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과연 많은가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이 참 많죠.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도덕, 음악, 미술, 체육, 기술가정, 역사, 한문, 컴퓨터 등 중학교라면 이 정도 되겠네요.
예전에 저는
'아이들이 너무 힘들겠다', '불쌍하다', '아이들은 행복해야 하는데', '공부만 하니까 안쓰럽다' 이런 생각을 기본적으로 하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제가 공교육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공교육에 대한 비판 정신만 있었던 때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안학교만 열심히 알아보고 다녔어요. 근데 그거 아시나요? 대안학교 학부모들 중 공교육 교사가 많다는 것을...(속닥속닥)
대한민국은 그냥 공부라고 하면 안티 정신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어른인 저도 그랬으니까요. 아이들은 얼마나 더 그런 마음이었겠습니까.
교과목이 많기는 하지만, 교과서 한번 들여다보시면 컬러풀하고, 크기도 크게 책이 잘 만들어져 나옵니다. 일주일에 책을 한 권씩 읽는 사람이 있다면 주요 교과서는 두 달 안에는 끝나는 분량쯤 되지 싶어요. 이 한 권을 어느 과목은 1학기동안 혹은 1년에 걸쳐 배우게 됩니다. 과목이 다양하지만 양이 절대적으로 많다고 생각이 되진 않습니다. 하루에 보통 6시간 정도 수업을 하고 45분+10분 휴식으로 이루어져 있죠.
진도도 과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수업 한 시간이면 소단원 하나정도나 2장 정도 진도를 나가기도 합니다. 어느 날은 그거보다 덜 나가기도, 더 나가기도 하겠지요.
학교가 끝나고 학원을 가서 몇 시간씩 공부하는 아이들은 전체적으로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니 힘들 수 있어요. 그러나 학교 수업만 하고 집에 와서 노는 아이가 있다면 우리는 그 아이가 공부를 많이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겁니다.
학교+학원이 하루의 스케줄이 되면서 아이는 인풋의 세상에서만 살게 되니 힘이 들기도 할겁니다. 내 것으로 만드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니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 저는 임작가님이 쓰신 '완전학습 바이블'이라는 책을 추천합니다. 진심으로 저는 이 공부법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학원을 가야 된다 아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닙니다. 사교육은 필요한 아이가 분명히 있고, 효과 보는 아이도 있어요. 필요에 따라 선택을 하는 거지, 좋다 나쁘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닌 거 아시죠.
또 최근에 알게 된 책이 있는데 현직 교사께서 쓰신 '교과서는 사교육보다 강하다.'라는 책도 좋습니다. 저자특강을 들어봤는데 공감되는 부분이 참 많았어요. 개인적으로 학교 수업 + 교과서 예습 복습이 매일 꾸준히 잘 이루어진다면 사교육에 맹목적인 의지는 안 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아이들 입장에서도 공부량이 너무 많아 힘들어 죽겠다 소리도 나올 것 같진 않네요.
그러면 교과목은 왜 저렇게 많으냐.
저렇게 다양한 교육을 우리는 학교가 아니면 배울 수 없습니다. 고등학교까지 많은 과목을 공부하게 되고, 졸업하면 어디에서도 학교와 같은 수업은 들을 수가 없지요. 성인이 되어서 배우려면 학원을 가든, 주민센터를 가든, 도서관을 가서 배우든 돈을 내고 배워야 할 겁니다. 근데 학교에서 무료로 가르쳐주니 완전 땡잡은 거 아닐까요.
저렇게 많은 과목 중에서 우리는 좋은 과목, 싫은 과목이 생기죠. 제가 진로상담을 하면서 다 물어봐도 모든 과목이 다 싫다고 말하는 아이는 없었습니다. 최소한 체육이라도 좋던가, 음악 혹은 미술시간이라도 좋아합니다. 네. 이렇게 아이들은 다양한 과목을 접하며 그 안에서 내게 맞는 혹은 호불호의 과목을 찾아낼 수 있죠. 그런 과정에 있는 것이 중고등학교라고 생각합니다.
과목을 통하여 나의 흥미와 적성을 알아낼 수 있기도 하지만, 가끔은 어떤 선생님이 좋아서 그 과목이 좋아지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겁니다. 누군가로 인해 어떤 과목이 좋아지는 것은 참 좋은 계기가 됩니다. 저는 완전히 그런 경험이 있어요.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그 과목은 무조건 100점! 100점! 100점! 이런 경험 다들 있지 않으신가요?
그리고 다양한 과목을 통하여 우리는 기본적인 상식과 지식을 갖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클래식의 역사, 악보 보는 법, 운동 경기의 규칙, 영양소의 기본 지식 등등 국영수 주요 과목 외의 과목은 왜 배우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이런 지식들은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도 상식의 기초가 됩니다.
'지대넓얕'이라는 발음도 재밌는 책 아시죠?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줄임말이에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책도 나오는데, 거기에 딱 맞는 게 교과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과서는 참여하는 분들도 많으니 좀 더 깊이도 있을 테고요.
아이들이 항상 궁금해하는 (혹은 푸념하는?) '과목이 왜 이렇게 많은지'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학교에 있을 때 아이들에게도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었고요.
교육부에서 만들어 놓은 교육목표, 교육의 방향들이 있겠지만, 그런 거창한 이야기보다는 20년 이상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아이를 둘 키우는 입장에서 그저 저의 생각들을 써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