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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내요 슈퍼커리
한국 시간으로 오늘 아침 9시에 열린, 스테판 커리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르브론 제임스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맞붙은 NBA Final 7차전을 집에서 시청했다. 결과는 아쉽게도 89 - 93, 클리블랜드의 승리로 끝이 났다. 클리블랜드가 1-3까지 몰렸던 시리즈 전적을 4-3으로 뒤집으며 역전 우승을 차지했고, 르브론은 파이널 MVP를 차지했다. '아쉽게도'를 통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두 팀 간의 대결에서 내 마음이 어디로 기울었었는지 밝힌다.
사실 이 글은 골든스테이트의 우승과 함께 쓰고 싶었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르브론이 경이적인 능력을 보여주며 역전 우승을 일궈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쓰려는 내용은 승자와 상관없이 유효한 메시지를 갖고 있을 거라 믿고 쓰려고 한다.
NBA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것은 누가 뭐라 해도 마이클 조던의 90년대였다. 당시 미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스포츠는 NFL(미식축구)이었고 2위가 MLB(야구)였다. 3순위에 머물렀던 NBA를 NFL과 같은 인기를 얻게 된 이유는 조던의 존재였다. 'NBA는 몰라도 조던은 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조던은 NBA, 아니 농구 그 자체였다. 키가 지배하던 농구, 센터 중심의 농구를 조던은 포워드 중심의 농구로 바꿔놓았고 그의 플레이를 동경한 중학교, 고등학교 선수들은 그를 따라 했다. 코비, 르브론, 앤써니 등등 이후 많은 선수들이 조던과 비슷한 플레이로 NBA를 장악했다.
그러나 많은 포스트 조던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NBA의 인기는 조금씩 줄어들었고, 다시 예전의 3순위로 전락하는 상황이 되었다. 나 역시 NBA의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삶을 살아왔으나 작년부터 주변 사람들이 NBA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대화의 중심에는 항상 커리라는 선수가 있었다. 대체 커리가 누구길래 저리 유난일까 싶어서 몇 차례 그의 경기를 본 나는 단숨에 그의 팬이 되었다.
be more가 아닌
조던의 은퇴 이후 NBA의 최강자로 알려진 선수로 코비 브라이언트와 르브론 제임스를 꼽을 수 있다. 두 선수 모두 NBA 명예의 전당에 오를 자격이 충분한 선수들이고, 많은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조던과 1 on 1을 한다 해도 밀리지 않을 선수들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많은 이들의 심기를 자극할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니다. 코비는 조던의 통산 득점 기록을 뛰어넘었다. 르브론은 조던보다 신체조건이 뛰어나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들이 조던보다 뛰어나냐 못하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세상이 그들을 '제2의 마이클 조던'으로 불렀다는 것이고, 선수 생활 내내 조던과 비교당해왔다는 것이다. 일반 팬들 역시 둘의 모습에서 조던의 향수를 느꼈다. 두 선수는 자신들은 그저 자신일 뿐 제2의 누군가가 아니라고 늘 이야기했지만, 그들이 부정할수록 팬들은 점점 그들과 조던을 연관 지었다. 제2의 누군가가 되어서는 사람들에게 기억될 수 없다. 기억되지 못할뿐더러 새로운 사람들을 불러모으기에도 약발이 덜하다. 화려한 플레이를 보고 싶다면, 그냥 조던의 플레이를 다시 보면 되기 때문이다. 추억은 갈수록 진해지기 때문에 조던은 점점 더 높은 존재로 변해갔다.
be different
조던이 NBA를 씹어먹은 90년대 이후, 모든 사람들은 조던의 플레이를 동경했다. 화려한 덩크, 터프한 수비, 페인트존에서의 페이드어웨이 슛이 초일류 선수의 기준이 되었다. 전부 마이클 조던이 행하신 것들이다. 조던 이후 20년간 지속되어온 NBA = 포워드 공식을 깨버린 선수가 등장하니 그가 바로 스테판 커리이다.
커리는 191cm의 키에 체격도 왜소하다. 덩크도 못(안?)한다. 그보다 작은 선수들도 덩크를 성공하는 것을 볼 때 운동능력이 특별히 발달한 선수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NBA 사상 첫 만장일치 MVP를 차지하게 된 데에는 그의 분신과도 같은 '3점 슛'이 있었기 때문이다.
커리의 3점 슛은 경이롭다. 잡자마자 준비동작 없이 쏴도 들어가고, 자세가 흐트러져도 들어간다. 심지어 하프라인에서 던진 슛의 정확도가 30% 이상이다. 그는 올 시즌 정규리그에서 402개의 3점 슛을 성공시키며 NBA 최다 3점 슛 주인공이 되었다. 종전 기록은 286개를 기록한 작년의 스테판 커리이다. 동일 인물 맞다.
조던이 NBA를 스몰 포워드의 시대로 이끌었다면, 커리는 NBA를 가드와 3점 슈팅의 세계로 변화시켰다. 고등학생들이 덩크보다는 3점 슛을 더 연습한다며 학교 코치가 투덜대기 시작했고, shooting like curry라는 3점 슛보다 먼 곳에서 슛을 쏘는 캠페인도 생겨났다.
커리를 벌써부터 조던과 비교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누가 더 위대한 플레이어인지를 두고 논쟁이 뜨겁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커리와 조던의 비교는 커리가 은퇴했을 때 커리의 기록과 조던의 기록을 비교하는 게 맞다고 보고, 절정의 기량을 아직 두 시즌밖에 보여주지 않은 커리이기 때문에 그런 비교는 시기상조일 뿐만 아니라 커리에게도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애초에 비교가 무의미하다. 커리와 조던은 가는 길이 다르다. 커리는 현재 NBA의 상징이 되었고, 조던 이후 '제2의 마이클 조던'으로 불리지 않은 첫 번째 NBA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번 패배는 스테판 커리에게 많은 불명예를 안겨주었다. 74년 카림-압둘자바에 이어서 정규리그 MVP인 선수가 파이널 7차전에서 패배하는 두 번째 경우로 남게 되었고, 플레이오프에서 보였던 그의 기록( 평균 22.6점, 4.9 리바운드, 3.7 어시스트)은 정규리그 때의 자신의 기록(평균 30.1점, 5.4 리바운드, 6.7 어시스트)에 크게 밑돌아서 큰 경기에 약하다는 오명을 얻게 되었다.
과연 스테판 커리는 파이널 패배의 아픔을 딛고 더 발전된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물론 그리 된다면 좋겠지만, 이 역시 중요하지 않다. 이미 커리는 NBA의 패러다임을 바꾼 아이콘이 되었고 나와 같이 NBA와 멀어졌었거나 관심이 없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소망으로는 curry bang!(커리가 3점을 넣을 때마다 해설자가 외치는 소리)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아무튼, 한 시즌 동안 모두 수고 많으셨다.
(맞춤법 검사에서 무더기로 오타가 나오길래 왜그런지 봤더니 커리를 카레라고 바꾸라고 계속 나왔다 ㅋㅋㅋ 브런치에서 조치를 취해줬으면 좋겠다. 2년 연속 MVP에게 너무 무례한거 아닌가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