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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어부 Jun 05. 2016

인도를 노래하다.

#15 잘못

잘못 (마이솔)


좋아야 하거늘 좋아할 수 없고

싫어야 하거늘 싫어할 수 없다.


모든 것은 과거가 되어버렸고

지금 조차도 과거가 되어가고 있다


솔직하지 못한 것은 솔직하지 못한것에 대해

진실한 것은 진실한 것에 대해




온몸이 뻐근해 일어나기 싫은 아침.

정든 곳이 떠나기 싫어서 더 그런 아침.

먹을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떠나야만 하는,

그래도 또 새로운 곳이 기다리고 있을 거 같아 설레는 그런 아침


미적미적 침대에 누운 채로 지도를 펴서 다음 행선지를 드려다 본다.


마이솔. 왠지 한국의 냄새가 나는듯한 이름이다.

괜한 향수에 젖는다.


그래 가자 가자.

어둡기 전에 도착하려면 시간 미룰 수가 없다.


창을 열어 올려다본 하늘이 흐리다. 금세라도 비를 뿌릴 준비가 된 것처럼.


날씨도 선선하고 눈곱만 떼고 얇은 바람막이 하나 걸치고 숙소 앞 짜이집으로 향한다.

스나바나벨라골라의 모닝 짜이는 감동이다. 밤사이를 잘 보냈구나 하는 보상감이 절로 든다.

은은한 우유 향이 너무 좋다.


나온 길에 터미널에 가서 마이솔 행 버스를 물어보니 다이렉트는 없고 지난번처럼 CT파타나행에서 환승해야 한다는 고급 정보를 얻고선 숙소로 돌아왔다.


교도관도 없는 커다란 교도소에서 홀로 죄인인 듯,

의사 없는 정신병동에서 홀로 환자인 듯

출소하듯, 퇴원하듯 많은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시간들.

홀가분히 나서는 길



모든 것들은 닮고 물든다 했다.

스나바나벨라골라와 꼭 닮은 작은 버스터미널.

머물렀던 기억들


이방인이 신기한 사람들. 그리고 카메라가 신기한 사람들.

내 귓가에 카메라 카메라 카메라가 맴맴 거린다.


배낭을 내려놓고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을 향해 셔터를 누른다.


뷰파인더 속에 자신들을 보여주면 하얀 이를 들어내면서 뒤로 넘어간다.

계속해서 찍어달라 포즈를 취하는 순박한 시골 사람들.

수줍은 듯 활짝 웃는다.

한 사람. 두 사람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룬다. 나는 이런 작은 마을의 소박함이 좋다.


가난하지만 불행하지 않은, 불편하지만 아무 문제 되지 않는.


CS파타나행 버스가 오니 잠시 아쉬움이 묻어나는 듯하더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각자의 길을 향한다.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는데 참 무거운걸 잘도 짊어지는 내 모습이 웃음이 난다.


누군가 배낭의 무게가 과거 자신의 업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 미신은 믿지 않지만 현생에 내가 지은 죄가 너무 많아 짊어지는 무게가 만만치가 않다는 생각은 든다.

욕심이 많아 그런 것을 쓰러져도 누구의 탓을 할 수가 없다.


힘들어 죽을 것 같을 때마다 생각해야지. 반성하고 반성하고 반복하지 않도록.



15분 정도의 거리. 바람이 시원하다. CT파타니에 도착하자마자 마이솔 버스가 바로 있어 급히 과자 하나를 구입하고 버스를 탄다.


배낭도 크고 기사 아저씨 뒷자리로 가는 길이 좁고 귀찮아 뒷문에서 바로 뒷자리. 그러니까 제일 뒷자리에

배낭을 내리고 기분 좋게 과자를 뜯고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곧 출발한 버스는 예상대로였다. 기사 아저씨의 운전실력이 굉장하셨는데 안전턱을 지날 때마다 몸이 공중으로 붕붕 날았다. 중력을 거슬러 그렇게 마이솔까지 몇백 번을 날다 보니 내장이 파괴될 만큼 아팠고 그 언젠가 라오스 방비엥에서 블루라군 갈 때 오토바이.. 오버랩이 된다.


제일 뒷자리는 내장을 파괴한다.. 비싼 돈 주고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 버스에서 제일 안전한 곳은 기사 아저씨와 제일 가까운 곳이라는 것을..


힘들땐 주저 앉으라. 가끔씩 쉬어가도 괜찮아


내장과 척추에 굉장한 데미지와 멘탈의 파괴 틈 사이로 도착한 마이솔.


엄청난 소음과 먼지. 매연. 내장에 이어 기관지가 파괴될듯했고 릭샤의 집요한 호객행위로 기분까지 파괴되기 직전이다.


정보지에서 본 마이솔 유스호스텔 방향을 잡으려 배낭을 메고 얼마나 직진 본능을 했는지.. 어깨와 허리. 무릎 또한 파괴 직전이었다. 집을 짊어 매고 2시간은 족히 넘게 걸어 던지라 영혼도 파괴되어 간다.


