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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아 Jul 25. 2018

알아도 먹는 맛, 뿔뽀

59. 엄마랑 순례길 - 멜리데 뿔뽀와 심상치 않았던 순례자

11월 6일

프랑스길 Palas de Rei -  Rivadiso 25.8km


문어 요리가 유명한 멜리데를 지나 리바디소로 가는 길. 예전에도 먹었던 뿔뽀, 분명히 아주 특별한 맛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알고 있지만, 그래도 멜리데를 지나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갈리시아 지방으로 넘어오면서부터 유칼립투스 숲을 많이 볼 수 있다. 작년에 이 길을 걸었을 때, 나에게 르퓌길을 알려준 부부가 나를 멈춰 세우고 향기를 맡게 하던 곳이기도 하다. 엄마는 유칼립투스 숲을 보면서 코알라 이야기를 했다.

이어지는 길. 당차게 걷는 엄마

카사노바라는 마을을 지나

작년 이 길을 걷던 나는, 멜리데에 도착하기 직전 스페인의 지독한 오후 햇볕에 구운 바비큐가 되어가고 있었다. 갖고 있던 물도 떨어졌었는데, 마침 이 수도꼭지를 만나 얼마나 신나 했는지 모른다. 다시 만난 수도꼭지가 반가워 사진으로 남겨본다. 

멜리데로 들어가는 다리.

점심 무렵, 안정적으로 멜리데에 접어든다. 작년에 내가 미국 사람 마들린을 만났던, 뿔뽀 맛집으로 유명한 집을 들어가려고 했는데 문이 닫혀있다. 분명히 안에 한국 청년들도 있는데 왜일까. 어차피 뿔뽀 맛은 거기서 거기니까.. 아까 우리에게 열심히 영업하던, 오르막에서 대로로 접어드는 골목 어귀의 뿔뽀집으로 향해본다. 그곳에서 고추 요리, 뿔뽀, 그리고 갈리시아 수프를 주문한다.

야들야들한 뿔뽀 요리. 나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문어숙회에 빨갛고 맵지 않은 저 이름 모를 향신료를 얹은 것이다. 그리고 밑에는 감자가 깔려있지. 좋은 술안주이기도 하다.

우리가 처음 들어갔을 땐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한창 식사를 하고 있자니 다른 순례자들도 많이 들어온다. 그중 아르투르 아저씨와 엄격해 보이던 키다리 독일 할아버지, 그리고 또 다른 할아버지 세 분이 식사를 하신다. 이 바의 주인과 직원들은 뼛속까지 스페니쉬여서, 쉴 틈 없이 농담을 건네곤 했더란다. 한 직원이 독일 할아버지에게 키가 정말 크다고 농담하니(190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할아버지가 화를 낸다. 그 모습을 구경하며 식사를 마치고, 화이트 와인에 약간 알딸딸해진 상태로 길을 나선다.

멜리데 시내를 지나 조금 걸으면 바로 숲 속 길이 나온다. 오늘은 햇살도 찬란하고, 날씨도 엄청 덥지도 않아 걷기에 좋다.

드디어 50km 이하. 맘먹으면 하루 만에도 갈 수 있는, 편히 가도 이틀이면 되는 거리이다.

우리가 묵기로 한 리바디소까지는 한 시간 정도 남았을 거리. 멜리데에서 식사를 길게 한 것이 꽤나 에너지 소비였던 모양이다. 마침 공원 비슷하게 꾸며놓은 곳이 나와 엄마와 나는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한다. 잔뜩 주워서 삶은 밤, 포도 등을 꺼내 간식으로 먹는다. 

멜리데에서 그렇게 여유 있게 시간을 보냈어도 걷는 속도는 어느 정도 안정화되었는지 오후 3시면 도착한다. 알베르게에 도착해보니 안쪽 방에 그렇게 자주 마주치던 아르투르 할아버지가 있다. 우리는 그 옆 침대를 차지한다. 아르투르 할아버지는 내일 너 어느 알베르게 가냐고 물으면서, 아시안들이 묵는 곳은 대체적으로 깨끗하더라라고 하신다. 뭐지 저 이상한 고정관념은? 일단 웃으면서 하하 넘겨버린다.


저녁을 먹으러 이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이는 레스토랑에 간다. 동네 아저씨들이 술을 마시며 신나게 떠드는 분위기. 시끌벅적한 가운데 자리를 잡고 맛이 그냥 있는 식사를 한다. 러시안 샐러드의 맛없음에 감탄하며 본식을 먹고 있는데, 엄마 뒤쪽에 어느 분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 

당신이 묵고 있는 공립 알베에는 한국인이 없는 것 같다며 운을 띄우던 분. 당신이 하루에 얼마나 많이 걸었는지 이야기하신다.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 거리를 빨리 걸었는지 이야기하신다. 또 영어나 스페인어를 하지 못하는 탓에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데도 이렇게 다 주문해서 잘 먹을 수 있다신다. 얼마나 먼 거리부터 걸었는지, 피레네 산맥이 얼마나 힘든지 이야기하신다. 또 자기가 어디 사는지 이야기하신다. 이야기가 끊기질 않다 갑자기 뚝 끊긴다, 무슨 메밀 100% 면마냥 말이다. 저 분, 왠지 심상치 않다.


뭔가 께름칙한 기분이 들어 엄마와 알베르게를 향해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들어가 보니 젊은 순례자들로 비어있던 침대가 꽉 차 있다.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걸 보니 오늘 저녁 늦게까지 이럴 것 같다. 

얇고 길게 난 창 너머로 별빛이 비친다. 날이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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