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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역에서 김포공항역으로 가는 길.

그렇게 오늘도 아무렇게나 어깨를 스친다.

by 김수미


화요일 퇴근길 오후 7시 45분 무렵. 이태원역에서 응암순환행 지하철을 타고 공덕에서 공항철도로 갈아탄다.


"선배~ 저 먼저 갑니다~"


내가 방금 내린 열차를 타려는 듯, 킥킥대며 재빠르게 뛰는 남자와, 엉거주춤하며 뒤따라가는 선배로 보이는 남자. 두 사람 다 서류가방에 클래식한 정장 차림을 한 것으로 보아 '여의도에서 왔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문이 닫힙니다]


'삐삐삐삐삐'


평소같았으면 그들이 무사히 열차에 탑승 했으려나 하는 궁금한 마음에 힐끔 뒤돌아 봤을테지만, 오늘은 나 또한 그럴 여유와 시간이 없다.


지하철을 내리기 직전 찾아본 지하철 어플로는 .. 그래 .. 분명 환승시간이 4분이었던가? 그럼 보통 내가 공덕역 6호선에서 공항철도로 환승하는 시간이 대략 5-6분 정도니까 ...


'뛰자'


숨이 가빠오도록 뛰기 시작했다.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목구비가 마치 원래 없었다고 해도 믿을듯이 그렇게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아아 이 시간에 원래 이렇게 사람이 많았나? 아무리 퇴근시간이라고 해도 너무 하는거 아닌가? 퇴근하는 키가 큰 직장인 남자. 짐보따리를 가득 들쳐매고 힘겹게 걸어가시는 할머니. 한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화면 속에 빨려들어갈 것 같은 교복을 입은 남학생.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나는 마치 경주용 스포츠카 같다.


간신히 공덕역 공항철도 부근으로 넘어와서 전광판을 보니 2분이 남았다고 뜬다. 자연스레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마스크를 거칠게 벗어제낀다. 마스크 안은 이미 입김으로 인해 몽글몽글 물방울이 가득 맺혀있다.


'망할 코로나 ...'


속으로만 생각한 뒤, 에스컬레이터에 오른다. 계속해서 숨을 가삐 몰아쉬며 눈썹을 찌푸린 상태로 에스컬레이터 손잡이를 잡으려다, 문득 코로나 바이러스가 있을수도 있다는 생각에 슬그머니 손을 주머니에 넣는다. 아, 생각해보니 아까 달릴 때 스쳐지나가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은 이유는 모두 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 때문인가... 이렇게 혼자 바보같은 생각에 빠져서 피식 웃고있는데 지하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퇴근길 만원 지하철은 언제 몇호선을 타도 지옥이긴 마찬가지다. 그나마 나는 1~5호선을 타고 출근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국에 공항철도는 쥐약과도 같고, 캐리어를 든 중국인이 타면 미안해하는 인간의 마음과 괜시리 마스크를 치켜 올리거나 고개를 반대로 돌리는 이기적 유전자도 발동하곤 한다.


운이 좋게도 공덕역에서 타자마자 바로 착석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탓에 지하철에는 또 다시 롱패딩 군단으로 까맣게 물들었고, 사람들은 좌석에 앉을 때 마다 부피가 큰 롱패딩을 몸쪽으로 오므리곤 한다. 나 또한 두 명의 건장한 남성 사이의 비좁아터진 사이 좌서에 앉으며 나의 김밥이 터지지 않게끔 최대한 오므려서 앉았다. 편한 자세를 잡고는 곧장 넷플릭스를 키고 요새 즐겨보는 중국 드라마를 켰다. 이 시국에 중국 드라마는 또 왜그렇게 재미있는지. 나 원 참. 인간이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한참을 드라마에 몰두하던 도중, 내가 좋아하는 동방신기의 광고 방송이 흘러나온다.


'안녕하세요! 제주항공 모델 동방신기 입니다~'


집에 가면서는 들을 수 없는 방송이기에 잠시동안 이어폰을 빼고 광고 방송에 집중한다.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은 이렇게 갑작스럽게 기뻐질 수 있는 상황이 생길수도 있다는 것과도 같다.


방송이 끝나면 열차는 곧이어 김포공항역 플랫폼에 진입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릴 채비를 한다. 김포공항역은 공항철도의 서울에서의 마지막 역으로, 다음 역인 검암역부터는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에 해당하기 때문에 인천에서 출퇴근 하는 사람과 공항으로 가는 사람만 남아있게 된다. 그러나 그 수가 적을 것 같다고 판단하는 것은 섣부르다.


지하철이 무사히 김포공항역에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빠른 환승 위치를 파악하고 있는 나는, 문이 열리자마자 위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로 뛰어갈 심산이었으나. 맞은편에서 도착한 9호선 김포공항행 급행열차가 도착해있는 것을 보고는 작은 한숨을 쉬었다.


김포공항역은 참으로 신기하게 되어있는데, 한 호선이 한 층에 마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열차가 같은 층에 배치되어 있다. 그리하여, 가장 지하 층에는 인천국제공항행 공항철도와 개화행 9호선이 마주보고 있고, 그 윗층에는 서울역행 공항철도와 중앙보훈병원행 9호선이 마주보고 있는 모양새이다.


아주 효율적인 위치선정이라고 생각하기에 개인적으로 기획자에게는 박수를 쳐주고 싶지만, 출퇴근 시간 만큼은 그렇지 못하다. 왜냐하면 지금처럼 9호선과 공항철도가 마주치는 시간대에는 각 열차의 문이 열리면 사람들이 올림픽 육상 선수에 빙의하여 달리기 때문이다. 이 때 만큼은 건장한 20대 청년이나, 무릎이 아픈 6-70대 노인이나 너나 할 것 없이 그냥 무작정 뛴다. 그냥 미친듯이 달린다.


오늘은 공교롭게도 9호선 문이 먼저 열렸고, 몇 초 뒤에 공항철도 문이 열렸는데, 내가 내려서 에스컬레이터로 걸어가는 5초가 30초로 늘어나는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시간이 6배로 늘어나다니.


사람이 '쏟아진다'라는 표현과 '밀려온다'라는 표현 둘 중에 무엇이 더 잘어울릴지를 고민하며 내 어깨를 툭툭치며 열차로 튕겨져 들어가는 사람들을 슬로우 모션으로 바라보게 된다. 퇴근한 직장인의 눈에는 공허함과 약간의 희망감이 섞여져있다. 이 열차를 못 타면 공허한거고, 타면 희망인거고 뭐 그런거겠지.


다행히도 공항철도 운전사님은 9호선에서 내린 인천러들이 무사히 탑승할 수 있도록 꽤 오랜시간 문을 열어두셨고, 내가 내릴 때 좌석이 듬성듬성 비어있었던 열차는 이미 창문에 김이 서릴 정도로 사람들로 빼곡히 차있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소름 돋는 것은 코로나가 아니라 퇴근 시간 인파다.


아직 진짜 사회에 발을 내딛지도 못한 풋내기이기에 '에휴 차를 사던가 해야지'하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개찰구로 이어지는 길고 긴 에스컬레이터에서 나는 또 다시 코로나 바이러스가 무서워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는 '무사히 잘 견뎠다 지옥철'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개찰구에서 카드를 찍고 목적지로 천천히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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