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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이 Feb 02. 2021

다시, 엄마

담담히 나의 현실을 인정하기까지

2017년. 첫째를 낳고 육아휴직. 그 후로 쭉 전업 육아를 하고 있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예전엔 느끼지 못했던 다른 차원의 행복을 느꼈지만, 그만큼이나 나 자신을 잃은 것만 같아 불안하기도 했다. 내 성격 탓이기도 했고, 내 주변엔 온통 잘 나가는 미스들이라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얻는 것보다 놓치고 있는 것을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처음 가져본 엄마라는 역할, 그 역할을 준비되지 않은 채로 미국에서 했어야 하는 상황 때문이기도 했겠지..

여하튼... 온종일 곁에 끼고 키웠음에도 훌쩍 커버린 아이를 보며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알 수 없는 미래를 계획하고 걱정하느라 눈 앞에 있는 아이에게 집중하지 못했던 지난날의 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서일 거다.

둘째는 그런 나를 싹 바꿔주었다. 현재에 집중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하루하루 나에게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계속해서 던져주었다.

발로 키운다던 둘째 아니던가?

제대로 데었다. ㅎㅎ

한 달 일찍 세상에 나와 잘 먹지 않으려 했고, 한 달 동안 체중이 조금도 늘지 않아 미국에서 입원. 그리고 죽어라 수유. 그래서 또 죽어라 젖병 거부. 각종 책과 인터넷을 뒤져 원인을 찾아보다 탈수 오기 직전에 입원. 그리고 콧줄. 6개월 동안 가녀린 몸으로 여기저기 테라피. 호주에 있는 간호사한테 화상으로 컨설팅까지 받아가며 콧줄 떼보려 노력했지만 실패. 절망 속에 코로나고 뭐고 애 둘 혼자 데리고 한국행. 자가격리 끝나자마자 재활 시작. 대학병원 진료 시작. 각종 검사. 재활 시작하자마자 콧줄 떼고 오늘로 20주. 양이 아주 조금씩 조금씩 늘어 콧줄 할 적 수유량보다 조금 더 많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눈물 없인 볼 수 없다던 바로 그 그래프...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이앓이를 하면서 이유식 거부가 왔다. 한 두입 받아먹고 도무지 입을 벌리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잘 먹게 할 수 있을지.. 밤 수유를 과하게 하고 있는 것도 또 하나의 문제고.. 고민이 많다. 나의 목표는 더 이상 수유 기록을 하지 않는 것. 그리고 아이가 먹는 모습을 평범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지금으로서는 막막하지만 결국엔 다다를 것이다. 수유 얘기는 정말이지 밤을 새도 모자랄 것 같다. 나중에 여러 번에 걸쳐 쓰는 걸로...!

대학병원은 재활의학과, 소아영양학과 예약해서 찾아간 것이 지금은 재활의학과, 소아신경과, 이비인후과, 소아외과, 소아안과, 혈액종양학과, 소아내분비과 까지 늘어났다. (내가 늘린 거 아님ㅎㅎㅎㅎㅎ) 적으면서도 기가 막힌다. 아, 소아영양학과는 내가 아웃시켰다. 이유는 다음에...!



입으로 먹지 못하는 아이
대근육이 매우 느린 아이
따지고 보면 다 느린 아이

왜 이렇게 못 먹을까, 왜 이렇게 느릴까, 하루에 몇백 번도 생각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너무 피곤해 일어날 힘도 남지않아 아이들 사이에 쪼그리고 누워 검색 창에 ‘발달 지연’ ‘대근육 지연’ 등등 키워드를 입력하고 카페의 무수한 글. 댓글을 읽으며 우리 아이보다 심한 아이가 있나 그 아이는 지금 어떤가 희망을 찾는 건지 뭔지 모를 행위를 새벽이 오도록 하다 보면 눈이 찌르듯이 아파서 아니면 핸드폰이 방전되어 억지로 잠에 들었던 나날들..

이유를 찾을 수나 있겠어? 하며 하라는 검사, 진료를 다 받아왔다. 미국에서 했던 모든 검사는 정상이었고, 한국에서도 그렇길 바랐지만 유전자 검사에서 뭐가 나왔다.


알파벳 네 개가 적힌 종이를 받아 들고 나왔을 때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났다. 그리고 현실을 부정했다. 교수에게 들은 말들을 곱씹으며 남길 말만 남기고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했다. 다음 진료를 기다리는 두 달여의 시간 동안 다른 과 진료를 볼 때마다 교수들이 유전자 검사 결과를 언급했고, 이것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을 점점 느꼈다. 그러면서 조금씩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에너지가 다 소진된 사람처럼 육아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그냥 눈감고 싶다 못난 생각도 실컷 했다. 그렇지만 자식들 생각하니 그럴 수도 없어 더 답답했다.

“엄마.. 이제는 그냥 준이가 늦되다 뭐.. 나중에 아무렇지 않게 잘 클 거다 그런 생각은 이제 그만할래. 그렇지 않을 거라는 게 아니라 그런 생각에 기대서 살지 않을래. 준이가 늦을 수 있는 이유를 갖고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가진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 그렇게 맘먹고 살래. 엄마.. 안아줘..” 어린아이처럼 엄마 품에 안겨 목놓아 울었다.


준이는 준이대로..
그래서 그동안 그랬던 것.


이 생각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던가..! 얼마나 큰 좌절과 슬픔이 있었던가..! 내 현실을 마주한 지금.. 그 덕분에, 쓸데없는 자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받아들이려고 한다는 말에 어머님은 아이를 포기한다는 소리로 들린다 하셨다. 절대 그렇지 않다. 준이가 가진 결함을 인정해야 객관적으로 아이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고, 그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 자꾸 다른 사람을 보면, 나도 아이도 불행해진다. 그저 나는 사랑만 줄 거다. 부족함 없이!


그렇게 나는 둘째 쭈니 덕분에 진짜 엄마가 되었다.

나를 가로막던 안개가 걷히고 나니, 첩첩산중에 있는 나 자신이 보인다.
그래도 발을 내딛을 수 있게 됨에 감사한다.


진정한 행복을 향해.
우리 넷. 신나게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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