계단(무섭다)


너덜너덜 걸레가 된 몸을 이끌고

나만의 공간으로 들어왔을 때의 안도와 평안함


새해 선물은

뜨거운 핫 샤워와 두통약으로 충분하다



더 도 말고

덜 도 말고

남들보다 조금 더 잘되는

이기적인 한 해가 될 거다


지금처럼 건강하고

유쾌한 나날들이 계속되길 바래본다


수고했어 오늘도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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