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티벳이여 안녕
티벳이여 안녕 (맥그로드간즈-리쉬케시)
영원하라
당신의 행복
당신의 안녕
그동안의 아픈 기억들은 잊고
부디 지금처럼 따뜻한 햇살처럼 웃으시길
당신이 가는 길은 언제나 꽃길이길
마음속 깊은 바람이고
애잔한 바램이다
간밤에 얼마나 비가 내렸을까
흐리멍텅한 것들을 지우개로 지워버린 것처럼
깨끗해졌다
저기 멀리 하얀 설산도 깨끗한 얼굴로
안녕하며 인사를 하는 듯했다
담배 한 개비 물며 혼잣말을 했다
떠나기 참 좋은 날이네
어느덧 맥간에서의 마지막 체크아웃이다
간밤에 싸놓은 짐 사이로 빠진 게 없는지 확인을 하고
둘러멘 배낭은 왜 자꾸만 무거워지는 기분이 들까
분명 구입하는 게 없는데도 말이다
아이런 하게도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한 번에 한 번을 더한 확인을 거치고서 문을 나선다
낯선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난다
아리게도 차가웠다
가까이
바라만 보아도 맥간스러운 끝이 없는 계단이 보였다
없던 고산병이 도지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는 사이 발걸음은 멀지만 평탄한 길로 향해 스스로를 인도하고 있었다
여전히 굳게 닫힌 일식집을 지나고
한식집이지만 대단한 실망을 안겨준 도깨비나라도 지나고
그간 고향의 맛을 전해준 티벳식당 피스카페도 지났다
지극히도 개인적인 지병으로 인해 대도시는 가질 못해
이틀에 한대뿐인 리쉬케시행을 미리 발권을 해놨다
처음의 계획이라면 어제 떠날 이 곳이지만 본의 아니게 하루 더 머문 이 곳 맥간은
그래서 더 애틋하고 감사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애틋함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식당, 야채가게, 과일가게, 기념품가게, 사찰까지
변함없이 굳건히 티벳처럼 당당히 서 있다
떠나기 참 좋은 날이었다
여행사를 다시 들르기 전까진
어제 미리 여행사에 들러 버스표를 발권해 놓고 이것저것 빠짐없이 확인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했었다
언제나 속임수에 놀아났던 기억들 뿐이니 확인을 확인하는 건 이제와 당연하면서도 웃픈 일이 되어 버렸다
여행사 문을 열고 들어가니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하는 모습에 흠칫 한 번 당황했고
어제 말했던 겨우 배낭 하나 맡기는 것 또한 절대 안 된다는 말에 울컥 두 번 황당하기까지 했다
떠나기 참 좋은 날이
떠나보내기 참 좋은 날로 변하고 있었다
짜증에 짜증이 포개어지고 합쳐지니 나 역시 같은 놈이 되어갔다
한바탕 날리 통에 사람들은 모여들었음에도 뻔뻔한 인도 놈은 오늘 리쉬케시를 가지 않더라도
오늘이라서 환불이 안된다는 말을 했다
미안함은 찾아볼 수도 없고 뻔뻔함이 당당함으로 웅변을 토했다
혹시나는 역시나 였고
만에 하나라는 경우의 수는 언제나 적중했다
믿은 내가 바보였고 그냥 그냥,, 나는 이렇게 또 한 번에 한 번을 더 해 호구 인증을 하고 있었다
살면서 몇 번의 사기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의심부터 사고 보는 나인데
할 말이 없다
한 번 두 번도 아니기에
여행이라는 매개체로 어느덧 치유되는 듯하다가도 뒤돌아 보면 다시금 제자리걸음
나 역시 좋은 사람이 아니기에 세상은 좋지 않은 사람들로 가득한 것인지
좋은 사람들은 많지만 내가 좋지 않기에 좋지 않은 사람들만 모이는 건지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가득해서 좋지 않은 사람들을 분별하는 능력이 무뎌진 건지
유명한 철학자들처럼
나도 그 짧은 시간 '나는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강한 사람이라 절대로 휘어지지 않는다
언젠가 한 번은 부러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몹시도 심히 넘치게 과하게 불쾌한 기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은 무심하게도
참 맑다
무거운 배낭에 짜증과 화를 더 넣었더니
허리와 어깨가 버티질 못 할 만큼 더 무거워졌다
언젠가 모 TV 프로그램에서 화나고 짜증이 날 때면
먹어야 한다고 했다
사람은 단순해서 씹고 씹고 씹다 보면 잠시지만 잊힌다고
익숙하게도 그린호텔로 향했다
되든 안되든 물어나봤다
주문과 동시에 혹여나 짐을 조금 보관할 수 있겠냐니
'노 프라블럼'
문제없다며 선뜻 자리를 내어주는 티벳탄
맥그로드 간즈는 티벳의 나라구나
기분 참 인도스럽지만 날씨가 좋은 건 맥그로드 간즈의 반전 매력 같다
종일 음식 하나 시켜 놓고 앉아 있으면 좋겠다만
지금이 이 곳의 마지막이라 생각을 하니 마음 한구석이 사뭇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변했다
큰 배낭은 저기 널찍한 곳에 자리했고
작은 배낭은 가슴에서 등으로 옮겨왔다
언제나처럼
그간에 들렀던 곳들
이곳과 저곳, 이 집 저 집에 들러 차를 마시고 인사를 했다
길 끝에 닿은 곳에
생뚱맞게 박물관이 있었다
입장료도 없는
아주 작은 박물관이지만 고대 유물이나 기념품 따윈 없는 박물관은 처음이었지만
강력했다
모든 한을 쏟아부어 피 맺힌 목소리로 중국의 치졸하기 짝이 없는 만행을 들려주던
중국의 야욕에 가여운 희생양이 되어버린 안타까운 나라 티벳이다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과는 동일선상에 올릴 수가 없다
유감스럽고 개탄스러울 뿐이다
역사를 잊은 나라는 미래가 없다고 했던가
그래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머문 기간 동안 단 한마디의 중국말과 중국인과 닮은 사람 조차 없었다는 것
우연의 일치였을까
상대의 이름보다 종교부터 물어보는 티벳탄들 답게
모든 고통과 아픔을 아우르는 듯한 커다란 불상이 있고
그 뒤로 티벳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오체투지의 자리가 있다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무릎과 팔꿈치 이마를 바닥에 닿아 가장 낮은 곳으로
달라이 라마의 뜻과 일맥상통한다
모든 것은 가장 낮은 곳에 있고 땅처럼 모든 것을 포용하듯이 용서해야 한다고
나라를 잃고 늘 테러의 위협에 있으며 아직도 자국민을 위협하는 중국을 용서한다라
비단 그것이 말 뿐일지라도 대단하다
정말 하기 어려운 말과 행동이 용서가 아닌가
티벳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전 세계사람들의 성인 달라이 라마 14세
지금은 늙고 병들어 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
육체로부터 승리하시고
부디 그대들의 염원이 닿아 용서로 승리하시길
마지막 노을도 참 이쁘게 맥그로드 간즈를 물들이고 있다.
처음 오는 순간부터 떠나는 날까지
달라이 라마를 대면하지는 못했지만
맥그로드 간즈 어디든 무엇을 하던 늘 달라이 라마는 늘 함께 있었다
부디 영원하시오
티벳이여
맥그로드 간즈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