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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어부 Dec 31. 2017

인도를 노래하다

#50 하루


하루 (맥그로드 간즈)


하루만 더 일찍

소중함을 알았더라면


왜 가까이 있을 때는 보지 못 했을까

보았지만 영원할 것이라는 작은 미련한 생각들이었을까

시간이 지나 분명 커다란 후회로 다가올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임에도


미련하여 사람인가, 사람이라 미련한가


익숙함의 소중함을 잃은 지금은 

소중한 익숙함을 찾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말


참 아프고도 슬픈 말이다








히말라야가 품고 있는 작은 마을

품이라 하여 따뜻함이란 찾아볼 수 없다


이제와 새삼 이곳에서 따뜻함이란 단어는 마음의 사치 었다


안나푸르나 등정에 대비해

물통에 뜨거운 물을 담고 침낭 속으로 들어가 속을 데우는 예행연습을 한다


침낭 속에 뜨거운 물 한 통

마치 어머니 뱃속 곧 태아 같은 기분이 든다

발끝에서 전해오는 온기는 사뭇 사람을 웃게 했다

몇 번의 뒤척임 었는지 모르는 사이 잠이 들었다



포근함이었는지

지난날의 고됨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트리운드를 부지런히 올랐음을

단단히 뭉친 내 엉덩이가 대신 말해줬다


평생토록 한 운동에서 두 달을 뺏더니

야속한 몸이 친절하게도 응답을 했다

참 괜찮은 몸


어김없이 이른 시간 일어나 부지런히도 누워

창밖을 바라본다 

청아한 하늘 아래 하얀 설산이 솟아 있고

설산 아래로 커다란 독수리들이 맴돌고 있다

이곳에서 죽어도 좋겠다 싶을 만큼 시리도록 깨끗하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는 것이 유일한 사치인데

움직이지 않으면 꽤 괜찮은 내 몸뚱이가 또다시 알람을 줄테지

뭉그적뭉그적

세상 가장 무거운 이불을 비집고 나와 미세한 따뜻함이 꺼지기 전에 

부리나케 화장실로 달려갔다


따뜻한 물의 소중함이란,,


양말과 속옷 가지는 빨아서 테라스에 넌다

따가운 겨울 햇살만큼이나 어디선가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첫 빨랫감을 너는 순간부터 몹시도 거슬리게 반대쪽 건물 옥상에서 

고정된 CCTV처럼 한없이 쳐다보는, 몹시도 튀는 초록색 츄리닝에 인도 남성


정말이지 불편한 시선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큰 빨래를 해야 했기에 

커다란 비닐봉지에 빨래를 담아 들고서 나설 채비를 한다

괜스레 모든 잠금장치들이 정확히 자기의 역할에 충실한지 확인하고 또 한다


불편할 만큼 예민한 나의 피곤한 강박은 

숙소를 나설 때까지 집착증처럼 이어졌다


문을 나서자

차가운 바람이 기다리기라도 한 듯 옷깃을 스치며 더욱 몸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한켠으론 바라만 봐도 숨이 콱 막히는 300계단이 버티고 있었고

찰나에 고민을 했다 힘들지만 짧게 갈 것인지 멀지만 편히 갈 것인지

다리는 이미 멀지만 평탄한 곳으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가는 길목엔

감질나게 맛난 음식을 단 한 번 대접하고선 굳게 닫힌 일식집이 있었는데

이곳을 떠날 때까지 닫힌 작은 문은 열릴 줄을 몰랐다

시간상 오늘은 일본의 명절이니 그들에게도 충분한 휴식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일


맥그로드간즈는 한 겨울 때면 눈과 추위로 문 닫는 곳이 많다고 하니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

 

허나 이곳엔 피스 카페와 그린호텔이 있다는 것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해가 중천 이건만 차가운 바람은 잘 날이 없다 


새해라 그럴까

어지간히 작은 동네에도 닫혀 있는 곳이 많았다 

포기하려는 순간

다행히 열려있던 빨래방을 찾았다


반가운 듯 커다란 비닐봉지를 건네니

귀찮은 듯 무표정하게 하나씩 꺼내어 앞뒤를 돌려보곤

하나씩 하나씩 가격을 메긴다

무게가 아리라 한 피스씩,, 이러면 가격이  만만찮게 나오는데

안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 할 수 도 없고

창피한 일이지만 몇 가지는 다시 챙겼고 부디  걸레짝처럼 되질 않기를

새해 아주 작은 바램으로 텅 빈 내 마음 같은 하얀 영수증을 건네받았다



여행을 나올 때면 늘 맡기는 빨래

나는 빨래를 맡기고 받았을 때 그 순간들이 참 좋다

인도 역시 그러했다

신기하리만큼 빨래는 그 나라 고유의 향기를 담고 있었다



작은 동네임에도 빨래방이 그린호텔 옆이 었다니 그걸 모르지 지나쳤었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이기적인 동물이라

미련히도 몸뚱이가 수고가 많았다


그린호텔 레스토랑은 감사의 다른 이름이었다

친절한 종업원도, 나름의 와이파이도, 단연 캐나다 주인의 메이플 시럽도

먹는 것에 욕심이 없는 나지만

정말이지 먹는 즐거움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고 잃었던 미각을 이 곳에서 찾았더랬다

미약한 와이파이지만 지난날의 정보와 소식들의 허기짐도 달랬고

비워진 접시와 포만감 사이에 나태하지만 친숙한 낮잠이라는 친구도 찾아왔다


늘어진 나무늘보처럼 한참을 산만 바라봤다 

멍하니 한참을


그러다 문득


이 곳에서 머문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하는 생각에 갑자기 찾아온 익숙함에 놀랐고

