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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원 Jun 24. 2023

월급이요?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취미가 있을 때, 일상도 함께 움직입니다.

버는 돈의 상당한 비율을 취미생활에 사용한다. 비율순으로 줄을 세워보자면, 가장 큰 지출은 역시 운동이다. 출근 전 샤워를 겸하러 향하는 수영, 허리 디스크를 지키고자 꾸역꾸역 하고 있는 필라테스에 월급의 N%를 지출한다. 운동은 취미이기도 하지만, 더 오랫동안 돈을 벌고자 하는 투자에 가깝다고 본다. 만약 회사를 그만둔다면 하루 종일 앉아 있을 일도 없으니 디스크도 알아서 제 자리를 찾아가지 않을까 싶다. 두 번째는 글쓰기에 쓰는 돈이다. 작년 말부터는 조금 더 긴 호흡으로 글을 써보고 싶어 소설 창작 수업을 등록해 배우고 있다. 글을 쓰는 걸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걸 넘어 잘 쓰고 싶어서다. 또 소설은 평생 배워본 적 없는 새로운 영역이기 때문에 소재는 어디서 찾는지, 인물 설정은 어떻게 하는지 익히는 데 다시 월급의 N%를 지출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취미활동은 ‘관람’이다.


관람은 스포츠 관람과 공연으로 나눌 수 있다. 가족 공통의 스포츠인 야구 경기와 좋아하는 가수의 라이브 공연 관람에 상당한 지출을 감행한다. 특히 콘서트 관람은 온전히 혼자서 즐기는 취미다. 공연을 기다리고 공연장에 입장해 공연이 시작되는 순간을 두 눈에 담고 시작과 동시에 무아지경이 되는 과정을 좋아한다. 장르는 발라드와 록, 해외 유명 뮤지션의 내한 공연 등을 가리지 않는다. 과거 성시경의 공연을 즐겼을 시절에는 그의 야외 공연을 많이 찾았다. 살랑이는 바람과 가수의 목소리가 특히 잘 어울렸다. 물론 지금은 그의 행보를 응원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공연을 보러 가지는 않는다.


성시경 다음은 국카스텐이었다. 사실 지금도 가늘고 길게 덕질을 이어가고 있지만, 2010년대의 난 국카스텐의 빅팬이었다. 하현우가 복면가왕으로 이름을 알리고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까지 장식했던 그때는 정말 다시 태어난다면 잘나가는 밴드의 프론트맨으로 살아보고 싶을 정도였다. 지금도 하현우가 국내에서 손꼽히는 보컬리스트라는 생각에는 변화가 없다. 잠실 실내체육관을 가득 채우는 그의 성량을 좋아했고, 엄청난 고음에도 흔들림 없는 안정감에 중독되어 월급의 NN%를 헌납하곤 했다. 왜 NN%냐 묻는다면, 그땐 사회 초년생이라 월급은 박봉이었고 공연 N차 관람을 찍느라 정말 월급이 남아나질 않았다. 그래도 록 스피릿으로 무장한 밴드의 공연을 관람하는 건, 내 안의 아드레날린을 솟아나게 하는 더할 나위 없는 취미활동이었다.


누군가는 안방 1열에서 편히 볼 수 있는 게 공연인데 굳이 비싼 돈을 들여 공연을 봐야 하느냐 묻는다. 그 말도 맞는 말이다. 공연을 한번 보려면 전쟁 같은 티켓팅에 참여해야 하고, 원하는 표를 잡지 못할 경우 새벽잠을 설쳐가며 취소표를 주워야 한다. 공연 날엔 적어도 두 시간 전에 공연장 근처에 도착해 너무 배부르지도 않으면서 허기를 달랠만한 적당한 식사도 해야 한다. 그리고 입장 시작 한 시간 전부터는 공연장 앞에서 줄을 서야 하는데, 너무 춥거나 혹은 비가 오거나, 요즘같이 더울 때는 정말 날씨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공연장 안에서 어렴풋이 들리는 가수의 사운드 체크 소리에 설레고, 입장 줄 앞뒤로 서 있는 사람들과 감정적 연대를 느낀다. 좋아하는 가수의 라이브를 듣는다는 설렘이 차오르는 순간이다.

특히 콘서트 시리즈의 첫콘과 막콘은 그 설렘이 배가되는데, 첫 번째 콘서트는 예측 불가능한 셋 리스트를 몸소 느낄 수 있고 마지막 콘서트는 가수가 뱉어내는 마지막 열정을 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관객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노래가 흘러나와 공연장 전체의 숨이 멎은 것 같은 순간과 떠나가는 관객의 뒷모습을 보며 “하나 더 할게요”라며 뱉는 마지막 사자후는 안방 1열에서는 절대 겪을 수 없는 경험이다. 더하여 록 페스티벌 같은 야외공연에서 부는 바람과, 내리는 비 같은 방해 요소도 훗날엔 결국 그 순간을 기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때 비 정말 많이 왔는데 그래도 노래 진짜 잘했어”라고 중얼거리며 공연의 추억을 곱씹는다.


지난주는 브루노마스의 공연으로 행복했다. 역대급이었던 티켓팅에 걸맞게 그의 공연도 역대급이었다. 그의 성량은 드넓은 잠실 주경기장을 꽉 채우기에 충분했고, 실크 셔츠를 살랑살랑 흔들며 추는 춤사위도 훌륭했다. 짧은 한국어를 배워 와 노래 중간중간 섞어 주는 인사말도 듣기 좋았다. 무엇보다 히트곡이 넘쳐흘러 ‘팝알못’인 나도 허밍으로 버무리며 무리 없이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공연 관람 이후, 그 공연은 얼마였느냐 묻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단언컨대 공연 비용은 한 푼도 아깝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브루노마스 공연 영상 속에서 헤매고 있으며 그날의 공기를 추억한다. 이제 이 힘으로 일상을 살아내고 다시 회사에서의 동력을 찾을 것이다. 다음 공연을 예매하고, 기다리고, 설레면서 평범한 생활을 영위할 것이다. 이렇게 취미 부자의 월급은 수영장과 문화센터, 그리고 인터파크를 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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