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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hie 다영 Lee Nov 2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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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픽션입니다, <미나리> 약스포 있습니다

<덜컥,>

여관 방의 오래된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는데도 엄마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그저 침대에 앉아있었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반대편 건물의 초라한 벽만 보이는 창 밖을 보면서 손에 배긴 굳은살을 뜯고 있었다. 거칠거칠하고 딱딱한 엄마 손의 감촉이 생각났다. 일주일 가까이 이곳에서 지냈는데도 그 작은 방에서 엄마의 모습만 오려낸다면 누가 왔다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휑했다. 엄마의 삶에서 아빠와 나, 동생을 지워내고 나면 무엇이 남기는 할까.


"저건 수컷 병아리들이야. 수컷은 알도 못 낳고 맛도 없어서 쓸모가 없거든. 그러니까 아들, 꼭 쓸모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영화 속, 양계장 굴뚝으로 나오는 연기를 보며 저게 뭐냐고 묻는 아들에게 아빠가 말했다. 그 말이 너무도 아리게 가슴팍에 와서 박혔다.


"영주야, 공부 잘하면 애들이 널 무시할래야 할 수가 없어. 너 일만 잘하고 공부만 잘해봐라, 주변 사람들이 다 너 끼워주고 싶어서 안달이지. 그니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쁘고 착해봐야 아무 소용 없어. 자기 할 일만 잘하면 된다 이 말이야,"

아빠는 항상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셨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딱히 없던 내가 공부에 미친듯이 매달린 것도, 대학을 다니면서도 쉬지 않고 알바를 하고, 매 방학마다 인턴을 구하느라 전전긍긍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나는 쓸모가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필요한. 대체할 수 없는 그런 사람.


그리고 나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 하고나면 문득 그 생각을 한 스스로가 너무 수치스럽고 부끄러웠다. '엄마 같은 삶이 어때서?'라고 생각하면서도 부디 그게 나는 아니길 바랐다. 우리 가족은 모두 엄마를 사랑했지만 동시에 엄마는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존재이기도 했다. 30년 가까이 아침밥 한번을 거른 적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은 꼭 먹고 출근하는 아빠 덕분에 지켜진 아침밥상이었다. 엄마는 그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엄마의 꾸준한 아침밥상이 가족을 지킨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엄마의 친구,  삼촌, 다른 이혼한 부부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엄마는 항상 흉을 보듯 목소리 낮춰 얘기하고는 했다.

"글쎄, 남편 밥을 안 챙겨줬다지 뭐라니. 쯧쯧.."


그런 엄마가 아빠에게 집안일이나 우리를 양육하는 일에 소홀하다고 조금만 서운한 소리를 하면 아빠는 항상 말했다. "그럼 당신이 나가서 돈 벌어오던가." 폭력적인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 또한 엄마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싶을 때마다 꺼내들던 카드였다. "엄마는 일도 안 하잖아. 엄마가 뭘 알아." 짜증에 툭 내뱉고는 그런 말을 뱉어버린 나 자신을 미워했다. 한번 입에서 나온 말은 다시 돌려담을 수 없었고 그런 말들을 엄마는 수도 없이 당신의 마음에 담아 내고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나를 대했다. 학생일 때는 공부한다고 온갖 예민과 유세를 떨고, 인턴을 할 때는 일에서 쌓이고 힘든 모든 것들을 집에서 풀었다. 엄마는 엄마였으니까.


아빠가 바람을 피웠다. 상대는 같은 회사의 몇 살 더 어린 팀장이었다. 아니, 바람인지도 확실치 않다. 그저 엄마는 아빠가 그 여자와 몇번 연락을 주고받는 것을 봤을 뿐이고 그때부터 새벽마다 엄마는 나에게 전화를 해서 아무 말도 없이 울곤 하셨다. 미국에서 공부 중인 남동생은 이 모든 상황을 알 턱이 없다. 엄마는 최선을 다해서 동생에게 이 사실을 숨겼다.

"영주야, 엄마 아빠 이혼할거야. 엄마 아빠 갈라서면 지금 이 집도 정리해야 할지도 모르고, 너 자취방 월세도 못 내줘. 그러니까 너도 이제 가리지 말고 빨리 알아봐서 취업하고 독립해."

