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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빵씨 Jan 03. 2018

#10-기묘한 민숙

보통 일본의 지방에서 볼 수 있는 숙박의 형태. 가정식의 조식을 제공해주며 투숙객은 각자의 방을 사용하나 욕실과 화장실, 거실을 공동으로 사용함. 다다미방의 형태가 많음.
은 내가 민숙에 대해 가지고 있던 정보의 전부였다. 그리고 나름의 환상이기도 했다.
투숙객과 어울려 함께 노는 주인, 전세계의 여행자들이 익숙치 않은 다다미방에서 어울려 놀고, 즐거운 밤을 보낸 후에 다함께 친구가 되어 다음날 아침 맞는 일본식 조식같은.

그렇다. 나는 배낭여행에 환상을 품은 사람들이 호스텔에 대해 갖고있는 것과 유사한 환상을 품었던 것이다. 흠...


사실 우리가 여행을 갔던 때는 추석연휴 후반이었다.
그때의 추석연휴는 정말이지 길었고 사람들은 모두 한국을 떠나기로 마음먹은듯 티켓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여행을 미리 준비한다는 것은 사전에 없던 나마저 몇달전에 준비를 시작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배티켓을 구하는데만도 한달이 걸릴정도였다.

당연히 숙박도 마찬가지였다. 뒤늦게 배티켓을 구하고 숙소를 잡으려하니 좀 괜찮다는 평이 있는 민숙은 이미 만실이었다.
이 기회에 대마도의 모든 민숙을 엑셀파일로 정리하겠다! 며 원대한 꿈을 가지고 위치별, 가격, 예약방법, 연락처 등을 정리한 표를 만들었으나.. 결국 귀찮아 완성시키지는 못한채로 어찌어찌 여행사를 통해 두개의 민숙을 예약했다.
그렇게 우리의 기묘한 여행은 예정돼있는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첫번째 민숙은 음.... 과도한 친절과 이상하게 더러움 정도.
원래는 근처의 온천을 이용하나 요즘 수리중이어서 민숙의 욕실을 사용해달라며 안내를 받고 먼저 씻으러 다녀온 내게 언니가 물었다.
"괜찮아? 따뜻한 물은 잘 나와?"
그리고 내 대답은..
"음.. 따뜻한 물은 잘 나오는데요. 욕실이 기부제 알베르게 같아요."
(참고로 알베르게는 까미노에서 순례자들이 묵는 숙소. 꼭 가격에 비례하는 시설을 가진건 아니지만 정해진 숙박비 없이 순례자들의 기부로 운영되는 알베르게는 대부분 좀.. 그랬다..)
거기에 이불에는 전 숙박객의 머리카락이 이곳저곳에 붙어있었다. 추석특수라 사람들이 너무 많고 며칠동안 비가 계속 와서 빨래를 미처 다 하지 못했던 걸까 싶을 정도로.

(그래도 밥은 푸짐하게 나왔다)


내가 생각한 일본이 아냐.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E언니를 데리고 도착한 두번째 숙소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일식 민숙집.

여러모로 구조는 내가 상상했던 민숙과 비슷했고, 욕실도 깨끗한 편이었다.
생각한 것만큼의 투숙객간의 교류는 없었지만 이쯤되니 그런 것들은 다 부질없다며 포기할 정도도 됐다.
오늘은 그나마 좀 편하게 잘 수 있겠다며 자리를 깔았을 때였다.
"아니 000이 내가 00 00 너같은 0하고 000000해서"
하는 고함소리가 들려 우리는 반사적으로 이불위에서 튀어올랐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옆방.
아마도 나이지긋한 부부가 같이온 집이었는듯 했는데 그야말로 감탄사, 관형어, 서술어는 조사빼고 모두 욕인듯.
내 생전에 그렇게 다채로운 쌍욕을 들어본 일이 언제인가를 생각하게 될 정도였다.
부인에게 저런 욕을 하는데 어떻게 같이 살지? 대체 뭔 일이지? 저러다 때리는 거 아냐?
순간적으로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민숙의 최대의 단점인 얇은 벽 사이로 고함소리는 또렷하게 전달됐고, 우리는 옆방에서 소리를 죽여 거의 입모양으로 대화하듯
"이거 신고해야하는 거 아니에요?"
"무서워!!!!"
하며 살짝 움직여 문고리의 자물쇠를 채우고 주인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답은 오지 않았다...)

약 한시간반넘게 이어진 쌍욕의 향연을 듣고있자니 대략 싸움의 원인은 알 수 있었다.
아마도 패키지로 온듯한 2박째의 부부였는데 이날 관광을 하며 부인되시는 분이 가이드와 다른 일행분께 친절히, 예를 들자면 구운 고기 같은 것을 먼저 권한다든지, 했던 것이다.

그게 이렇게까지 욕을 퍼부으며 싸울일이야?? 라며 우리는 황당했지만 그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이제는 약간의 웃음기까지 있는 대화를 도란도란 하시는 두분의 대화를 들으며 차마 옆방에 가 따질수는 없었다. (솔직히.. 무서웠다)

그저 이제는 시끄럽지 않아 잘 수 있어! 하며 자리에 눕는게 전부였다.

아.. 그런데 왜 이렇게 씁쓸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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