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방콕 여행기 03
여행의 가장 좋은 선물은 느긋한 아침이다. 출근을 위해 하루를 시작하는 것과 사뭇 다른 기분으로 눈을 떴다. 눈이 떠질 때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호사를 누렸다. 태국의 건물들은 벽이 많지 않았다. 사계절 내내 더운 날씨에 적합한 형태였을 것이다. 방 문을 열고 나가면 복도로 따뜻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숙소 앞의 식당에는 이미 많은 여행객들이 늦은 아침을 즐기고 있었다. 신문을 보며 커피를 마시는 사람, 연인과 또는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는 사람들을 보자니 나도 그중에 하나라는 생각에 뭔가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골목을 빠져나와 큰 거리에 들어서면 항상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있었다. 습한 먼지와 모래를 품은 그리고 따뜻한 햇살에 데워진 냄새였다.
"먼지 냄새 장난 아니다."
여유로운 아침 여행객들과 함께, 카오산 로드의 먼지 냄새를 맡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나는 이 냄새가 좋았다. 하루의 시작을 알려주는 냄새였으며, 그 냄새 안에는 내가 느꼈던 평온과 행복을 담고 있었다. 밥을 먹고 거리를 걷고 마사지를 받았다. 저녁이 되면 맛있는 안주와 싱하 맥주를 주문해 먹었다. 우린 그렇게 5일을 카오산 로드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잠시였지만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고민을 잠시 내려놓고 나는 온전히 방콕의 거리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행복했다.
서울로 돌아온 어느 날. 친구 집에서 하룻밤 머무르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서자 익숙한 냄새가 났다. 에어컨 실외기들에 날리는 먼지와 지나가는 차들이 내뿜는 매연이 섞였고 따뜻한 아침 햇살이 냄새를 데우는 듯했다. 분명 카오산 로드에서 느꼈던 그 냄새였다.
여행을 추억하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다. 여행에서 남는 것은 오직 추억과 사진뿐이다. 함께 여행을 같이한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재밌었던 일을 떠올리는 일은 최고의 술자리 안주였다. 또 자기 전에 누워 여행사진을 훑어보는 것도 내일을 또 열심히 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냄새만 한 것이 없다. 냄새는 그 도시를 떠올리게 한다. 코를 지나 머릿속을 헤집어 나를 다시 그 도시들로 돌아가게 했다. 진한 커피 쓴 냄새는 이탈리아를, 에그타르트의 고소한 냄새는 홍콩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방콕 거리의 먼지 냄새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