대학교를 졸업했고, 더이상 서울 자취방을 유지할 돈도 여력도 나에게는 없었다. 일단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본가로 내려와야 했다. 새벽마다 엄마 아빠의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최선을 다해서 그 소리를 무시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래도 엄마 아빠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고요한 어둠을 뚫고 내 귀를 파고 들었고 나는 그저 그렇게 누워서 둘의 싸움을 다 듣고 있어야 했다. 지겨웠다.



"영주야, 너는 엄마가 꿈꾸던 삶을 살고 있네... 좋겠다 영주야."

처음 대학에 입학해 학교 앞에 있는 자취방에 필요한 가구와 용품들을 사고 이런저런 준비들을 할 때 엄마는 나와 몇일을 함께 지냈다. 나는 틈틈이 엄마와 서울의 유명한 카페들을 가고, 번화가에서 쇼핑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엄마는 그때마다 기분이 좋은 듯 내 팔짱을 끼며 그런 말을 했다. 엄마는 사남매의 셋째 딸이었는데 엄마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할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계가 완전히 기울었다고 했다. 연년생 막내둥이 남동생은 꼭 대학을 보내야겠다 싶어서 결국 엄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참 고달픈 2년이었다고 했다.

"내가 뭘 할 줄을 알았겠어, 그래도 그냥 뭐든 시키는대로 성실하게 했지. 근데 동생이 학교 다니는 거 보니까 나도 너무 대학이 가고싶더라. 나도 학급에서 공부는 꽤 했었는데.."

대학이 너무 가고 싶었던 엄마는 월급을 받는 족족 서점에서 문제집을 잔뜩 사놓고 밤을 새워서 풀었다고 했다. 그렇게 혼자 공부해서 지방의 작은 대학에 혼자 힘으로 입학하고, 매 학기를 장학금을 받지 못할까봐 벌벌 떨면서 공부를 했다고 하셨다. 결국 엄마는 학과 수석으로 졸업을 했고 얼마 안되서 지인의 소개로 아빠를 만나 젊은 나이에 결혼을 했다.


한번은 엄마가 콩나물 다듬는 것을 도와주며 넌지시 물었다.

"엄마, 행복해?"

엄마는 웃으며 한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럼, 행복하고 말고. 엄마만치럼 행복한 사람이 어딨어. 큰 회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회사에서 월급 꼬박꼬박 받아오고 인정받는 남편있지, 공부 잘 하구 똑부러진 아들내미 딸내미 있지.. 엄마는 느이 아부지 와이프라 행복하구 느이들 엄마라 너어무 너무 행복해!"

"그래도, 엄마도 되고 싶었던 거나, 꿈꿔온 인생이 있을 거 아니야. 그냥 이렇게, 엄마로 사는 인생이 엄마 진짜 행복해?"

"얘가 왜 이래? 엄마는 엄마여서 행복해! 지금이 엄마가 꿈 꿔오던 인생이야"

재차 과장되게 대답하는 엄마의 모습에 왠지 코 끝이 찡해졌다. 한치의 망설임 없이 엄마라서 행복하다는 말이 좋으면서도 싫었다. 나는 엄마처럼 엄마로 행복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 한편으로는 내가 엄마처럼 한 남자를 만나고 그를 너무 사랑하게 되어서, 그의 와이프, 아이들의 엄마로 남는 인생을 행복하다고 생각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나는 나를 너무 잘 아니까.


여자는 모든 것을 잘하지 못하면 무용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집에서 살림만 하면 경제활동을 못하니까 그랬고, 경제활동을 해도 집안일을 못하면 그것도 그것대로 문제가 되었다. 내가 살이 찌면 엄마는 항상 그런 내 몸을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일을 하느라 바빠서 살이 많이 빠졌던 시기에는 잘 챙겨먹지 않는다고 혼이 났다.

"삼시세끼 그렇게 닭가슴살에 냉동 도시락에.. 잘한다 잘해!"

"아.. 그럼 어떡해? 언제는 살 빼라며! 요즘 너무 바빠서 밥 먹을 시간이나 있어? 그나마 이렇게 있으니까 잘 챙겨먹는거지.. 엄마는 어떻게 삼시세끼 이렇게 요리를 했대..? 나는 절대 못해"

"너 나중에 결혼하면 어떡하려고 그러니?"

