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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쿠 Jun 18. 2021

03_돌연 퇴사를 결심하다

* 이 시리즈는 제가 사서가 되기 전까지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몇년이 지나버린 이야기라 지금과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제게 너무나 중요한 인생의 한 시점이었으므로 이야기를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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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에 대한 조사를 하긴 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사서라는 것은 회사를 그만두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직업 리스트에 하나에 불과했다. 그 리스트 자체도 비현실적이고 덜 구체적이고 허무맹랑한것이 많긴 했다. 신춘문예에 당선되서 작가로 데뷔한다던지, 바리스타가되서 창업을 한다던지, 회사원의 웃픈 일상을 담은 웹툰작가가 된다던지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아마도 이래서 회사를 못 그만뒀던것 같다. 


 하버드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런 조사를 했더래지. 꿈이 있는지, 문장으로 표현할 만한 구체적인 꿈인지. 그리고 10년후 명확한 꿈을 가진 친구들이 꿈을 이루고 사회적으로도 성공을 했더라고 한다. 목표라는 것은 구체적일때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입밖에 냈을때', 그리고 '누군가에게 선언했을때' 더욱 구체화 된다. 나의 꿈도 그렇게 찾아왔다.


 서른을 앞둔 2013년 연말. 10년지기 친구들과 연말파티를 함께 했다. 부평 어딘가의 한 모텔에서 우리는 어울리지 않게 경건한 마음으로 2013년을 반성하고 2014년을 계획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거기서 난 놀랍게도 2014년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사서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말은 그녀들에게 여러번 한적 있었지만, 사서가 되겠다고 선언한건 아마도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어떤 기적이 일어났다. 내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공중에 흩어지지 않고 단단히 뭉쳐 내 맘속에 다시 들어왔다. 마치 마법처럼, 섬광처럼. 내 말은 내 마음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고, 머리속에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로드맵이 착착착 그려졌다. 


 이틀뒤 크리스마스 이브날, 모두 메리크리스마스를 외치며 퇴근하던 때에 나는 팀장님 책상에 조용히 찾아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발표해버렸다. 세상에!! 나의 용기에 감탄이 나왔다.  물론 면담 타이밍을 잡기 위해 화장실도 몇번 갔다오고 손을 떨며 초조해했지만, 6년동안 묵혀두던 그 말을 "실제로" 해버리고 만거다.


 팀장님의 반응은 담담했다. 아니 오히려 쿨했다. 난 왜 망설였던거지 싶을정도로 세상 쿨. 그럼 무슨 일을 할거냐고 물었고 나는 사서가 될거라고 했다. 별 다른 반응은 없었다. 어쩌면 그 회사에 내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날 저녁 난 생애 가장 두근거리는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았다. 퇴근을 하고도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내적 환호를 지르며 혼자만의 해방감을 즐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의 나는 너무나 용감했다. 


그리고 이제 다음 스텝을 밟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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