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의 역사를 담고 있는 광화문을 향한, 지독한 외사랑
쭉 뻗은 거리를 좋아한다. 종각역 5번 출구로 나와 영풍문고 정문 계단으로 들어간다. 종각역과 영풍문고는 이미 지하를 통해 연결되어 있지만, 지상에서 지하 1층 서점으로 향하는 이 계단을 타야 기분이 좋다. 인터넷으로 사면 10% 할인도 받을 수 있고 하룻밤 새, 집 앞으로 배송도 해준다. 그래도 굳이 서점에서 책을 고른다. 좋아하는 한국소설과 인문과학 코너의 서가를 한 번씩 훑으며 책을 찾는다. 책 소개와 목차만 봐서는 판단하기 어려운, 나와 맞는 온도의 책을 찾는 과정이다. 원하는 책을 한 권 골라 들고 서점을 나선다.
다시 영풍문고 정문 계단을 올라오면 왼쪽엔 청계천이 있다. 청계천의 끝을 향해 걸으면 하늘로 쭉쭉 뻗은 건물들이 있다. 빽빽한 빌딩들 가운데 어떤 곳이라도 내 책상 하나만 마련할 수 있기를 바랐던 바로 그 거리다. 대학생 땐 광화문 사거리로 출근하는 직장인이 되고 싶었다. 청계광장 끝에 있는 여러 신문사, 혹은 이 거리에 사옥을 올린 어떤 기업, 혹은 파이낸스센터와 그 인근에 입주한 어떠한 회사라도 꼭 광화문에서 하루 여덟 시간을 보내는 직장인으로 살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녹록지 않다. 난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한 삼성동을 지나 홍대를 거쳐 이태원에 오기까지, 단 한 번도 광화문으로 출근한 적이 없다. 광화문은 여전히 풀지 못한 커리어의 숙제 같은 곳이다.
청계광장의 소라기둥을 등지고 광화문을 바라본다. 광활한 사거리 끝에 우두커니 광화문이 서 있다. ㄱ자로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 광화문 스타벅스로 들어간다. 지금은 그 시절의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광화문 스타벅스는 20대 초반을 보낸 소중한 곳이다. 닮고 싶은 사람들을 가장 많이 목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들어오는 광화문 직장인도, 광화문 광장에서 벌어지는 시위/집회의 기사를 송고하기 위해 키보드 위에서 바쁘게 손을 움직이던 기자들도 볼 수 있었다. 대학생의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광화문 스타벅스였다.
스타벅스를 나와 광화문을 향해 걸으면 왼편에는 세종문화회관 계단이 있다. 스타벅스 알바순이이던 시절, 난 힘든 손님을 겪거나 친한 친구와 같이 마감을 하면 꼭 이 계단에 앉아 신세를 한탄했다. 서비스직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진상 고객으로부터의 상처는 그렇게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금세 휘발되었다. 기나긴 취업준비생 시절, 입사 시험에 떨어질 때도 꼭 광화문을 찾았다. 그 계단에 앉아 반짝이는 광화문을 보며 “이렇게 많은 회사 중에 왜 내 자리는 없는 걸까”하고 한바탕 더러운 사회를 욕하고 나면 다시 시험을 준비할 동력이 발생하곤 했다.
어디 그뿐일까.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 좋아하는 선배와 광화문 광장을 걸으며 괜히 에피톤프로젝트, 슈가볼과 같은 간질간질한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어가 선배가 추천해 주는 책을 같이 읽었다. 그는 우석훈, 강준만의 책을 권했다. 이들의 책을 많이 읽어야 정말 비판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닮을 수 있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꼭 시집이 있는 서가에 들려 시인선 한 권을 같이 선물했다. 좋은 표현, 문학적인 감각은 시를 통해 배워야 한다는 조언을 들으며, 꾸역꾸역 재미없는 시를 읽었다. 존경했고, 좋아했던 선배는 알고 있을까. 그가 추천했던 시인이 추악한 성추문에 휘말려 명예롭지 못하게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이미 서점에서 피곤함이 몰려왔지만, 선배와 함께 계속 걷는다. 다시 한번 거대한 광화문을 보며 광장을 거슬러 오른다. 광화문의 왼편에 있는 정부청사를 지나 서촌 입구에 다다르면 유명한 시민단체가 있다. 선배는 정부청사와 이 시민단체에서 겪었던 취재기를 설명한다. 그때의 나는 너무 어리고 또 어리석어서 그의 말이 꼭 성경과 같았다. 그래서 광화문에서 그를 만날 때마다 행복했다. 닮고 싶은 사람과 좋아하는 장소를 거니는 것이 세상에 전부인 줄 알았다. CGV나 메가박스가 아닌 씨네큐브에서 도대체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영화를 보며, 그의 취향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영화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고 얘기했지만, 사실 난 그때도 지금도 모두 선배의 취향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선배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다시 광화문을 찾았다.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앉아, 우두커니 서 있는 광화문을 바라보며 엉엉 울었다. 좋아했던 선배를 잃었다는 상실감, 사실 선배 취향 되게 별로라고 말하지 못했던 억울함에 눈물을 흘렸다. 20대의 나는 이렇게 찌질했다. 그래도 광화문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두커니 날 받아줬다. 찌질의 역사를 담고 있는 광화문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캬라멜 마키아또를 만들던 스물한 살의 나를, 계속되는 불합격 속에서 세상에 발을 딛지 못해 불안했던 스물다섯의 나를,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사람과의 이별에 세상이 무너진 줄 알았던 스물일곱의 나를 받아준 유일한 곳. 광화문은 그래도 괜찮다고, 잘살고 있다고 위로해 주는 것만 같았다. 사랑해 마지않는 광화문. 앞으로도 위로가 필요할 때면 내 발걸음은 광화문을 향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