"난 요리 잘하는 남자 만날건데?"

내가 장난식으로 받아치는 말에 엄마는 불같이 화를 냈다. 지랄을 한다 지랄을 해. 엄마는 내가 요리를 안한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걱정하시는 것 같았다. 마치 그게 나의 미래의 이혼사유가 될 것 마냥 전전긍긍하셨다. 돈을 잘 버는 친척언니도 엄마의 잔소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워킹맘이었던 언니가 집에 와서 아이들을 돌보는 걸 힘들어한다고 엄마는 마치 언니가 엄청난 잘못이라도 하는 것처럼 얘기하곤 했다.

"아니, 근데 엄마, 언니는 일을 잘 하잖아, 언니는 애들을 키우는 것보다 일 하는 게 더 잘하고 행복한 걸 수도 있잖아."

 말에 엄마는 또 화를 내셨그렇게 엄마와 싸우다 보면 "그래서  결혼  할거야"라는 말을 내지르고  자리를 뜨게 되는게 우리 싸움의 루틴이었다. 결혼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남편의 밥을  차려주고, 아이들을 돌보지 않겠다는 말도 아니었다. 그냥, 나는   있는게 제한되어 있고, 일을 하면서 나도 엄마처럼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돌볼 자신이 없었다. 엄마의 그런 말들이 괜히 미래의 나에게 향하는 핀잔같아서, 그게 나는 두려웠던  같다. 나는 엄마니까, 같은 여자니까, 엄마가 그런 나의 마음을 조금 이해 해주길 바랐을 뿐이다. 그래,    하는게 있으니까 그건   해도 , 하는 말로 위안을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포기하고 엄마이지 않아도 .

가족도 나에게 너무 소중했고, 오랜시간 만나온 현모도 나에게 가족만큼이나 소중한 사람이었지만, 그만큼 나에게는 나도 소중했다. 내가 쌓아온 지난 날이 소중했고, 내가 지금도 살아내는 이 매일이 소중하다. 딱히 큰 꿈을 꾸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이 모든 내 노력이 쓸모있는 것으로 남길 바랐다.


엄마 아빠의 싸움이 정말 심했던 어느 날 새벽에 기어코 아빠는 엄마를 때렸다. 엄마는 거실로 나와 한참을 소리죽여 울었다. 도저히 그 공간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집을 나와 무작정 걸었다. 갈 곳도 없었지만 집에 있기는 더 싫었다. 한참을 텅빈 거리를 혼자 돌아다니다가 첫차를 잡아타고 서울로 왔다.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닌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현모의 자취방 앞이었다. 아무리 현모와 오래 만났다고 해도 이런 모습까지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단 한번도 현모와 가족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그의 문 앞에 서서 이 새벽에 잠옷차림으로 이곳까지 온 나의 모습을 보게 될 현모의 반응을 상상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서있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고는 벨을 눌렀다. 아직 잠에서 덜 깨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문을 열어준 현모는 살짝 놀란 듯 했으나 아무 말 없이 날 들여보내주었다.


현모를 만난 건 교양 수업에서 였다. 사람이 적지도 않았던 그 수업에서 현모는 먼저 내게 같이 팀플을 하자고 다가왔고 우리는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한 번, 두 번, 같이 밥을 먹고 공강 시간에 같이 도서관에 앉아 공부를 했다. 미치도록 설레는 감정은 아니었지만 그냥 익숙하고 편했다. 그저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고 없으면 허전했다. 언제부턴가 현모는 나에게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어있었다. 굳이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한해, 한해 그렇게 지내다보니 어느덧 5년째 우리는 함께하고 있었다.


작은 현모의 침대에서 몸을 포개고 한참을 잤다. 몇 시간을 잤을까, 본가로 내려간 이후 처음으로 이렇게 긴 시간을 푹 자본 것 같다. 눈을 떠서 현모의 얼굴을 바라봤다. 둥글고 하얀 얼굴에 빽빽하게 들어찬 눈썹 외에 뚜렷한 특징은 없어서 하루종일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도 뒤돌아서면 어떻게 생겼더라..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자꾸 자꾸 불안해졌고 그의 얼굴을 보고 확인하고 싶어졌다. 잠든 현모의 눈썹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쓸어본다. '얘는 궁금하지도 않나...' 현모는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속 편하게 잠만 잤다. 현모는 항상 그랬다. 내가 먼저 얘기하지 않으면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그런 그의 무심함이 서운할 때가 훨씬 많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어났어? 아, 나도 한참 잤네.." 인기척에 눈을 뜬 현모가 눈을 부비며 말한다.

