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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아 May 18. 2018

국제미아?!

47. 엄마랑 순례길 - 마음 졸였던 시간

10월 25일 

León >> Madrid 기차 이동, 엄마의 스페인 입국


오늘은 드디어 마드리드로 가는 날. 아침에 H언니와 체크아웃을 한 뒤 레온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본다. 내가 타는 기차 시간은 생각보다 여유가 있다. 언니와 가벼운 포옹으로 인사를 한 뒤 후에 기회가 닿으면 한국에서 만날 것을 기약한다.


나는 따로 발권할 필요가 없도록, 모든 이티켓을 잘 출력해서 지퍼백에 꽁꽁 싸 매 가방 가장 깊숙한 곳에 넣어왔다. 바짝 마른오징어 같은 티켓을 들고 열차 탈 시간을 기다린다. 레온 기차역은 평범한 지방도시의 기차역 크기다. 마드리드행 열차를 타려는 수많은 사람들로 승강장으로 향하는 줄은 한없이 길어진다. 가방검사가 필수인지라 그만큼 더 오래 걸린다. 

렌페는 무척이나 빨라서 엄청나게 멀 것 같던 마드리드를 두 시간 정도만에 내달려간다. 마드리드로 가는 내내 탁 트인 평지를 바라본다. 걸으면 정말 먼 거리인데, 이렇게 금방 갈 수 있다니.


내가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면, 레온에서 마드리드로 가는 열차는 차마르틴 역으로 예약했어야 했는데 아토차역 근처의 호텔로 예약했다는 것이었다. 이전에 와 본 적이 있기에 다행이지 만약 마드리드가 처음이었다면 조금 헤맬 뻔했다. 내일 다시 레온으로 돌아갈 때 조금 편하게 가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지. 차마르틴 역에서 아토차역으로 가는 전철을 탄다. T10을 끊는다. 순례길이 끝난 뒤 나는 엄마와 다시 마드리드로 관광 올 예정이니 이런 10회 이용권이 더 저렴하고 훨씬 편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


아토차역 바로 앞에 있는, 내가 예약한 호텔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아니, 정말 좋았다! 꽤 긴 시간 동안 순례자였던 나에게는 이렇게나 좋을 수가 없었다.  마침 방도 남았던 모양이고, 홈페이지에서 프로모션 행사를 보고 그 호텔에 직접 예약해서 그런지 컨시어지 직원이 무료 업그레이드도 해 준다. 순례가 끝난 뒤 관광으로 왔을 땐 호텔 예약사이트를 통해 예약했는데, 업그레이드해주지 않았다. 만약 마드리드에 또 오게 되고 프로모션이 있다면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하리라.


저렴한 가격에 큰 방을 쓸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아진다. 이 얼마만의 호텔인가. 드넓은 침대에 데굴데굴 굴러본다. 머리를 부딪히게 되는 2층 침대가 아니다! 심지어 이 큰 킹 사이즈 침대가 두 개나 있어서 자다가 맘껏 뒤척여도 괜찮다. 뜨끈한 물에 한참 동안 샤워도 한다. 오늘은 드디어 바디샴푸로 몸을 씻고 샴푸로 머리를 감는다. 매일 샴푸 하나로 머리도 감고 샤워도 하고 작은 것들 손빨래도 했는데...! 웃지 마시라. 많은 순례자들이 그렇게 한다! 아마도?

창문을 열면 아토차역이 바로 보였다. 

엄마가 입국장에 들어설 9시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있다. 내일 엄마와 먹을 아침거리와 간식거리, 그리고 엄마의 스틱을 사기 위해 이 근처를 둘러보기로 한다. 구글맵을 확인해보니 꽤 큰 슈퍼인 메디오디아가 이 근처에 있고, 스포츠용품점인 데카틀론도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이다. 데카틀론에 들렀다 메디오디아에 가기로 한다. 


