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엄마랑 순례길 - 오 페드로소우와 울적한 기분
11월 7일
프랑스길 Rivadiso - O Pedrouzo 22.3km
내일이면 우리의 종착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다다른다. 오늘의 길은 어떤 강렬함도, 어떤 괴로움도 없이 그저 무난한 코스로 이어진다.
오히려 내 이목을 끈 것은 수많은 순례자들의 낙서. 나뿐만 아니라 많은 순례자들이 길이 끝나가는 데에서 오는 울적한 기분을 달래고자 자신들의 흔적을 남기는 듯 보였다. 내 GR65길을 지배하던 울트레이야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작년 이 길을 걸을 때는 그야말로 모든 게 처음이고 모든 게 새로웠으며 그렇게 힘들었다. 갈리시아의 변덕스러운 날씨에 진절머리 내며 잠시 머물렀던 바가 눈에 띈다.
엄마, 꽃이 예쁘다며 꽃 사진을 하나 찍어 달라 하신다. 야단스러운 나는 엄마에게 '전형적인 사진 한번 찍어나 봅시다!'하고 포즈를 취하라며 난리를 피운다. 그렇게 건진 사진.
작년에 이 지점을 지날 때 발목도 삐고 비는 세차게 내려서 서럽게 징징대고 있었더란다. 그때 구름같이 하얀 할머니 한 분이 나를 지나치며, 마을이 금방이니 기운을 내라 했었다. 새삼 이 곳에 다시 오니 그때의 감정이 물밀듯 밀려온다. 오랜만에 내가 다녔던 중학교 운동장을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코알라가 없는 유칼립투스 숲을 지나간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는지 모를 등산화. 요 며칠 엄마는 누적된 피로를 호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걷기 속도는 자꾸만 빨라지고 움직임은 날래져서, 항상 나보다 저만치 앞서 가는 것이었다. 내가 요 신발을 찍느라 다른 순례자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엄마는 또 날쌔게 사라져 있었다.
오늘의 알베르게는 오 페드로소우 마을 어귀에 있는 곳. 작년에 묵었던 시설이 좋은 곳은 오늘 열지 않는단다. 아쉬운 노릇이다. 이 알베르게도 시설이 썩 나쁘지 않아 보인다. 미리 보내 놓은 가방을 확인하니 아르투르 할아버지 것도 있다. 내가 가는 곳들이 평균적으로 괜찮다며 칭찬하더니, 오늘도 같은 알베르게로 오실 요량인가 보다.
아주 짧은 거리라 그런지 우리가 1등이다. 14인실의 큰 알베르게. 순례자 일과를 마치고 식사를 하러 간다. 무난한 맛의 순례자 메뉴, 사람 좋아 보이는 주인의 미소. 와인잔이 인상적인 레스토랑이다.
오늘 사람이 적다. 다들 어느 알베르게로 간 지 모르겠다. 나와 엄마, 아르투르 아저씨, 그리고 뒤늦게 온 젊은 커플, 그리고 개인실의 한 커플만 있다.
알베르게 주인과 그 아들로 보이는 분들은 꽤나 친절하다. 엄마와 난 알베르게의 홀에 앉아 하릴없이 시간을 보낸다. 날씨도 꿀꿀하고 비도 간간히 내리는 탓에 기분이 가라앉는다. 순례길에 대한 철 지난 저널도 한번 읽어본다.
나는 워낙 푹 잘 자는지라 잘 몰랐지만 엄마 왈, 젊은 커플은 밤늦게 어디선가 거하게 술을 마시고 와 밤새도록 요란스럽고 괴로운 소리를 냈단다. 그렇게 산티아고에 도착하기 전날 밤은 식은 아메리카노처럼 밍밍하게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