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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 Sep 15. 2019

한 달간의 면접 여행

취준생은 어쩌다 취업 유랑민이 되었나

약 한 달간 유럽 11개 도시를 돌며 도전한 끝에, 2018년 10월 세르비아 벨그레이드에서 최종 면접에 합격했다. 


누구도 승무원이 되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면접을 보러 다니는 ‘취업 유랑민’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듣지 못했을 것이다. ‘이 정도 생겼으면 됐지, 나 정도 영어를 하면 되지’ 생각하고 시작한 승무원 준비는 2년 동안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게 했고, 결국 한국 땅을 등지고서야 외국에서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중동 항공사의 많은 한국인 승무원들이 꿈을 이룬 것처럼, 지금도 많은 한국인들이 세계 곳곳에서 면접을 보러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나는 얼마나 많은 면접에서 떨어졌나

2016년 5월부터 2018년 9월 출국 전까지, 국내에서 열리는 모든 항공사의 면접에 지원했었다. 얼마 정도 많이 지원했냐면, 2년 정도 준비하고 나니 한 항공사만 네 번째 지원이었다. 딱 한 번 동남아계 항공사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 경우를 제외하곤, 나는 항상 1차 면접에서 떨어졌다. 이건 사실 승무원 준비생에겐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데, 1차에서 떨어진 건 승무원에게 필수인 ‘이미지’가 맞지 않아서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떨어졌을까

‘나 정도면 되겠지!’ 생각하고 시작했던 승무원 준비는, 세상에 나보다 잘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실패를 거듭했다. 일단 승무원 면접 경쟁률 자체가 엄청나다. 우리나라 최대 대형 항공사가 한 공채에서 150명을 뽑는다 치면, 1차부터 보이는 인원이 10,000명 내외라 할 수 있다. 게다가, 흔히들 말하는 ‘이쁜 애 옆에 이쁜 애’라고… 면접장만 가면 세상에 어리고 이쁜 친구들이 다 모였다. 우리나라 항공사는 외적인 이미지를 중요시하기에, 면접에서 승패를 가리는 것은 역시 이미지다. 흔히 말하는 토익 몇 점, 봉사활동 경험, 사회 경험 등의 스펙은 참고 사항일 뿐이다. 한국에서 면접을 진행하는 외국 항공사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경우, 면접 초반은 한국인 면접관들이 심사하기에 외적인 이미지가 우선시 된다. 서류 합격률이 매우 낮은 유럽계 항공사의 경우, 언어적 능력과 해외 경험을 우선시하기는 한다. 그래서 운 좋게 서류를 통과하고 면접장에 가보면,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서 나고 자랐다던가,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한다든가 하는 황금 스펙들이 많다. 게다가 이쁘기까지 하다. 한국에서 영어를 배우고, 몇 개월 영어권으로 교환학생 경험이 있는 평범한 나를 딱히 뽑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초반에 여권을 도난당해 만든 임시 여권. 이 여권으로 동유럽 곳곳을 다녀서 그 흔적들이 가득하다. 



다, 때가 있다

2018년 9월, 나는 2년간 도전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출국했다. 한국에서 해볼 만큼 다 해봤다 결론을 내렸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마침 또 그동안 한국인을 고용하지 않던 중동 항공사들이 슬슬 한국인을 채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침, 내가 준비를 시작할 때부터 채용을 닫았던 회사라 한 번도 면접 기회를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막연한 희망도 있었다. 언젠가는 다시 이 회사들이 채용할 것을 대비해 이에 맞춰 나름의 플랜 B도 준비했었다. 다시 채용을 재개할 걸 염두에 두고 1년 4개월 회사생활을 하면서 많지 않지만 돈을 모아 두고 있던 터였다. 그렇게 나는 출국했다. 물론 그렇다고 쉽게 한 번에 붙지는 않았다. 우리 회사만 유럽에서 총 5번, 로마-마드리드-키에브-프라하-벨그레이드에서 면접을 봤다. 나처럼 생각하고 머나먼 타지에서 면접을 보기 위해 온 한국인들도 많았다나름의 발전이었다면, 이제 1차는 거뜬히 통과했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보는 항공사 면접이라고 국내랑 크게 다르지는 않다. 오히려 한국보다 면접 시간이 더 짧다. 1차 면접은 내 이력서를 면접관에게 제출하며 간단한 인사말 정도 오가는 정도. 그동안 면접관은 내 이미지를 스캔한다. 사실 이력서는 형식적일 뿐이고, 잘 읽지도 않는다. 문지방을 밝고 들어 오면서 보이는 이미지, 인사말을 건네는 미소와 태도를 본다. 이 과정에서 많은 한국인들이 떨어졌다. 보통 한 도시에 100명 내외 정도의 인원이면, 항상 어느 도시든 20명 정도는 한국인이었던 것 같다. 감사하게도, 유럽에서 나는 항상 1차는 통과했다. 그럴 때마다, 항상 한국에서 떨어지기만 했기에 얼떨떨하면서도 감사했고, 또 2년 동안 숱하게 떨어졌던 추억을 되새기며 씁쓸하기도 했다. 결국 마지막 도시, 세르비아 벨그레이드에서 합격했다. 




