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씨 좋다
가을이야
서울역에서 친구 잠깐 만나고
숭례문 지나 시청 방향으로
슬슬 걸었어
노을 지기 시작하니
하늘 정말 이쁘더라
선선하게 바람이 불고
거리에 늘어선 건물들은
다 레몬빛으로 물들었어
시청에 이르니
퇴근 시간 되었는지
거리로 우르르
사람들이 쏟아지더라
금요일 저녁이라
모두들 발걸음이 가벼웠지만
주머니에 양손을 넣고
살짝 움츠린 모습들 보니
정말 가을이 왔구나 했어
너는 지금 무얼 하려나
불쑥 만나러 가면
네가 참 기뻐할 텐데
오늘은 그럴 수가 없네
그런데 말이야
몰랐겠지만 사실 우린
같은 걸 보고 있었을 거야
내가 숭례문 오거리에서
두리번대며 길을 고르는 동안
너는 분명 골똘히 서서
레몬빛 물든 건물들을
사진에 담고 있었을 거야
내가 시청 앞 횡단보도에서
퇴근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동안
너는 분명 싱글싱글
엄마랑 유모차를 타고 지나는
아이의 표정을 바라보고 있었겠지
신기하게도
그랬을 거야
나는 이곳에서
너는 그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