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민정이 썼습니다.
소진님,
예상하신 것처럼 저는 필명을 짓기는 커녕 고민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럴 때 예상을 깨고 그러싸한 필명을 준비했다면 어땠을까요. 예상이 깨졌을 때 '왠일?'이 주는 즐거움과 예상이 적중했을 때 '역시!'가 주는 즐거움 중 어떤 것이 더 클지 문득 궁금하네요.
소진님의 글을 읽으며 이름에 대해 생각했어요. 소통을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 만들어진 이름에 사람들은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아요. 제가 민정으로 불리든, 해삼으로 불리든, 핑크로 불리든 뭐가 다를까요.
제 이름, 민정은 학창시절 한 두번쯤 큰 민정, 작은 민정으로 불린 적 있는, 제 또래라면 민정이라는 친구 하나 쯤 있는 그런 이름이에요. 학년이 올라가고 새로운 반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이름이 헷갈리기 좋은 미정이, 민정이, 민영이, 정민이 중 하나였고 출석을 부르는 선생님들이 가장 마지막에 외울 법한 평범한 이름이기도 합니다. 저와 다르게 독특하고 개성 있는 이름을 가진 친구들도 있었어요. 매 학년 처음 들어오는 선생님들마다 출석을 부르다 말고 너는 외자 이름이구나! 너는 한글이름이니? 너는 천주교이니? 등의 질문을 받는 친구들이 제법 부럽기도 했어요. 그런 질문을 받으면 그 친구는 선생님 뿐 아니라 그 반 친구들에게도 빨리 각인이 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에요. 이름 만으로 인상적일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가요. 하지만 그 친구들은 같은 이유로 자기 이름을 싫어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저의 사주를 들고 작명소에 갔던 어머니가 받은 선택지는 민정 아니면 정민이었다고 해요. 어느 선택이든 평범하고 무난한 이름이었겠지만 그 때의 선택으로 저는 30년 넘게 민정으로 살고 있습니다. 어릴 때는 괜히 특이한 이름을 가진 친구들이 멋져보였고, 막연하게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독특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받침이 없어 왠지 부드러운, 중성적인, 영어 이름으로 써도 자연스러운, 해석이 필요한 고상한 의미를 담은 그런 이름 말이에요.
하지만 삼십년 먹은 민정이가 되고보니, 이제는 이름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들보다 탁월한 것도, 남들과 달리 독특한 것도, 남들에 비해 뒤쳐지는 것도 상당히 피곤한 일이에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앞서서 달려갈 자신도 없고, 뒤쳐져서도 당당하게 천천히 걸을 용기도 없다면 적당히 걷다가 뛰다가 하면서 주변 친구들의 속도에 맞춰가야 하는데 그 마저도 꽤나 부지런해야 가능하더군요. 조금 앞서가면 두렵고, 조금 뒤쳐지면 조급증이 밀려옵니다. 지금의 저는 저만의 보폭으로 대체로 만족스럽게 - 때로 조급한 마음이 불쑥 찾아오면 스스로 달래가며 - 천천히 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예쁘고 독특한 이름을 가지면 그저 반짝반짝한 삶을 살 것만 같았던 어린 시절 환상을 떠올리니 웃음이 나네요. 멋진 필명을 쓰면 글도 멋지게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환상도 마찬가지에요. 어떻게 불릴지 보다 어떤 글을 쓸지, 그 내용에 대해 좀 더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고로 저는 민정으로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