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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화려하지 않은 곳, 헬싱키

5월의 핀란드 헬싱키 여행기 2

by always mood

핀란드에 도착했다. 오전 10시에 한국을 출발해 9시간가량 비행했는데 현지 시각 오후 2시라니. 한국에 있는 친구들보다 어려진 기분이었다. 시간을 거스르는 느낌도 들었고. 생체 리듬상 평소 같으면 무척 지쳐있었겠지만 어쩐 일인지 내 몸은 무척 가볍고 눈은 또렷했다. 아니, 오히려 이제 막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처럼 흥분돼 있었다.

5월의 핀란드는 예상보다 더웠다. 짐을 싸면서 인스타그램 #핀란드를 검색했는데 눈이 쌓여있는 사진을 본 게 잘못이었다. 두꺼운 옷만 몽땅 챙겨 온 걸 후회했다. 누군가가 예전에 찍은 사진을 업로드한 모양인데, 그걸 최근이라고 오해했다. 모르는 게 힘이란 건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핀란드 스멜

핀에어 셔틀버스를 타고 헬싱키 중앙역에 가기로 했다. 6.3유로였나. 친절한 핀에어 셔틀버스 기사님께 10유로를 내민 후 거스름돈을 받아 챙겼다. 돈거래를 하고 나니 낯선 나라에 와 있다는 게 실감 났다. 짤짤이 동전이지만 우리나라 돈으로 치면 몇 천 원이라고 생각하니 영 어색한 기분.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을 수 없어 지갑에 고이 넣었다.

유로 동전에서는 유난히 철 냄새가 많이 났다. 내 기분 탓일까?

IMG_2233.JPG 계산대에 서서 알맞은 금액을 지불하는게 여행 중 가장 난코스.. 해도해도 헷갈려..


셔틀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왔을까. 드디어 종착역. 헬싱키 중앙역에 도착했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어내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우와. '내가 핀란드에 왔어!!! 여기가 헬싱키라고!!!'

국립 박물관에 가기 전 무거운 캐리어를 역사 내 보관함에 넣어두기로 했다. 헬싱키 중앙역 지하 1층에 보관함이 잘 마련되어 있다. 동전을 넣고 열쇠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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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예쁜 열쇠가 나왔다. 열쇠마저 예쁘다고 감탄했다.



핀란드 국립박물관(The National Museum of Finland) 둘러보기

IMG_2061.JPG 헬싱키 중앙역

중앙역에서 여행자의 필수코스. 기념 촬영을 마친 후 근처 핀란드 국립박물관에 가보기로 했다. 국립박물관이 있는 곳으로 잘 찾아왔는데, 국립박물관의 모습을 한 건물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근처를 뱅뱅 돌면서 이 문 저 문으로 기웃거리기를 10여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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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많이 본 곰이 보였다. 어라, 이 녀석 박물관 앞에 있다고 한 녀석인데.. 시선을 들어 위를 본 순간.

아, 공사 중이었구나. 박물관이라고 하기엔 조금 괴팍한 모습으로 우리를 환영했다. 덕분에 온전한 외관을 볼 순 없었지만 공사 중인 박물관을 보는 경험도 흔치 않을 거라는 심심한 위로를 하며 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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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를 지불하면 위와 같은 스티커를 준다. 옷 위에 붙이고 다니는 용도로 입장권을 대신한다고 한다. 감각적인 민트색이 예쁘다.


핀란드 국립박물관은 그 규모가 굉장히 소박했다. 핀란드 지역에 정착한 옛 거주민들의 역사와 생활모습, 현대 미술 전시가 있었지만 생각보다 작은 규모였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고 박물관 투어를 마칠 수 있었다.

071.jpg 박물관 천정에 그려진 벽화.
079.jpg 스테인드글라스
084.jpg 핀란드 옛 가구, 내가 좋아하는 민트색
081.jpg 핀란드인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담고 있는 흑백 필름.

영어 설명이 부분적이었던 탓에 관심이 갔던 유물의 용도나 히스토리를 접할 수 없었던 점은 아쉬웠다. 짬을 내서 2시간 정도 돌아본다면 충분할 것 같다.


IMG_2091.jpg 조명이라는게 없던 시절 그 때 집은 딱,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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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2094.jpg 예쁜 그릇이 좋은 나는 아무래도 여자인가보다.


078.jpg 반해서 여기 앞에서 여러컷을 찍었다.


있을 건 다 있는 시골

허기가 진 우리는 무얼 좀 먹기 위해 번화가로 가기로 했다. 수도에 있는 번화가라 하기엔 사람도, 상점도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여유가 있었다. 핀란드 여행 내내 난 이게 참 좋았다. 난 사실 '느리게 걷는 사람'이다. 출근길에 날 본 대리님이 9시 5분 전인데도 걸음이 너무 느려 놀란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을 만큼.

