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또다시 <한공주>
한공주는 2014년에 만들어진 영화이다. 2004년 일어난 밀양 성폭행 사건을 배경으로 했다. 개봉했을 때 영화를 봤고, 영화를 본 이후에는 따로 리뷰를 쓰지 않았다. 피해자가 안타까웠고 가해자들이 혐오스러웠다. 영화를 보자마자 느꼈던 저 분명한 감정들을 더 파헤치지 않았다. 글로 쓰자니 너무 괴로웠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덮어두고 싶었다.
영화를 강제로 떠올리기까지 3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주 쏟아졌던 많은 소식들 중에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괴롭혔던 뉴스가 있었다. 5년 전 22명의 남고생이 2명의 여중생을 집단 성폭행한 일이 밝혀져서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다는 사건이다. 최대한 감정 표출을 자제하려 해도 절망감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 속에는 사회에 대한 절망뿐만 아니라, 어떠한 목소리도 내지 않은 나에 대한 절망도 들어있었다. 이번에도 침묵한다면, 이런 일이 발생할때마다 나는 또 영화를 떠올리고 잠시 나를 부끄러워하기를 반복할 것이다. 이번 주가 지나면 다시는 이 영화를 떠올릴 일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부끄러운 글을 쓰려고 한다.
열일곱, 누구보다 평범한 소녀 한공주. 음악을 좋아하지만 더 이상 노래할 수 없고, 친구가 있지만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다신 웃을 수 없을 것만 같았지만 전학 간 학교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와 노래는 공주에게 웃음과 희망을 되찾아준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전 학교의 학부형들이 공주를 찾아 학교로 들이닥치는데...
한공주, 그녀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자신이 살던 동네에서 성폭행을 당한 공주는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다른 동네에서 살고 계시는 선생님의 어머니 집에서 함께 살게 된다. 그곳에서 공주는 '선생님 어머니'와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가까워지고, 새로운 학교에서는 계속해서 밀어내도 자신에게 다가와주는 은희라는 친구를 사귀게 된다. 미래를 바꾸기 위해 수영도 배우고, 멀리했던 음악도 다시 시작하며 점차 평범한 일상으로의 복귀를 꿈꾸던 공주였지만, 자기 몰래 가해자 중 한 명의 부모에게 돈을 받고 합의해준 아버지 탓에 다른 가해자들이 공주의 학교로 찾아온다. 새로운 도시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던 공주의 꿈은 무너지고, 좌절한 공주가 강 속으로 뛰어들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우리'라는 울타리
전학을 간 학교로 합의서를 들고 몰려온 가해자 부모들을 바라보며 공주가 말한다.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피해자를 쫓아오고, 피해자는 그들을 피해 숨어버린다. 아무리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이러한 모순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범죄 현장에서 공주는 혼자였다. 공주의 친구인 화옥 또한 현장에서 공주와 함께 강간당했지만, 둘은 고릴라 가면을 쓰고 자신들을 유린하는 43명의 가해자들 사이에서 어떠한 연대도 할 수 없었다. 사건이 알려지자 고등학생인 가해자와 피해자들을 대신해서 부모들에게 사건 해결의 책임이 넘어갔다. 모든 부모들에게 자기 자식은 귀하고 특별한 존재이다. 대개는 '우리 애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서..'라는 소소한 편애에서 그치던 마음이 강간이라는 범죄 앞에서 '우리 애가 절대 그럴 리 없어!'라는 비겁한 맹신으로 바뀐다. 영화에서도 사건이 경찰에 넘어간 이후 공주를 찾아와 사과하고, 회유하고, 협박하는 사람들은 모두 가해자의 부모들이다. 가해자들은 모두 부모라는 울타리 뒤에 숨어 자취를 감췄다. 공주에게는 가해자들이 가진 울타리가 없었다. 그토록 찾던 엄마는 이혼하여 새 가정을 꾸렸고, 아빠는 술주정뱅이로 공주의 동의 없이 돈을 받고 합의서에 싸인했다.
학부모들이 '우리 아들'을 지키기 위해 공주를 몰아세웠다면, 경찰관들은 '우리 동네'를 지키기 위해 공주를 다그쳤다. 조사를 받는 공주에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아무 말도 안 하냐고 윽박지르는 경찰관의 목소리에는 공주에 대한 동정심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너의 잘못도 있을 거라는 의심과 동네를 시끄럽게 만든 원한이 들어있다.
'우리 아들'을 지키려는 학부모들의 이기심과 '우리 동네'를 지키려는 경찰관의 이기심이 공주를 다른 도시로 떠나게 만들었다면, 새로운 도시에서도 공주를 움츠러들게 만든 요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사회'를 지키려는 울타리의 비겁함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성폭행 피해자들을 대하는 방식은 다른 범죄 피해자들과는 조금 다르다. 안타까워하는 동시에 부끄러워한다. "아저씨 근데요, 제가 사과를 받는 건데, 제가 왜 도망가야 해요?"라는 공주의 말처럼, 우리 사회는 성폭행 피해자들이 당당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지 않고 있다. 청나라에서 살아 돌아온 여자들을 '환향녀', '가문의 수치'라고 비하하던 조선 시대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회 구성원 중 하나인 나는 결함이 없는 깨끗한 선이고, 사회가 완벽한 도덕성을 지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회가 짊어져야 할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성폭행 피해자인 공주에게 강요한다. 마땅히 사회 구성원으로서 분담해야 할 수치심을 피해자들에게 몰아주는 한, 우리는 언제까지나 고결한 존재로 남을 수 있다. 우리가 피해자가 되기 전까지
결국 단 하나의 울타리도 갖지 못한 공주는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스스로 강에 뛰어든다. 새로운 도시에서 공주는 자신을 부를 때 늘 '저, 제가'라는 표현을 쓰고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을 '저기, 너희'라고 부른다. 단 한 번도 함께 있는 사람들을 우리라고 부르지 않는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철저하게 분리시킨다. 성폭행을 당해 모든 걸 잃고 혼자가 되어버리는 공주의 모습과 그런 공주를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모습들이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진다.
