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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원 Oct 16. 2023

가을의 정석

김동률의 오래된 노래들을 듣는 이유

가을을 준비하는 데는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가장 빠르게 챙기는 건 역시 옷이다. 해마다 추석이 지나면 좋아하는 랄프로렌의 청남방을 꺼내 입는다. 이 셔츠를 꺼낼 때면 한 해의 분기점이 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두꺼운 코트와 패딩으로 넘어가기 전에 잠시 헤링본 재킷과 청바지를 입는다. 올해는 특별히 호피무늬 플랫슈즈도 준비했다. 좋아하는 검정 스타킹에 이 신발을 신으려고 8월부터 얼마나 기대했는지 모른다. 이밖에도 아침 출근길에 가을 냄새를 흠뻑 맡을 때마다, 보도블록 사이에 낀 은행을 밟지 않으려 까치발로 걸을 때마다 가을이 왔음을 체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가수의 노래를 들을 때, 정말 가을이 왔음을 느낀다.

느리지만 묵직한 목소리, 가을이라면 역시 김동률을 들어야 한다. “김동률의 음악은 세상의 많은 사랑과 아픔에 개입되어 있다”는 어떤 이의 말처럼, 가을 무렵 그의 노래를 들으며 스쳐 지나간 인연을 떠올리는 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거다. 올해는 깊어가는 가을을 더 느끼고 싶어 그의 공연에 다녀왔다. 공연이 시작되고 장막이 걷힌 이후 김동률은 인사와 함께 본인을 ‘월드컵 가수’라고 소개했다. 지난 공연이 2019년이었으니 그도 그럴법했다. 그러면서도 공연을 하지 못한 건 자의가 아니라 타의였기 때문에, 본인도 무대가 그리웠고 공연을 찾아온 우리도 김동률의 음악을 그리워했을 것 같다고 짐작했다. 정말이었다. 랄프로렌 데님 셔츠를 꺼내는 가을이 될 때마다 2008년과 2012년, 2014년의 라이브 앨범을 꺼내 들으며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그가 사전에 예고한 것처럼 셋리스트는 대중적이었고, 수많은 후기가 보장한 대로 공연은 훌륭했다. 50명이 넘는 세션이 다루는 악기는 공연장을 꽉 채우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음악과 악기는 정말 문외한이지만, 조화가 훌륭했다는 건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좋아하는 노래인 ‘다시 시작해 보자’와 ‘리플레이’를 라이브로 들은 것만으로도 여한이 없었다. ‘오래된 노래’를 들으면서 2008년 초, 추운 날씨를 뚫고 모놀로그 앨범을 샀던 과거의 나를 떠올렸다. 그때의 난 재수를 마치고 입시 결과를 기다리며 초조한 마음으로 그의 음악을 듣곤 했다.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보며 예비합격자 발표를 기다렸고, 마침내 합격의 전화를 받았을 때도 카니발의 ‘그땐 그랬지’를 들었다.


체조경기장을 꽉 채운 사람들은 모두 정적을 이루고 가수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공연을 열며 핸드폰을 보거나 촬영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부탁한 가수의 말을 충분히 존중했다. 그만큼 우리가 이 공연을 기다려왔다는 방증처럼 보였다. 인터미션에는 고상지밴드가 김동률이 작곡한 과거의 곡을 연주했다. 전주를 듣자마자 너무도 바로 김원준의 ‘쇼’임을 눈치채고 흥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쇼’라는 노래 자체를 처음 들었어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김원준이 치마 입고 ‘쇼’를 부르던 모습까지 기억해 내고야 말았다.


전람회부터 카니발을 거쳐 그리고 황금가면까지. 김동률 음악의 30년을 2시간 30분 만에 정주행 했다. 김동률이 좋은 건 나이를 먹는 게 자연스럽지만, 또 구시대 유물처럼 굴지 않기 때문이다. ‘취중진담’을 어덜트 버전으로 부른 뒤에 “이제는 술 먹고 전화하면 안 된다는 걸 너무 잘 아는 나이가 되어버렸다”고 말하며 멋쩍게 웃는 모습이 정말 그다웠다. 만약 취중진담을 부르고 여전히 취중 고백이나 전화를 즐긴다고 했다면, 그의 노래를 이렇게 오랜 기간 듣지는 못했을 거다. 그는 공연장을 가득 채운 관객을 눈에 담으며 언제든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앞으로도 계속 노래를 만들 테니 건강하게 늙으며 보자는 말에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관람한 공연은 6회 차 중 마지막 회차였다. 마지막 공연을 선호하는 건 가수가 정말 발끝부터 에너지를 끌어올려 토해내듯 뱉어내는 걸 좋아해서다. 김동률은 공연 중간중간 노래를 한 곡씩 보내는 게 아쉽다고 했다. 그만 아쉬운 것은 아니었을 테다. 콘서트의 제목과 같은 이름의 곡인 ‘멜로디’까지 흘려보내고 공연장 나오는 길에서는 아쉬움이 밟혔다. 좋아하는 노래인 ‘답장’과 ‘귀향’을 듣지 못해서도 있지만, 다시 기다려야 하는 4년 여의 시간이 아득했다. 그의 별명이 월드컵 가수가 아니라 비엔날레 가수였다면, 그래도 2년에 한 번쯤은 그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혼자 웃기도 했다.


지난여름, 누군가 평생 한 명의 노래만 들어야 한다면 어떤 가수를 택할 거냐는 질문에 나는 주저하지 않고 김동률이라 답했다. 당시에는 왜 김동률이냐고 되묻는 질문에 명쾌하게 이유를 설명하진 못했지만, 어제부로 이유는 명확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과 아픔에 개입한 그의 노래로 위로받고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라면, 모두 김동률의 노래와 얽힌 사연 정도는 있을 테니까. 공연장을 나오며 부는 찬 바람에 이제 다시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음을 체감했다. 한 해가 저무는 무렵에 아쉽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그의 노래로 위로받는다. 가을엔 역시, 김동률을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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