"현모," 나직히 이름을 불러본다.

"응" 여전히 눈을 감고 잠긴 목소리로 그가 대답한다.

"너는 내가 왜 좋았어?"

뜬금없다는 듯 실눈을 치켜뜨고 현모가 물어본다.

"그건 갑자기 왜?"

"그냥. 갑자기 궁금해서."

"음... 그냥..."

한참을 뜸을 들이다가 한숨을 푹 쉬고 현모가 대답했다.

"예뻤어."

"예뻐?"

"응 얼굴이 예쁜것도 그렇지만.. 그냥, 뭐든 아등바등 열심히 하는 모습이 예뻤어. 너는 그렇잖아. 항상 힘들어 하면서도 낑낑대면서 결국 끝까지 다 열심히 해내는데, 그 모습이 조금.. 안쓰럽기도 한데, 예뻐.

우리 그때 그 팀플 기억나? 그거 아무도 열심히 하지 않는 프로젝트였잖아. 교수님도 그냥 점수 채울 거 없어서 형식상 내주신 걸텐데, 다들 대충 얼버무리려는 그걸 너는 엄청 열심히 하더라고. 아무도 열심히 하지 않는데, 제일 쪼그만 애가, 아등바등 그거 좀 살려보겠다고 그러는게 안쓰러운데 엄청 신경쓰이기도 하고.. 그게 예뻐보였었지."

"내가 그랬었나.."


현모는 나를 보고 배시시 웃어 보이더니 이내 돌아 눕는다. 예쁜 사람, 생각하며 현모의 등에 몸을 붙였다. 둥글고 따뜻하다. 이게 사랑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현모랑 있을 때는 이렇게 잔잔한 온기가 남는다. 나는 그 온기가 그리워서 계속해서 현모에게 기대게 된다. 그의 등에 얼굴을 파묻는다. 그냥 이렇게 계속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이도 안 들고, 엄마고 아빠고 다 잊어버리고, 결혼도, 취업도 고민하지 않고 그냥 이렇게,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조각배같은 이 침대에 오래오래 너와 함께 이렇게 누워있고 싶다고.

하지만 이내 생각들은 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온다. 우리 엄마도 지금 나처럼, 아니 나보다 더 아등바등 열심히 살았을텐데. 아빠도 그런 엄마가 예뻐서 결혼했을까? 그럼 지금의 엄마는 아등바등 열심히 살지 않아서 더 이상 예쁘지 않은걸까. 근데 엄마도 단 한순간도 열심히 살지 않은 적이 없었을텐데... 결혼하고 나서도 우리를 낳고 나서도 엄마는 항상 아무도 보지 않는 그 작은 집 안에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쉬는 날 하루없이, 알아주는 이 하나도 없이 그렇게.



"아니 엄마, 적금 안 들었어? 따로 통장은? 아니 어떻게 결혼한지 30년이 넘게 모아둔 돈이 하나도 없냐고!"

"... 없어... 나한테는 아무것도 없어..."

반쯤 넋이 나간채로 엄마는 대답했다. 경제적으로 엄마는 항상 약자였다. 일은 아빠보다 엄마가 훨씬 많이 했는데 이혼할 때 보니 엄마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 이혼하면 엄마 이제 뭐 해먹고 살아? 엄마 어떡할거야?"

"... 몰라.. 뭐든 하겠지..."

"아니 엄마, 뭐가 그래? 뭐가 이렇게 없어? 진짜 짜증나게. 어떡하려고 그랬어 진짜.. 적금이라도 들어놓지!!!!"

"내 돈이 어딨냐.. 느이 아빠 월급 들어오면 따박따박 생활비하고 느이 뒷바라지 하기 빠듯했지..."

