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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i Feb 02. 2022

어쩌다 스몰웨딩

2016년 6월에 처음 만나 연애를 시작한 우리는 2017년 4월 한국행 비행기표를 샀다. 멕시코에서는 부활절을 세마나 산타라고 하는데, 공식적인 휴일은 아니지만 보통 연휴기간이다. 남자 친구는 그동안 쓰지 않았던 휴가를 이어 붙여 열흘 정도 여행을 갈 수 있다고 했고, 연애 후 처음 함께 하는 장기 휴가를 어디서 보낼까 고민하다가 한국을 골랐던 것 같다.


그는 16살 때 파라과이로 이민을 간 교포였다. 한국 재방문은 2006년인가에 연수 차 일주일 머무른 게 다였다. 연애하는 동안, 이 남자의 한국에 대한 지식의 출처 대부분이 한국 드라마, 예능, 영화 등이고 실제 먹어본 한국 음식보다 들어본 한국 음식이 더 많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가 가장 가보고 싶고, 경험하고 싶은 나라는 다름 아닌 한국이었다. 내가 가장 훌륭한 가이드가 될 수 있는 나라도 한국이었고. 아마도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 같다, 우리의 이 프로젝트가.


자 친구는 국제전화로 파라과이에 계신 그의 부모님께 소식을 전했다. 나이 사십이 넘어서 드디어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으며, 내년 사월에는 한국에 들어가서 인사를 드릴까 합니다. 이때가 아마 2016 연말이었나? 비행기표는 무조건 ‘일찍’ 구매해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던 나는, 새해가 되기 전에 어서 빨리 비행기표를 사라고 남편을 재촉했었다. 사실 이때 우리는 고작해야 만난   개월, 진지한 관계가 된지는 서너  정도밖에 안된 커플이었다. 결혼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고, 한국에 계신 우리 부모님께 인사를 드린다는 말도 겸사겸사 정도의 의미일 , 여행의 주요 목적은 아니었다. 우리는 그저 내가 가장  아는 나라에, 그가 가장 가고 싶은 나라에 놀러 간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후, 86년 이민 후 한 번도 한국을 다시 방문하신 적이 없으셨던 그의 부모님들께서 "우리 둘째가 그러한 기쁜 이유로 한국을 방문한다고 하니, 이참에 우리도 한국에 한번 갈까 한다"라는 말씀을 전하셨다. 이때 그의 부모님이나 형제들이 정확히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정말로 문득 "그럼 이참에?"라고 생각하신 건지, 아니면 우리의 미래까지 염두에 두셨던 건지... 이 급작스러운 발언 이후에 정말 폭탄 같은 시간들이 지나갔기 때문에, 이때 정확히 무슨 말들이 오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 여행이 단순 식도락에서 여자 친구 부모님께 인사드리기에 이어 세 번째 국면, 상견례로 들어섰다는 점이다.


여행의 목적이 상견례가 되자, 계획에 없었던 우리의 결혼이 공식화되었다. 네? 그럴까? 그러지, 뭐. 프러포즈 같은 건 없었다. 결혼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칠순이 넘으신 노인들의 삼십몇년 만의 한국 방문이라는 타이틀이 붙자, 상견례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부담감을 느꼈다. 본 적도 없는 어르신들을 잘 모셔야 할 것 같은 며느라기적 압박감도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견례 소식에 우리 부모님은 깜짝 놀라셨다.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을 지난주에 들었는데, 갑자기 상견례라니? 탐탁지 않아하셨지만, 외국에서 온다는 사람들에게 뭐라 하기가 그러셨는지 다른 말은 하지 않으셨다.


상견례라... 한참 일정을 상의하던 우리는 자연스럽게 결혼에 대한 이야기도 하게 되었는데, 정확히는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였다. 친정은 한국이고, 시댁은 파라과이이며, 현재 멕시코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의 결혼식은 어디에서 하는 것인가? 보통 한국이나 파라과이에서 한번 하고 멕시코에서 한번 더 한다는데, 우리에게는 문제가 있었다. 우선 우리 아버지는 약간의 폐소 공포증이 있으셔서 배나 비행기를 타실 수 없다. 시부모님은 연로하셔서, 아마 이번 한국행 이후로는 다시 이런 장거리 여행이 어려우실 터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몇 년 후 어디에서 결혼을 하든, 양가 부모님 중 한쪽은 참석하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여행의 목적은 네 번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바로 "결혼" 투둠! 당시 남편은 사십 대 후반이었고, 안 하면 모를까 하게 된다면 결혼은 빨리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한국에서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상견례를 하게 되었는데, 이렇게까지 해놓고 나중에 헤어진다면 그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어서, 그럼 어차피 결혼을 할 거라면 이참에 하자!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의 결혼은,

한국에 여행을 가는데, 그러면 이참에 결혼하자! 정도로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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