엎친데 덥핀격, 불행 중 불행은 여전히 방향을 못 잡았다는 것.


또 한 번의 몸으로 배운 교훈은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바르게 가느냐가 중요하다는 것.


멀리 KFC가 보인다. 이제는 무념무상이다.

입구에서 간단한 검문검색을 받고 들어간 백화점. 인도에서 처음이지 않을까 하는 에어콘. 녹는다. 쓰러져 잠들고 싶다. 만 당과 허기짐이 먼저 반응을 한다.


징거버거와 콜라. 감자튀김. 그 며칠 못 먹은 치킨인데 과거는 과거가 되어 버렸고 현재는 없다.

힘듬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고 감동이라는 단어와 머릿속에 폭죽이 터지듯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온다.

배부름은 사람을 넉넉하게 하고 사람은 고기 없이 살 수 없다. 그것은 분명한 진리.


한국에 비해 작은 사이즈의 버거지만 충분히 맛을 느낄 수 있었고 데워졌던 열도 식혔다. 바로 옆에 오락실도 보인다. 한판 때려줘야 되지만 아직 숙소도 못 잡았기에. 현 위치에서 최소 5km 이상 떨어진 유스호스텔. 고민의 고민이 꼬리를 문다. 이동거리와 시간을 생각해보면 조금은 중심지에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그래도 조금은 더 저렴하면서 여행자들과 여행정보를 조금 더 공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의 충돌.


심사숙고 끝에 조금은 번화가에 자리를 잡고 기동력 있게 움직이는 방향으로 정했다.


여행을 다니면 정말이지 단순한 생활에 고민거리가 많아진다. 진지한 건 없어. 엃킬것이 없으니.

포기하는 것을 포기하라


그냥 간디 스퀘어 주위에 저렴한 숙소면 어디든 동선도 짧고 구경거리들이 가까이 있으니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한결 낫다.


"말하는 대로 맘먹은 대로"


언제나 숙소를 잡을 때가 최고로 수고스럽다. 일일이 들러 가격과 룸 컨디션을 확인해야 하니.

지금부터가 전쟁이다. 집을 업고 집을 찾는데 말이 안 되는 얼토당토않은 터무니없는 가격들에 조금씩 지쳐간다. 릭샤와 호텔들의 담합으로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토 나올 정도의 위생이며, 끈질긴 릭샤들의 호객행위로 호갱이 되어가고 있다. 점점 인내에 한계가 온다. 극의 극을 달 하던 중 마지막이다 하고 찾은 그저 그런 숙소. 다른 곳보단 저렴했지만 가격 대비를 못하는 건 매 한 가지. 당최 왜 비싸냐고 물으니 간디스퀘이도 있고 역도 가깝고 등등.


간디도 필요 없고 터미널도 필요 없으니 그냥 떠나련다 일어서니 원하는 값을 대라는 사장. 나는 밀당이 싫다. 사장이 부르는 가격의 반 이하의 가격을 부르고 되면 되고 말면 마는 심상이다. 인심 쓰는 척 사장 할아버지와 적정선을 타협하고 배정받은 숙소.

생각만큼이지만 생각만큼은 나쁘지 않다.


금세 적응하려는 몹쓸 몸 덩이.


조금은 착해 보이는 사장 할아버지 덕에 딱 생각만큼 더도 덜도 아니지만

거 할 곳을 잡아 좋다구나 했다.


짐을 내리자 들리는 노크소리에 문을 열자

같은 숙소에 묵고 있는 인도 놈들 담배 피자 하고 윙크하고 뭐하는 시추에이션인지

계속 지나친 관심을 가진다.


내 손목에 십자가 문신을 보고 종교가 뭐냐고 물어본다. 이게 뭘로 보이니? 십자가로 안보이니?

여긴 인도. 공기 중에도 그 많은 신들이 흐른다는 그 인도. 기독교 극우파가 많다. 그리고. 국적 다음으로 많이 물어보는 게 종교다. 교회를 잘 다니진 못하지만 믿음만큼은 독실한 크리스찬이지. 중심을 지켜야지. 드러 올 테면 드루와. 이런 거 하나하나 말하고 싶지 않은데 모기보다도 질기다. 과하면 독이 된다고 했거늘 슬슬 거슬리기 시작한다. 피곤하다.


찌든듯한 땀과 피곤. 며칠씩 밀린 빨래. 마음의 휴식이 필요하다.


빨래하고 샤워하고 조금의 잠. 모든 것이 끝나고 나니 어두워진 뒤다.


맥주나 한잔하면 딱 좋겠다 싶은데. 껄떡대는 놈들 때문에 숙소 방을 봉인하는 것도 불편하고 불안하다.


동네가 전체적으로 시끄럽 불친절하 모든 게 귀찮게 느껴진다. 어차피 목적지도 없는 여행. 언제든지 미련없이 떠날 수 있다. 내일 하루 더 묵을지 밤 심야버스를 탈지. 밤사이 고민을 해봐야 겠다. 



어디든 내 마음만 편하다면 분명 거긴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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