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면접관이 관상가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동 항공사 면접은 국내보다 면접 시간이 더 짧다. ‘하이, 하와유?’에서 끝날 수도 있다. 일명 ‘30초’ 컷으로, 면접관은 인사말 하나로 지원자를 스캔한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지원자의 외형적 이미지를 보고 다음 전형으로 통과시킬지, 거기서 떨굴지를 정한다.
어떻게 보면, 국내 항공사보다 면접자에게 주어진 기회가 박하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전 글에서 묘사한 국내 항공사 면접과 비교한다면, 어쨌든 외적인 이미지를 보는 건 매 한 가지 아니냐,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결과가 다르다.
이쁜 사과만 골라 담아 포장한 사과 한 박스가 국내 항공사라면,
사과 한 개, 망고 하나, 오렌지 두 개 등등… 볼거리 다양한 시장바구니 같은 곳이 중동 항공사랄까.
얼굴을 보긴 보는데, 정말 얼굴을 ‘대면’하는 것이지 외형적으로 합불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 같진 않다. 그래서 중동 항공사 준비생들 사이에선 '운으로 붙는다’ 할 정도로, 합격생들을 보면 생김새가 제각각이다. 그렇담, 대체 이 사람들은 무얼 보고 사람을 뽑는 걸까?
중동 항공사 면접관은 지원자의 외형보다 말을 할 때 풍겨 저 나오는 전체적인 이미지를 보는 것 같다. 그렇다고 외국인 면접관들이 관상을 좀 볼 줄 안다는 건 아니다. (웃음) 평소에도 어떤 모임을 나가면, 이상하게 ‘끌리는' 사람들이 있다. 외형적으로 끌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신기하게도 정말 어떤 사람은 말을 하는 모습에 끌리기도 하고,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끌리기도 한다. 이처럼, 면접관들은 자신과 일대 일로 대면을 했을 때, 전체적인 면접자의 ‘매력’을 보고 다음 전형으로 넘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같다.
외항사는 저마다의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일단 외형적인 스타일을 비교한다면, 국내와 정말 많이 다르다. 국내 항공사들은 모든 지원자들에게 일명 ‘모나미 룩’을 입고 면접에 참여하도록 한다. 흰 블라우스에 검정 치마. 똑같은 옷을 입혀 놓고 (일명 default 상태랄까) 순전히 면접자의 외형을 보기엔 최적화된 방법을 사용한다. 사과를 여러 개 모아 놓고 가장 예쁜 사과를 고르기엔 적합한 방법이지 않을까.
반면, 외항사는 자기 개성에 맞춰 다양한 옷을 입는 걸 허용한다. 물론 비지니스 룩에 한에서 말이다. 외항사 면접장을 가보면 빨주노초파남보로 정말 다양한 색깔의 면접복을 입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화장도 제각각이다. 진한 화장이 어울리면 일명 ‘교포 화장'도 되고, 화장이 별로 안 어울린다 싶으면 연하게 하고 면접 봐도 된다. 가장 자신 있는 모습으로 면접에서 그 매력을 어필하면 된다.
내가 면접을 보러 유럽을 돌아다닐 때 만난 지원자 중 인상 깊은 분이 있었다. 그분은 한국인이라 생각 못할 정도로, 피부가 까무잡잡한 동남아 ‘미인상’이셨다. 소라머리를 하셨고, 의상도 동남아 스타일 같은 이국적인 원피스였다. 수많은 유럽 지원자들과 한국인들 사이에서 유난히 튀었다. 단순히 얼굴을 떠나, 그렇게 입은 모습이 정말 매력적으로 보였고 잘 어울렸다. 결국, 그분은 그날 최종 합격을 하셨다.
중동 항공사에 입사를 하려면 영어를 어느 정도 해야 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영어를 잘해야 된다는 건 아니다. 조금 극단적인 예를 들기 위해, 다시 그 동남아 미인상이었던 지원자 이야기로 돌아가자. 사실 그분은, 당시 면접에 참여했던 한국인 지원자들에게 충격을 줄 만큼 영어 실력이 형편없었다. 합격했던 그 면접 전에 다른 도시에서도 면접을 봤는데, 당시 면접관과 간단한 인사말 정도의 대화에서 동문서답으로 대답했는데도 다음 전형으로 통과가 됐더란다. 근데 그다음, 1차 전형 다음에 있는 간단한 영어 테스트에서 떨어지셨다고… 이건 좀 극단적인 예다. 요즘 입사하는 한국인들은 대부분 영어 회화에 능통하다. (외항사 승무원의 영어실력에 관해선 다음에 글을 쓰도록 하겠다.)
중동 항공사 합격 요인을 키워드로 뽑아내 보자면, 자신감, 외국어(영어), 매너로 나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종합적으로는, 외국인과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때 얼마나 자신감 있게 말을 하는지를 보는 것 같다. 1,2차 면접에서 짧은 대화로 면접의 승패가 결정됐다면, 파이널 면접은 면접관과 1:2로 ‘프리 토킹'을 한다. 어쨌든 이 지원자가 영어만 사용하는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냐를 마지막에 점검받는다. 이때 보여줘야 하는 건 자신감. 영어가 자신 없어도, 당당하고 밝은 모습을 보여줘서 합격한 사례도 많다. 아마 그 ‘동남아 미인상’ 지원자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원자는,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영어 실력을 뽐내야 한다. 유창하지 않더라도, ‘나 이 정도로 영어 해! 지금 존X 떨리는데, 그래도 너랑 지금 이야기하고 있잖아?’ 이런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경청과 공감의 자세도 보여줘야 한다. 종종 중간에 면접관이 조언을 해줄 때도 있다. 나의 경우, 입사하기 전까지 영어 텍스트를 많이 봐라 조언해 주었다. (어쩌면 이게 합격 신호였을 수도 있다.) 트레이닝 때 주구장창 영어로 된 매뉴얼을 읽어야 하는데, 지금부터 그 읽기 능력을 길러라는 조언이었다.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이고, 중간중간 맞장구를 쳐주면, 말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신이 날 거다.
당신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다른 지원자들과 다른 ‘어떤 것’을 보여줄 수 있는가. 내가 추천하는 바는, 마냥 운에 기대서 아무것도 안 하고 무조건 지원하는 것보다, 꾸준히 자신만의 필살기를 길러서 그걸 '발휘할 때를 찾아다 다니는 거'다. 외항사는 워낙 뽑히는 지원자가 다양하기에, 오래 준비하면 할수록 '운이 좋아 걸린 케이스'와 자신을 비교하며 자포자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일수록 중심을 잡자. 운도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