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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성장, 그리고

데미안

by 김수미



도서 출처 <아이돌을 인문하다>



사색하려고 만든 비공개 인스타그램 계정을 파게 된 직접적이고 가장 강력한 원인입니다. 첫 번 째 사진 속 파란색 글귀는 계정이 생긴 후로 변치 않는 소개글의 한국어 번역본이고, 소설 속 주인공인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이 계정의 아이디에 고스란히 드러나있지요.

A Journey for real me. 진짜 나를 찾기 위해 떠나는 여정은 인생 전체가 될 수 있겠으며, 어린 시절 이 책을 접했을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으나, 성인이 되고 나서 데미안을 다시 읽으니, '새'로 지칭되는 우리가 '세상'이라고 일컫어지는 알을 깨는 순간 인생은 종료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파괴하는 순간 통달하며 우리는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종료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인생 속에서 계속 알을 깨려 시도하지만, 결국 그것은 죽기 직전까지 깰 수 없는 것이며 어쨌든 그 깨려고 하는 시도가 나를 인간적으로 성숙시킨다 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입니다.

결국 내가 찾는 나는 언제든 달라질 수 있고 알을 오른쪽으로 깨려고 하면 그런 나, 왼쪽으로 깨려고 하면 또 그런 내가 언제든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며, 지금의 우리가 유년시절의 우리가 아니듯, '나'라고 정의하는 나는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요즘 싱클레어의 입장이 저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절제된 삶. 세상을 잘 몰랐던 철부지 어린아이. 그리고 데미안이라는 존재를 만나며 서서히 변해가는 자신. 아직 데미안이라고 할 법한 사람을 만나진 못했지만, 저는 제 인생의 데미안은 시간 속에 언제나 다른 형태로 도사리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돌연변이 데미안이 내게 전하는 교훈은 때마다 다르겠지요.

인생의 과정에서 데미안을 만나고 진짜 나를 깨닫고 거부감을 느끼고 변화에 고통스러워 하는 일. 그것은 곧 내가 알에 갇힌 새가 되어 두꺼운 껍질을 맞닥뜨리고 계속해서 부딪치며 아파하는 일이 되겠네요.

내가 되는 일은 어렵습니다. 아마 내 생의 절반을 살아도 나는 나를 잘 모르고 있을 테지요. 아마 죽기 전 마지막 순간에도 갸우뚱할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이 되는 일은 정말 왜 그리도 어려운 것일까요?



이 책의 구절속에 '내가 나 자신과 분리되는 그 끔찍한 순간을 맞이하면서, 비로소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의) 삶이 다시 시작됩니다.'라는 구절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알을 깨고 나오면 어른이 된다-라는 의도를 갖고 글을 쓴 헤르만 헤세와는 달리, 아마 제 생각에는 껍질 속의 얇은 허물들을 벗겨 나가거나, 알에 금을 내는 일련의 과정들로부터 우리는 어른이 되어가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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