한 발자국 뒤의 사람들
영화 초반부, 성폭행을 당한 후 스스로 산부인과를 찾아간 공주는 여자 간호사를 찾아가 여자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싶다고 요구한다. 간호사는 알겠다고 무심히 답한 후 진료실을 나가고, 뒤이어 남자 의사가 들어와 공주를 진찰한다. 카메라는 공주의 손을 비추고, 손은 괴로운 듯 손잡이를 움켜쥔다.
새로운 동네에서 공주의 친구가 된 은희는 티 없이 맑은 인물이다. 그는 공주의 노래에 반해 공주에게 다가가고 공주가 노래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끔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자신을 모질게 대하는 공주를 이유도 묻지 않고 계속 좋아해준다. 학교로 가해자 가족들이 찾아와 공주의 과거를 알게 된 순간에도 문자메시지를 통해 공주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라며 공주의 편이 되어준다. 이보다 더 착할 수 없는, 정말이지 영화에나 나올 법한 천사 캐릭터이다. 그런 은희도 인터넷에 유포된 공주의 영상을 보며 충격을 받고, 그 순간 걸려온 공주의 마지막 전화를 받지 않는다.
공주가 새로운 도시에서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로 '선생님 어머니'가 나온다. 그는 처음에는 공주를 영 마뜩잖게 생각하지만 차츰 공주와 가까워지고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는 등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해 간다. 그는 공주와는 여러모로 상반된 인물이며, 은희처럼 영화적인 캐릭터이다. 돈이 많고, 나이가 많고, 가정이 있는 동네 경찰관과 사랑에 빠졌다. 사회적 비난을 받는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그는 당당하다. 이 점이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꺼리는 성폭행 피해자인 공주의 처지와 대비되면서 둘 사이를 이어준다. 그럼에도 가해자 부모님들을 피해 집을 나가려는 공주를 은희와 마찬가지로 붙잡지 않는다.
공주를 모르는 간호사나, 공주를 잘 아는 은희와 '선생님 어머니' 모두 공주가 자신들을 필요로 할 때 그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가깝건 멀건 상관없이 누구도 그의, 성폭행 피해자의 세계에 들어가지 않았다. 만일 간호사가 여자 의사를 불러줬더라면, 은희와 '선생님 어머니'가 떠나는 공주를 잡아주었더라면 공주의 삶은 달라졌을 것이다. 은희와 '선생님 어머니'가 현실의 보통 사람들보다 더 착하고 당당한 점을 감안했을 때, 그들이 공주를 버리는 모습이 별도의 설득 없이도 잘 이해됐다는 점이 놀랍다.
노래하고 헤엄쳐도 앞은 깜깜하다
공주는 가수가 꿈이었다. 편의점에서 일을 했던 이유도 돈을 모아 피아노를 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가해자들이 동영상을 인터넷에 퍼뜨린 다음에는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버렸다. 유명 연예인들의 성관계 동영상이 그들의 동의 없이 유출되어, 그들이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을 때 미디어와 대중이 그들에게 보인 반응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사건 이후 공주는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수영을 왜 이렇게 열심히 배우냐는 은희의 물음에 공주는 "다시 시작해보고 싶을까 봐. 내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니까"라고 답한다. 언젠가 자신이 화옥과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될 때, 살고 싶다는 희망이 생길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영화 마지막에 공주는 강에 뛰어들고, 마치 공주가 수영을 하는 듯한 카메라 앵글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공주가 죽었는지 혹은 헤엄쳐서 살았는지 불분명한 채로 영화는 끝났는데, 공주가 살아난다고 해도 상황은 강에 뛰어들기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가해자 가족들이 공주가 자살을 시도했다고 하여 합의서를 거두어들일 리도 없다. 인터넷에 퍼진 동영상이 지워질 리도 없고, 가해자가 받아야 할 비난을 공주가 받아야 하는 상황도 그대로일 것이다.
사실 영화를 본 후 리뷰를 쓰지 않은 이유는 나의 비겁함을 감추고 싶었기 때문이다. 은희보다 나쁘고, '선생님 어머니'보다 소극적인 내가 과연 그들을 나무랄 수 있을지, 같은 상황이 온다면 나는 그들과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이 글이, 이 글의 공개가 미래의 내가 흔들릴 때 나를 잡아주는 지표가 되어주면 좋겠다. 이후의 삶에서 내가 옳다고 믿는 행동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선택의 순간이 일어나지 않는 게 제일 좋겠지만
여담이지만, 한공주 역의 천우희는 촬영 내내 가슴 부위에 압박 속옷을 입고 촬영했다고 한다. 혹여나 누군가 공주에게 그럴만한 여지가 있었기 때문에 성폭행을 당한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만일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영화 관련 댓글에서 피해자에게서 이유를 찾는, 끔찍하게도 익숙한 실상을 마주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랬을 것이다. 한공주의 여성성은 피해의 원인이 될 수 없다. 중학생 둘이 몰래 술을 마신 일 역시 피해의 원인이 될 수 없다. 피해의 원인은 가해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