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무렵, 나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집 근처 학교운동장에 나가 달리는 일이다.
처음에는 한바퀴를 걷고 한바퀴를 뛰는 걸 반복했고, 익숙해지면 두바퀴를 걷고 두바퀴를 뛰다, 두바퀴 걷고 세바퀴 뛰고 하는 식으로 점차 뛰는 거리를 늘려나갔다. 한달 가량 지났을 땐 처음처럼 숨을 헐떡거리지 않고 5Km를 연속으로 달릴 수 있게 됐다.
달리고 있는 사이 운동장 오른쪽에선 해가 떠올랐다. 오른뺨쪽이 왼뺨보다 조금 더 뜨겁게 느껴지곤 했다. 온 몸은 땀범벅이 되고, 가끔은 눈 속으로 땀이 들어가 부옇게 흐려진 시야를 확보하며 계속 달리곤 했다.
고작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표현하기엔 엄청난 변화였다.
나는 평소 운동신경이 제로에 가까운 사람. 초중고 시절 체육점수로 평균을 깎아먹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던 사람. 걷기 이외의 모든 운동은 거의 불가능의 영역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운동신경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몸을 과도하게 움직여 활동하는 것엔 그닥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이십년 넘도록 움직이는게 귀찮은 집순이 생활에 만족하며 살고 있었으나 여행을 하며 산책에 흥미를 붙이기 시작하더니, 오래 걷는 일에 점점 익숙해졌고, 걷는 것은 잘 한다며 점점 거리를 넓혀나가다, 급기야는 달리기를 시작한 것이다.
달리기라니.
좋아하는 작가가 책에 그렇게 달리기 예찬론을 펼칠 때도 한치의 흔들림없이 영업당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이 턱끝까지 차는 경험은 생각보다 괜찮은 것이다.
새벽에 꾸역꾸역 일어나 선크림을 바르고 운동복을 챙겨입고 운동장으로 나간다. 반쯤 졸린 상태로 천천히 두바퀴를 걷고 그 후부터는 쭉 달리기 시작한다.
달리다보면 내 숨소리와, 발소리가 꽤 크게 들릴 뿐 주변의 작은 소음은 의식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달리는 시간은 온전히 나와 내 생각에 집중하게 된다.
하루에 50분쯤 내 무릎과 종아리와 폐가 어떤지 살피며 지금까지 뛴 바퀴수에 집중하는 것은, 어제 하루종일 고민했던 일을 떠올리며 몇 바퀴쯤 뛰다 ‘됐어, 이정도면 열심히 한 거야’라고 포기할 수 있는 것은, 몸이 점점 지쳐갈 때마다 허리와 발걸음을 자세를 의식적으로 바로잡는 일은 거의 명상에 가까울 정도로 아침을 평화롭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새벽에 알람이 울리면 ‘달리기를 해야해!’라며 일어나게 됐다.
빠지지 않고 달리다보니 체력도 어느 정도 기를 수 있었다.
세상에, 달리기라니.
습관적으로 달리기를 하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어느 순간엔 이런 나를 믿기 힘들 때가 있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을 보며 난 저건 죽어도 못할 거야라고 생각했던 과거라든지, 초등학교때 처음으로 오래달리기를 하고 오전 내내 목에서 피 냄새가 난다며 숨을 몰아쉬던 과거를 떠올린다든지 할 때 말이다.
그때의 내게 돌아가 ‘너는 장래에 아무도 시키지 않은 달리기를 매일 꼬박꼬박 하게 될거야’ 한다면 그들은 절대 그럴 일 없다며 고개를 젓겠지. 지금 내가 달리는 나를 믿지 못하겠는 것처럼.
이렇게 대마도 여행의 준비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