인생에 한 번쯤은 ‘승무원’

나는 지금 이 글을 동아프리카 지부티에서 쓰고 있다. 내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이 나라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고, 이토록 바다가 아름답고 햇살이 눈 부신 자연을 가진 보석 같은 나라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이게 바로 중동 항공사 승무원이 되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한다. 세계 곳곳에서 온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세상이 이렇게 넓다는 사실을 하나둘씩 배워가는 소중한 경험은 승무원만이 몸으로 체험하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면접을 보러면 항공권 지불부터

중동 항공사 승무원도 그렇게 쉽게 될 수 있지는 않다. 다행인 것은, 그나마 우리 항공사는 저번 년부터 지속해서 한국 채용을 열고 있지만, 어쨌든 한국에서 채용한다면 한국인들끼리 경쟁이 만만치가 않다. 국내 채용을 제외하고도, 중동 항공사들은 전 세계에서 채용을 꾸준히 진행한다. 매달 여러 도시에서 인터뷰 일정이 잡혀있다. 여기에 참여하려면 재정적으로 준비돼 있어야 하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야 한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든 사회 초년생들이 쉽게 도전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나는 승무원 준비는 짧게 보지 말고 길게 봐야 된다 생각한다. 나 또한 재정적으로 집에서 뒷받침해줄 수 없었고, 서울에서 자취하며 준비했기에 면접을 보기 위해 자금을 모으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운이 다가 아니다

나는 해외로 면접을 보러 갈 날만 손꼽으며 영어 실력을 높였고 서비스 분야에서 일하며 에티튜드(attitude)를 몸에 익혔다, 입사하고 나서 보니 한국인 외국인 동료들 모두 다 ‘제각각’으로 생겼다. 적어도 외적인 부분은 한국만큼 엄격하지 않다. 심지어 ‘어? 어떻게 저 사람이…’라고 감히 생각하게끔 만드는 사람들도 종종 본다. (하하) 그래서 주변에서 흔히들 중동 승무원은 ‘그냥 운으로 되는 거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공감은 한다. 그럼에도, 내 인생을 단순히 운에다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나만의 경쟁력이 뭘까, 고민하고 발전시켰는데 그게 ‘영어’와 ‘태도(attitude)’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수많은 면접에서 떨어져도, 나는 항상 꾸준히 실력을 쌓았고 커리어를 쌓았다. 비록 한국에서 수많은 실패를 경험했지만, 언젠가 이걸 알아봐 주는 회사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나는 이게 내 합격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어 실력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미소는, 면접만을 위해 준비하고 소모된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인생의 자산이 되었다.




노력의 끝에서

최종 면접에서 면접관이 내게 물은 질문은 단 하나다. ‘그래서, 그동안 면접을 보며 스스로 어떻게 발전시켰는데?’ 사실 두 면접관 모두 나를 한 번씩 이전 면접에서 떨어뜨린 적 있는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최종 면접을 진행하던 면접관은 불과 2주 전, 우크라이나 키에브에서 나를 떨어뜨렸었다. 그리고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분은 계속 나에게 ‘한국인들 끊임없이 면접 보러 다니는 거 안다. 근데, 그 사이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2주는 너 스스로를 발전시키기 너무 짧은 시간이다.’라고 몇십 분 동안 이 주제로 캐물었다.



나는 면접관 눈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목소리를 높이며 '주장' 했던 것 같다. 2년 동안 많은 노력을 했으면 됐지, 면접의 끝에서도 나의 노력에 대한 발전을 묻다니. 어쩌면 나는 그동안의 서러움을 담아 목소리 높여 주장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의 대답은 별거 없었다. 면접을 보러 다니며 한국인들이랑 대화한 게 아니라 외국인 지원자들이랑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하려 노력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솔직히 인정했다. 사실 외국인들이랑 대화하는데 두려움이 있었다고. 그걸 극복하려 나름 노력했다 대답했다. 목소리가 떨렸고, 긴장되다 보니 아무 영어나 내뱉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노력'에 대해 말할 자신이 있었기에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유창하진 않지만 내 나름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영어 실력도 있었고, 그동안 외국인을 상대하는 서비스 업무를 맡으며 기른 공감과 경청의 태도가 그분들이랑 대화를 오고 갈 때 발휘되지 않았을까. 마지막에 인사하고 돌아서는 순간, 면접관은 'Fantastic!'이라 외쳤다. 그 순간 그게 합격 신호임을 느꼈다.




로마에서 제네바로 가는 도중, 국경에서 경찰들이 내가 탄 버스를 멈춰 세우고 짐 검사를 하는 모습.



포기하지 않기

준비생들 사이에서 서로를 격려해주며 하는 말이 있다. ‘승무원은, 포기만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된다.’ 멀게만 느껴졌던 꿈을 이루고 나니, 또 그동안 스쳐 지나갔던 인연들이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맞는 말이라 생각이 든다. 



사실, 유럽에서 두 번째 면접이었던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최종면접에서 떨어졌었다. 면접을 보고 이틀 후 이메일로 불합격 메일을 받았는데, 스페인 거리에서 주저앉고 엉엉 울었었다. 면접을 나름 잘 봤다 생각했고, 합격할 거라 생각했는데 다시 이 도시 저 도시를 돌며 면접을 봐야 한다니… 한순간에 그동안 참고 견뎠던, 내 안의 무언가가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 당시, 나는 몇 주 뒤 유럽 반대편에서 최종 합격할 거란 사실을 몰랐었다. ‘포기하지 않아서’ 된 거다.



지금도 나는 그때만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난다. 그만큼 너무 힘들었다. 한국에서 2년 동안 허송세월을 낭비한 게 아닌가 싶고, 이게 뭐라고 지구 반대편 곳곳을 돌아다니며 면접을 봤나. 하지만 그 덕분에 한 사람으로서 더 성숙해지고, 더욱 이 직업에 대한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있게 됐던 것 같다. 오랜 준비생들에게 전하는 심심한 위로는,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언젠가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안돼도 괜찮다. 그동안 나처럼 많은 이야기를 쌓고, 되고 나서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다면, 손쉽게 얻은 결과보다 더욱더 빛나는 성공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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