아토차역 근처의 데카틀론은 생각보다 사이즈가 크진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처음에 갔었던 파리 마들렌 근처의 데카틀론과 리옹역 데카틀론이 정말 컸던 모양이다. 하지만 있을 것은 다 있다. 엄마가 한국에서 스틱 사 갈까? 하고 의견을 물어보셨었는데, 스틱도 결국 짐이고 한국이나 이 곳이나 가격이 비슷해서 내가 여기서 사겠다 말씀드렸었다. 그렇게 스틱 한 세트를 산다.


그곳을 나오고 슈퍼로 향할 때, 내 눈에 들어온 버거킹. 아- 너무나 강렬한 유혹이다. 그래 오늘 저녁은 버거킹이다! 홀린 듯 그곳으로 들어가 자연스럽게 주문을 하고 한 구석에 자리 잡아 버거를 한 입 문다. 아, 이 몸에 좋지 않은 너무나 중독적인 맛! 

엄마를 데리러 공항버스를 타고 간다. 아토차역에서는 정기적으로 공항버스가 있어서 아주 편리하다. 엄마가 도착하기로 한 시간 30분 전에 출구 쪽에서 엄마를 기다린다. 나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가족 혹은 동료들을 기다리고 있다.


분명히 엄마가 탄 비행기는 9시에 도착하기로 했는데... 전광판에는 빨간 DELAY 표시가 가득하다. 보아하니 루프트한자 비행기만 전부 연착된 모양이다. 그럼 엄마도 그 안에 있겠지. 괜히 걱정이 된다.

10분, 20분 시간이 지나니 불안감이 증폭된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직항만 누렸던 분이라 환승해 본 적이 없는데 환승 잘 못해서 길을 잃어버린 건 아니겠지? 설마 국제미아?! 장여사님 영어도 잘 못하는데 당황하면 더 어버버 했을 텐데... 안절부절못한다. 분명히 뮌헨 공항에 있었을 시간에 혹시나 몰라 핸드폰으로 연락을 해 보았는데, 받질 않으셨다. 이것 또한 걱정이다. 


그렇게 한 시간이 넘게 지났을 때 루프트한자 승무원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나니 더 불안해진다. 물론 그 직원들이 엄마가 탔을 비행기의 승무원들이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내 불안감을 한층 더 지피기에는 아주 충분했다. 10시 10분, 20분... 속이 바짝바짝 탄다. 근처를 둘러보니 인포메이션도 다 닫았고, 조금 멀리 있는 곳의 인포메이션만 연 모양이다. 엄마가 어느 비행기를 탔을지, 여권상의 이름은 어떻게 되는지 다시 확인하고 혹시나 모를 국제미아 사태를 대비해 문장들을 미리 생각해둔다.


안녕하세요, 저희 엄마는 한국 시간으로 00시 00분에 루프트한자 0000 비행기를 타고 뮌헨에서 환승했었어야 했는데, 연락이 안 되어요. 그녀는 자주색 백팩을 메고 있을 거고요, 50대 여성입니다...... 등등의 문장을 생각하고 있던 밤 10시 30분, 엄마가 나온다.


와! 없어진 줄 알았잖아!! 하고 외치는데 엄마도 얼마나 불안했는지 어쩜 그렇게 한국인이 보이지도 않는지 기다리느라 지루했다 불안했다 등등 많은 말들을 봇물 터지듯 한다. 하, 그제야 안심이 된다.

2차로 놀란 것은 엄마의 어마어마한 짐. 분명히 배낭 하나만 가볍게 해서 오라고 말씀드렸는데 어째 손에 짐이 한가득이다. 내가 요청드렸던 김치를 정말 많이 가져오신 것. 고마운 마음과 동시에 순간 짜증이 치민다. 이걸 다 지고 걸어야 한다니! 


어찌 되었건 간의 엄마의 첫 비행기 환승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짐을 풀고 내일 일정을 공유한 뒤 잠에 빠져든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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