지방 중소도시에서 살던 내가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에 왔을 때, 지하철을 처음 이용하면서 가장 놀랐던 건 사람들의 걸음이 너무도, 심각하게 빠르다는 거였다. 무표정을 하고 빠르게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열심히 산다는 생각보다는 섬뜩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물론 서울 생활 1년 만에 그 무리 중 1인이 됐지만. (사실 걸음은 빠른 축에 못 낀다. 늘 사람들이 날 따라잡는다.)

그런 느릿한 여유로움이 날 지배하는 탓 일진 모르겠지만 헬싱키 사람들의 느린 걸음과 여유 있는 미소가 난 무척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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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jpg 혼자 놓여있는 벤치마저 여유로워보였다. 민트는.. 취향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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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 최대의 백화점이라고 들은 스톡만 백화점에 왔다. 최대라고 하기엔 겸손한 모습이 우릴 반겼다. 이래서 좋다. 애써 화려하지 않은 곳. 그렇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시골 같은 느낌이 정말 좋다.


백화점 위층에 올라가 푸드코트를 기웃거렸지만 마땅히 먹고 싶은 음식이 없었다. 무엇보다 한 접시에 3만 원을 훌쩍 넘는 사악한 가격이 우리의 배고픔을 잠재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왕 힘들게 간 거 돈 아끼지 말고 먹고 올걸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 당시 우리는 그랬다.

빈 의자에 앉아 핀에어에서 기내식 받은 과자와 빵을 먹어치웠다. 솔직히 좀 불쌍해 보였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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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jpg 천장 통창이 멋스럽다. 겨울이 긴 핀란드는 자연 채광에 무척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핀란드에 오면 꼭 가기로 한 '카페 알토'로 향했다. 밥은 대충 먹고 좋은 카페를 찾는 심리는 대체 뭘까?..


카페 알토는 <카모메 식당>이라는 일본 영화 배경으로 나온 곳이다. 실제 카페에는 일본인들이 많았다. 메뉴판도 일본어가 제공된다. 카페 알토는 핀란드 건축 거장 <알바 알토>가 설계한 아카데미아 서점 내에 있다. 그가 직접 카페 내부의 테이블과 의자, 조명을 초이스 했다고 하니 더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112.jpg 아메리카노는 굉장히 썼다.

핀란드에서는 아이스 음료를 찾기가 어려웠다. 생각보다 더운 날씨와 두꺼운 옷 탓에 시원한 냉수가 마시고 싶었지만, 얼음이 동동 뜬 아이스 음료를 팔지 않아 쓴 아메리카노로 대신했다.


IMG_1869.jpg 5월, 핀란드의 오후 8시

핀란드의 밤

오후 8시.

숙소에 가기 위해 트램을 타러 밖으로 나왔다. 오후 8시가 이렇게나 밝다니! 북유럽의 여름은 백야 현상으로 새벽 2-3시까지도 해가 지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핀란드 여행 내내 해가 지는 걸 보는 건 힘들었다.


숙소로 가기 위해 트램을 탔다. 숙소는 디자인 디스트릭트에 있는 곳인데, 3 정거장을 지나쳐 잘못 내리는 바람에 다시 돌아가느라 9시가 훌쩍 넘었다. 개인 사정으로 호스트가 집 열쇠를 편의점에 맡겨 두었다기에 숙소 앞 편의점에 들어가려는데 앗, 문이 잠겨있는 게 아닌가? 영업시간을 보니 오후 9시까지. 무슨 편의점이 오후 9시까지만 영업을 하냐구..! 당황한 우리는 문을 신나게 흔들고 두드리고 난리 부르스를 췄다. 다행히 퇴근 전인 직원이 나왔고 우리는 무사히 열쇠를 받아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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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5.jpg 포근하고 아늑한 NINA의 집. 에어비앤비로 예약했다.


핀란드는 오후 6시가 넘으면 길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현저히 준다. 대부분 상점은 9시 전에 문을 닫는다. 늦은 밤까지도 불야성을 이루는 한국과 비교하면 정말 낯선 풍경이다. 일찍 집에 들어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내일을 위한 재충전을 할 수 있으니 핀란드 사람들의 여유로운 모습은 이런데서부터 만들어지는 듯했다. 부럽다.





북유럽 여행 사진을 정리하다 당시 느꼈던 감정, 상황들을 잊지 않고 싶다는 생각으로 북유럽 여행기를 브런치에 정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5월 4일부터 5월 11일까지 핀란드 헬싱키 → 덴마크 코펜하겐 → 핀란드 헬싱키의 일정으로 7박 8일의 여행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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