이제는 떠나야겠다 싶어 지도를 펴고 적당히 갈 곳을 찾는 모습에 이 또한 능숙함에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꼭 어디로 이동할 날이 다가올수록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 많은 생각이 드는 건

언제나 왜일까


고민의 끝은 또 다른 고민을 낳고 고민에 대한 고민을 더하다 보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어이없게도 아무 일 없듯이 똑같은 상황에 헛웃음을 짓게 한다


그럴 땐 아무 생각 없이 조금 걷고 싶어 진다



나른한 몸을 이끌고 문을 나서니

여전히 바깥공기는 차갑다

추우니까 따뜻한 것을 또 찾는 이 야비함은 어디서 나오는지

스스로에게 혀를 차면서 발걸음은 또 익숙한 곳으로 옮기고 있었다


며칠 전

무너지기 직전인, 허름이라는 말 조차 고급 져 보이는 곳에서

황홀경의 맛을 자랑하는 짜이집을 발견했었더랬다

쳐다만 봐도 때릴 것 같이 생긴 험악한 인상에 반해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깨끗한 미소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하모니가 입과 눈에서 환상의 콜라보를 만들어 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험한 인상 속에서 참 순한 미소를 지어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색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난간에 기대어

초점 없이 이곳저곳을 훌터지나니

사뭇 어제와 너무 다른 밀도에 이곳이, 지금이

분명 오늘을 가장한 어제인지 여전히 꿈을 꾸는 건지 

여행의 하루가 길어지는 만큼 시간의 개념은 빛의 속도로 빠르게 멀어져 간다


놀랄 일도 아니건만 참으로 늦다는 것이 우스웠다



시선을 돌려 이 건물 저 건물들을 바라보다

문득 초록색 난간과 함께 초록색 츄리닝 남자가 오버랩이 되었다


초록색 츄리닝


사람은 하루를 오만가지의 생각과 평균 180번의 크고 작은 선택을 한다고 한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한낱 인간으로

또다시 찾아온 쓸데없는 고민으로 스스로를 강박에 몰아넣고 있었다


아주 강렬한 초록색의 츄리닝을 입은 검은 남자는 도로에 껌딱지처럼 눌어붙어

하나부터 열까지 아니 오만가지 생각을 하게 했다

과연 내가 머물던 숙소로 와 빨래를 들고 갔을까

혹은 내가 문은 확실히 잠겄을까 등등


우리나라 같았으면 내가 가스를 껐나? 밸브는?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오래 되어도 변하지 않을


고민의 끝은 정해져 있었지만 스스로에게 한번 더의 질문은 합리를 정당화시키고 있는 의례 행사였다

무의미한 고민과 스트레스로 새해의 좋은 기운을 날려버릴 수 없으니

결국 숙소행을 선택한다



조금은 외진 구석에 자리 잡은 숙소라 가는 내내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으나

조심스레 열쇠를 돌리니 

변한 것이라곤 커다란 창으로 들어온 볕의 위치와 바람에 날려 떨어진 빨래 몇 개


그럼에도 양말과 속옷 개수 가벼운 옷가지들 개수가 정확인지 확인하는 못난 내 모습



화장실에 들어가

의심의 마음과 작은 마음을 담아 물을 내렸다

조금은 가벼워진 몸과 마음


비우니 발걸음 또한 가볍다


코라라고 하는 작은 산책길이 있다는데

도통 알 수가 없다

분명 이 길이 맞는 것 같은데 아니고

아닌 것 같은데 맞는 것 같고

정말 모를 길만 간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온 이 모든 길이 너무나 예뻤다


언젠가 소중한 이가 그런 말을 했었다

계획한 길이 이 길이 아니더라도 여행이라는 것은 끝이 아니며

새로운 이 길에서 뜻밖의 즐거움을 찾는 것, 그 새로운 길은 여행의 또 다른 시작이라는 것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의 모든 순간들을 기억하고 있다

너무나 강렬했기에 모든 순간들은 아로새겨져 버렸다



그때는

너무나 편했기에 몰랐다

익숙함의 소중함을




누군가에겐 소중한 친구이기도


길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고 없어지면 다시 길을 바꿔 걷고

금세 익숙한 일과 낯선 길이 교차했다

새로움과 설레임

익숙하지 않기에 더욱 조심도 스러웠다


그 모든 것들이 조용히 뷰파인더 속에서 속사귀었다



길의 끝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티벳 사원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했다

모퉁이를 지나 한 바퀴 돌아보니

손때가 묻은 둥근 통에서 애절함이 보였고

그 아래로 따뜻한 햇살에 샤워를 하며 낮잠을 자는 개들

오묘하게도 어울렸다


잃은 것이 너무 많아

얻을 것도 너무 많을 티벳사람들

그 하나하나의 간절함이 소중함이 되어

꼭 그대들의 바람이 이루어 지길

나 역시도 작은 손으로 통들을 돌려본다



자기만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티끌 하나 없는

하늘이 참 미웠다


집으로 가는 길

해돋이를 보러 왔던 많은 관광객들은 사라졌고

산만함의 거품도 서서히 빠져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어느덧 해넘이가 시작한다

붉다

오늘의 모든 걸 다 태우고 서서히 사라지는 저 태양


나에겐 매일이 똑같은 오늘이

누군가에겐 간절한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새해엔 아주 조금만 나를 놓아주는 

아픔 없는 한 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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