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의 유일한 낙이었는데
회사에 출근 후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내 책상 위에 있는 노트북을 켜는 일이다. 단순하고 반복적이라 내가 살면서 이 행동를 몇번이나 했는지 셀 수 조차 없는, 그저 그냥 일상에 녹아든 당연한 일이지만, 이 행동을 거치지 않으면 난 회사에서 업무를 할 수 없다.
회사의 모두가 매일 아침 하는 행동을 나도 똑같이 따라 하고 나면, 그 뒤에는 인터넷 창을 연다. 그러면 우리 모두가 아는 그 초록창이 눈 앞에 나타난다. (모두가 다 인터넷을 킨다고 해서 초록창이 나타나는 것은 아닐테지만)
적막이 흐르는 사무실 안에서 침묵을 깨기 가장 좋은 이슈는 단연 '바깥 세상의 이슈' 그러니까 그 초록창 왼쪽 상단에 늘 줄지어져 있는 그 단어들이다.
"대리님 이거 보셨어요? ㅇㅇㅇ이 인스타그램에 만우절이라고 거짓말을 쳤대요 글쎄"
"대박 ㅇㅇ님 지금 실검 1위 ㅇㅇ예요 열애설 났나봐요"
"와 코로나 확진자 8000명을 넘어섰는데요?"
등등 잠시 적막을 깨는 이슈가 던져지면, 사람들은 마치 공놀이를 하는 개처럼 주제를 이리 뜯고 저리 뜯고 요리조리 살펴보며 거의 랩실 연구원들 못지않은 분석력과 통찰력으로 이슈를 다룬다. 그것이 사무실 직장인들의 둘 째 가면 서러운 순위의 업무인 것 마냥 말이다.
이슈가 사실이던 거짓이던, 아직 확실한 것이 아니던 일단 각자의 말은 오가고(때로는 심한 말도 나온다), 주제에 대한 생각들은 뒤엉키기도 하고 공명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정정된 기사가 뜨면,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열띠게 화를 내던 사람도 "아~"라는 한마디와 함께 일이 바쁜 척 자신의 모니터 뒤로 숨으면 그만이다.
애초에 초록창을 비롯한 모든 포털사이트에서 실시간 검색 순위를 공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현 시각의 이슈에 민감한 사람과 그것을 업으로 먹고 사는 사람에게는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기능이지만, 그런 것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전국민이 다 아는 실시간 검색어 1위의 연예인 이름 보다 당장 오늘 먹을 저녁 메뉴의 이름이 더 중요하게 느껴질테다.
그러나 제 아무리 콧대 높게 세워 실시간 검색어 '따위'를 보지 않던 사람들도 사무실에만 들어 앉으면 죄다 생각없이 그 단어들의 나열을 보고 있게 된다. 나의 가까운 친구 중 한 명은 비단 연예인의 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이슈에도 관심이 없던 대학생이었으나, 인턴을 시작하게 되고 책상에 앉아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어담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회의 이슈에 조금이나마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며칠전에는 나에게 먼저 사회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목에 핏대를 세웠다.(사실은 카톡으로 했으니 손가락에 힘을 실었다 정도가 되겠다.) 이것은 아마 실시간 검색어에 얼마나 노출되었느냐에 따라 생긴 변화가 아닐까 나는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실시간 검색 순위가 사라졌다.
검색어를 따라 유입 되어 기사의 댓글을 가득 채우는 사람들은 이제 조금 번거로워질테다.
실시간 검색어에 따라 주식이나 기사를 다루는 사람들은 이제 조금 부지런 해져야할테다.
검색어 순위 마케팅이 주 무기였던 기업들은 이제는 조금 쉬어 가야할테다.
어제 검색어 순위에서 내려올 생각을 않던 불미스러운 사건을 일으킨 유명인들은 몇 달 몇 년을 후회할테다.
그리고 나는 이제 조금 심심해지겠지.
입에 거미줄을 칠 정도는 아니지만, 이따금씩 금붕어 처럼 입을 뻐끔뻐끔 대겠지.
이 글은 선거 날 까지 그 존재를 잠시 지움 당한 검색어 순위에 대한 레퀴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