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을 찾는 스포츠 덕후의 여정
도파민에 중독된 삶을 살고 있다. 큰 이벤트 없는 루틴한 삶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벤트를 살펴보고, 아래위로 쇼츠를 넘겨 가며 시간을 보낸다. 직장인이라면 다들 비슷하기 마련이다. 출퇴근 길 유튜브, 퇴근 후 운동, 운동 후 다시 넷플릭스.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은 일상 속 자극제를 찾기 위한 노력들이다. 여기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자극제를 추가하자면, 그건 바로 스포츠다.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올림픽과 월드컵, 아시안게임은 나름 ‘건강한 도파민’으로 잠을 설치게 만든다. 스포츠 이벤트가 열리는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개최지와의 시차를 확인하고, 매일매일의 경기 일정을 체크한다. 다른 사람의 노력으로 괜히 벅차오르는 시간이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올해는 조금 특별한 덕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올림픽은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이었다. 당시의 스타는 단연 김동성이었다. 결승선 앞 마지막 코너까지 2등이었으나 마지막 스케이트 날 내밀기로 금메달을 거머쥔 선수였다. 당시에는 도파민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으로 피가 끓어오르는 느낀 것 같았다. 1000분의 1초에 메달의 색이 결정되는 극적인 순간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4년 뒤 2002년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반미감정을 품게 된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이 있었다. 아마 그때쯤인 것 같다. 스포츠 경기를 직접 보고 싶다고 느낀 건. 그래서 한국에서 쇼트트랙 경기가 열리면 목동과 태릉을 오가는 중딩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나의 첫 번째 스포츠스타 김동성은 10여 년이 지난 후, 그야말로 도파민이 빵빵 터지는 소식들로만 접할 수 있었다.
2002년엔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외에도 큰 이벤트가 있었다. 이제는 ‘라떼는 시리즈’에 포함됐지만, 그때의 기억을 가진 한국인이라면 어떻게 말을 아낄 수 있을까. 2002년 당시 중학생이던 나는 축구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2시간 동안 겨우 한두 점을 가지고 다투는 승패가 박진감 넘치지 않는다 생각했다. 돌아보면 그전까지는 한국 축구가 월드컵에서 승리한 경험이 없어서인 것 같다. 조별리그 폴란드전을 보며 ‘음, 이겼군’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미국전은 단축수업을 마치고 집에 친구들과 모여 소리를 지르며 봤다. 그 이후 포르투갈전으로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16강에 진출하는 걸 봤었고, 다음부터는 모두 알다시피 일상생활을 내려놨어야만 했다. 중학생이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현장감 있는 곳을 찾아다니다 4강전이었던 스페인전은 결국 광화문 응원까지 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지금은 그 기억으로 회사의 인턴 친구들에게 “너 2002 월드컵 못 봤지. 엄청 재밌었는데!”라고 말하는 철없는 어른이 됐다.
08학번이 된 2008년, 내가 ‘뉴비’가 된 건 대학뿐만이 아니었다. 베이징이라는 글자만 봐도 9회 말 허구연의 “국내 최고의 싱커볼 투순데요...”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면... 그분들은 바로 나와 같은 ‘베이징 뉴비’일 것이다. 물론 난 20세기에도 아빠 손을 붙들고 야구장에 다녔다. 그렇지만 그때의 야구 직관은 순전히 부모님의 욕심이었다. 9이닝 동안 응원봉을 두드리며 버텨야 하고, 룰을 이해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2008 베이징올림픽 야구 준결승 한일전, 이승엽의 홈런을 본 뒤로 야구에 입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가끔은 차라리 그때 올림픽을 보지 않았더라면, 야구 때문에 이렇게 힘든 삶은 살지 않았을 텐데... 싶은 마음도 있다.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 야구. 야구의 본격 입덕과 직관의 시작은 베이징 올림픽이었다.
하필 2009년엔 내가 응원하는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고, 쭉 야구를 통해 도파민을 채우고 있다. 시간이 흐른 만큼 내 신분에도 변화가 생겼다. 가장 큰 변화는 단연 돈을 버는 것이었다. 돈을 번 이후 가장 큰 스포츠 이벤트는 아무래도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올리는 올림픽이라니. 무려 시차 없는 올림픽이었다. 매일매일 내가 운동하는 것도 아닌데 몸살이 올 것처럼 경기를 챙겨봤다. 그냥 너무 좋았다. 급기야는 표도 하나 없지만 무작정 강릉으로 가는 KTX를 예매하기에 이르렀다. 그냥 그 현장의 분위기라도 느끼고 싶었다. 다행히 현장에서 경기표를 구해 인생 처음으로 올림픽 경기를 직관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돈을 벌어 행복한 이유는 많지만, 특히 더 좋은 건 좋아하는 취미를 구체화하고 실현할 수 있어서라고 느낀 순간이었다.
길고 긴 미괄식 글의 끝은 올해다. 올해는 스포츠 이벤트 덕후의 여정에 방점을 찍는 해다. 이제 3주 뒤면 파리올림픽이 열린다. 마침 좋아하는 수영의 황금세대가 도래했고, 여자 양궁은 10연패를 노리고 있다. 그리고 긴 코로나가 끝났다. 코로나 기간 중 여행을 한 번도 가지 않아 10시간이 넘는 비행기도 그리운 참이다. 게다가 유럽에서 열리는 올림픽은 시차가 맞지 않아 새벽에 중계를 챙겨봐야 한다. 그래서 결국, 난 파리로 간다. 숙소 값은 3배가 넘게 오르고, 시내 명소마다 경기장이 생겨 관광은 꿈도 못 꾸겠지만 그래도 파리올림픽을 선택했다. 황선우의 수영을 내 눈으로 직접 본다. 황금돔을 향해 쏘는 양궁 경기도 즐길 예정이다. 에펠탑 앞에서 피크닉은 못 한다 해도, 에펠탑을 눈앞에 두고 펼쳐지는 비치발리볼 경기는 볼 수 있다. 백야의 파리를 즐길 덕후의 시간이 설렘으로 가득 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