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엄마랑 순례길 - 아이가 울어대던 팔라스 데 레이의 식당
11월 5일
프랑스길 Portomarín - Palas de Rei 25km
포르토마린의 아침은 자욱한 안개로 시작한다. 우리가 묵었던 알베르게의 방에서 창문을 열면, 포르토마린 앞을 지나가는 강이 내려다 보여 기분이 좋았는데 아침이 되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하얀 안개가 가득하다. 너나 할 것 없이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짐을 싸고 길을 나선다.
오늘 아침에 길을 나서니 앞뒤로 순례자들이 잔뜩 있다. 확실히 사리아 이후부터는 현저하게 사람이 많아졌다. 그전까지 보이지 않던 깨끗한 옷을 입은 순례자들도 많이 보인다. 곤사르에 다다르기 직전 오래된 공원에서 간식거리로 오전의 당분을 채운다.
곤사르는 내가 작년에 순례길 첫날밤을 묵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 곳의 공립 알베르게는 여전히 잘 있었고, 그 옆의 레스토랑에는 아침식사를 하려는 순례자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이 알베르게에서 나에게 르퓌 길을 알려준 프랑스 노부부를 만났더랬지. 그때는 이 길이 참 힘들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이리도 가볍다.
알베르게와 레스토랑 사이의 공터
아름다운 일출을 보았던 언덕을 지나간다. 오늘은 날씨가 꾸물거리는 바람에 잔뜩 낮아진 하늘 아래에서 걸을 수밖에 없었다.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걸었던 첫 순례길을 떠올리며, 성큼성큼 먼저 앞서 나가는 엄마를 잰걸음으로 따라간다.
듬직한 산티아고 화살표 비석, 너무 목이 말라 콜라를 벌컥벌컥 단숨에 들이켰던 바. 작년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신기한 기분을 느낀다.
솔직히 말하면 포르토마린 이후부터의 길은 정말 '시골길'이라서 평범하기가 그지없다. 거기에다 길이 얼마 남지 않아 아쉬우면서도 싱숭생숭한 마음, 또는 차라리 이 길을 빨리 끝내버리고 싶다는 생각 등등이 혼재해 그야말로 묘한 기분으로 길을 걷고 있었다.
팔라스 데 레이에 도착하는데 캐나다 소방관 청년과 마주쳐 인사한다. 인사를 했는데도 가는 방향이 같다. 접어드는 골목도 같다. 너 지금 나 따라오는 거야? 하고 키득댄다. 아니거든! 나 가방 보낸 데가 여긴데?? 하고 들어가니 같은 알베르게다. 자기도 엄마랑 나도 어이가 없어서 웃는다. 리셉션의 직원 분이 일행이냐고 묻는다. 동시에 '노!' 하고 대답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결국 방 배정은 나, 엄마, 그리고 그 소방관 청년 이렇게 세명이다. 들어가 보니 독일 두 아가씨 중 금발 친구가 있다. 이외에도 한국인 두 분이 계시다. 피곤에 절은 엄마와 나는 샤워를 마치고 잠깐 존다. 그러다 이불을 챙기고 일어서는데 머리 위에 선반이 있는 걸 모르는 바람에 큰 소리를 내며 부딪히고 말았다. 쿵하는 소리와 동시에 6시 성당 종소리가 울려 엄청 난 소리의 콜라보를 달성했다. 머리에서 종이 울리는 줄 알았다며 농을 던지는 사람 덕에 엄청 웃고 말았다.
저녁을 먹으러 마을을 돌아다니는데 아무래도 저녁 8시 이후에나 여나보다. 마땅한 곳이 보이지 않아 더 둘러보는데 그나마 한 곳이 열었다. 식사가 가능한지 물어보니 어서 들어오란다. 아기가 엄청 울고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른 아이를 돌보고 있는, 갓 몸을 푼 것으로 보이는 부인과 사장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보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그냥 들어간다.
제발 식사만은 평타이길 바라면서 오늘의 메뉴를 부탁하고 자리에 앉았다. 평범한 와인으로 입맛을 살리고 전식으로 나온 갈리시안 수프를 맛본다. 우와... 우와..!! 이 음식이 이렇게 맛없을 수 있구나 하고 감탄하며 먹는다. 엄마는 애초에 숟가락을 내려놓았지만 몸이 으슬으슬하고 좋지 않았던 나는 일단 따뜻하니 먹는다 하고 입에 넣는다. 한 접시는 일단 비웠지만 두 접시는 못 먹겠다. 본식은 그야말로 '존재한다, 고로 먹는다'.
요리와 음식물의 경계에 있는 것으로 배를 채우고 밝게 인사한 뒤 레스토랑을 나선다. 이렇게 먹었으니 이제 어느 레스토랑에 가든지 어떤 요리를 먹든지 더 맛있고 행복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식사도 마쳤으니 장도 간단하게 보고 알베르게로 돌아온다. 길을 길게 걸은 것도 아닌데 너무 피곤하다. 피로가 누적된 탓이리라. 꽤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 모두들 우리와 같은지 비슷한 시간에 사방에서 코골이 소리가 들려온다. 옆방의 시끄러운 이탈리아 순례자 무리들은 에너지도 넘친다. 신기한 사람들이다. 하루가 저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