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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 Apr 11. 2024

두 번째 배낭여행, 작은 설렘들

홍콩 여행기 01

유럽을 다녀온 지 1년. 곧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1년이란 시간은 길고도 짧았고 금세 시간이 흘러버렸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임용 시험에는 합격하지 못할 것이 뻔했다. 우리 과의 졸업생이 50명이었지만 서울, 경기도의 임용 티오를 모두 합쳐도 20명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범대의 취업률은 점점 바닥을 찍고 있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지만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주변 친구들이 모두 같은 처지였고 어린 나이의 치기였을 것이다. 그냥 될 대로 되라라는 마음이었다.


졸업 시험과 임용 시험을 그럭저럭 마치고 백수가 될 예정이었고, 특별한 일 없이 빈둥대던 하루하루를 보내다 문득 여행이 가고 싶어졌다.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형과 수다를 떨다가 여행을 가기로 했다.

"형, 졸업하기 전에 여행 한 번 가요."

"좋지, 길게 한 번 다녀오자."


처음 다녀왔던 유럽은 글로벌 챌린저 프로젝트로 학교에서의 지원을 받았었지만 대학생의 가벼운 주머니 탓에 유럽의 비싼 물가에 치여 여행을 마음껏 즐기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나를 위한 여행이 하고 싶었다. 여행을 가기로는 마음먹었지만 막상 목적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던 곳은 유럽 아니면 가까운 일본 그리고 동남아 정도였다. 매일 스카이 스캐너를 통해 저렴한 항공권을 검색했고 그러던 어느 날 홍콩행 비행기가 26만 원에 올라왔다. 다른 도시에 비해 저렴한 가격에 형과 나는 망설임 없이 이 티켓을 구매했다.


인천공항행 공항버스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는 승무원과 캐리어를 끈 승객들 덕분에 여행을 가고 있다는 것에 실감 났다. 노래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설레 왔다. 여행을 떠날 때 가장 행복하고 설레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공항버스 안이었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의 사람들은 모두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랜만에 도착한 인천 공항의 드높은 천장으로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형이 오길 기다렸다. A형은 그날 여행을 떠나는 과 후배와 함께 나타났다. 우연히 만난 후배와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시간을 보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한식을 먹기 위해 한식당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여행에 대해서 그리고 취업에 대해서 떠들어대던 우린 떡볶이를 맛있게 먹어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각자의 비행기를 찾아 후배와 헤어지고 형과 나는 우리가 탑승할 비행기를 찾아 이동했다.  


나는 언제나 계절의 냄새에 민감했다. 여름 장마철의 흙 비린내, 봄의 꽃향기, 겨울철 차갑고 건조한 냄새를 맡으며 계절이 왔음을 알았다. 특히 그중 차갑고 건조한 겨울의 냄새를 좋가 좋았다. 겨울이 느껴지고 싶어질 때면 슬리퍼를 신고 조용히 집을 나와 근처 벤치에 앉았다.


공항에 일찍 도착하여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것이 좋았다. 출국장에 위치한 작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공항을 오고 가는 비행기를 보는 것은 여행 전 누리는 사치 중 하나였다. 카페의 은은한 커피 향과 공항은 참으로 잘 어울렸다. 특히 겨울에 떠나는 여행에는 이 따뜻한 커피와 겨울의 냄새가 잘 어울렸다. 커피에는 설렘의 향기가 가득 담겨 있다.


공항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환경의 변화는 언어이다. 안내 표지판은 물론 전광판 속 비행기명과 도시 모두 영어로 되어 있는 것은 물론 영어, 일본어로 된 안내방송은 끊임없이 내 귀를 자극했다. 한국어가 아닌 다른 나라의 글자와 말은 내 설렘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여행지에 도착해 한국어가 사라지는 순간 나는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며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나는 이 자극이 이 설렘이 좋았다.

홍콩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버스를 타고 홍콩의 시내로 이동했다. 버스에서 내려 숙소를 찾아가기 위해 큰길을 따라 걸었다. 홍콩 밤거리는 그 어떤 도시보다 화려했다. 유럽의 고즈넉한 풍경과는 달리 홍콩은 오래되고 높은 건물들이 빼곡히 거리를 채우고 있었으며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네온사인이 거리를 감싸고 있었다. 


홍콩 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라는 느낌이 든다. 특히 오감을 만족하는 황홀한 도시라는 수식이 따라다니는 곳이기도 했다. 우리가 도착한 홍콩은 정말 그랬다. 도로를 누비는 빨간 2층 버스는 1년 전 영국에서 봤던 그것과 같았다. 또 오래된 트램이 쇳소리를 내며 도로 위를 누볐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여기저기 보이는 한자로 이곳이 홍콩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두 번째 여행으로 홍콩을 선택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이 작은 도시에서 즐기고 느낄 수 있었다. 화려한 네온사인, 맛있는 음식들, 친절한 사람들, 오래된 건물과 오래된 도시에서 느껴지는 낡은 냄새와 느낌. 이 모든 것들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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