엄마는 죄 지은 사람 마냥 내 눈도 못 마주치고 아무것도 없는 방바닥을 계속해서 훔쳤다. 속이 답답해왔다. 아빠도 미웠지만 이토록 아무것도 없이 살아온 엄마가 더 미웠다. 엄마를 보며 더욱 부득부득 이를 갈고 취업 준비를 했다. 사람은 모름지기 기술이 있고,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내 몫을 챙긴다고. 나는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했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취업준비 기간은 길어져만 갔다. 분명히 학점도 나쁜 편이 아니었고 방학마다 인턴도 하고, 알바 경험도 많고, 대외활동이니 뭐니 나름 열심히 쌓아온 것 같았는데 나는 2년 가까이 무엇도 아닌 '준비생'일 뿐이었다. 나름 쓸모있는 사람이고 싶어서 열심히 살았는데. 아무리 서류합격을 하고 필기합격을 해도, 최종에서 떨어지면 다시 리셋이 되어버렸다. 열심히 달려오고 적어낸 답들은 모두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살다가 어느 순간 결혼하고, 애 낳고, 그렇게 엄마가 되고.. 이 모든 노력과 시간이 결국 쓸모없는 시간이 되어 버릴까 두려웠다.


현모의 집에서 몇일을 지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는 없었다. 엄마가 없는 집은 왠지 휑하고 또 차가웠다. 아빠는 몇 끼니 째 라면으로 때우신 것 같았다. 주방에는 라면 봉다리와 더러운 냄비가 몇개째 겹쳐 쌓여있었다.

"... 엄마는?"

"몰라."

"얼마나 오래 안 들어오셨어요?"

"글쎄."

아빠는 무심한 척 툭툭 내뱉었다. 하나도 안 괜찮으면서 오히려 더 무덤덤한 척 꾸며내는 모습에 속에서 천불이 났다.

"아빠.. 아빠는 뭐가 그렇게 잘났어? 아빠가 잘못한 거에요, 알아? 빨리 가서 엄마 찾아와. 가서 미안하다고 빌어. 진짜 왜 그러고 살아, 딸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아? 엄마가 아빠를 위해서 어떻게 살았는데, 엄마가 얼마나 많은 걸 포기하면서 지금까지 우리한테 이렇게 해줬는데. 아빠 한번이라도 엄마한테 고맙다, 수고했다, 다정한 말 한마디라도 해준 적 있어요? 그래놓고 뭐가 잘나서 바람을 피워?"

아빠에게 다다다 쏟아붓고는 다시 집을 뛰쳐나왔다. 엄마가 없는 집이 너무 춥게 느껴졌다. 자꾸 눈물이 쏟아졌다.


한참을 방황했다. 다시 현모에게 갈 수는 없었다. 현모와 함께 있으면 있을수록 자꾸만 현모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 도망치듯이 나왔으니까. 어디로 가야할지, 뭘 해야할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머리를 잠재우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영화관에 들어가서 아무 영화나 예매했다. 영화 속에서는 '쓸모'가 불분명한 많은 사람들이 나왔다. 사회생활에 서투른 엄마, 심장이 아픈 아들,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 자기 욕심에 온 가족을 고생시키는 아빠.. 아빠는 끊임없이 아내에게 '이 모든 것은 다 가족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결국 첫 계약이 어그러지고 싸우는 장면에서 '적어도 애들이 아빠가 뭐라도 해내는 모습은 봐야하지 않겠냐'며 속마음을 드러낸다. 결국 그도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서 그 말도 안되는 거대한 농장사업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증명해내려던 그의 쓸모는 정작 그가 그것을 증명해 낸 순간 상대에 의해서 버려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상대를 붙잡은 것은 끝내 쓸모없어진 그였다. 그 쓸모를 증명하고자 모든 것을 끌어들여 투자한 것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불타 사라졌을 때, 그와 아내는 자신의 쓸모를 포기하고 서로를 끌어안았다. 흔하게 봐온 상업영화들이 그렇듯 할머니가 열심히 심은 미나리가 인기를 얻어서 미나리 장사로 큰 수익을 얻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미나리의 맛 또한 그 '쓸모없음'에 있었다. 그 미나리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냥 잘 자라나고, 특별할 것 없는 미나리일 뿐이었다. 모든 것이 불타고 난 다음 날 처음으로 한 곳에 모여 서로 끌어안고 잠들어있는 이 가족의 모습에서 보이듯, 고장난 할머니를 붙잡기 위해 아픈 심장을 부여잡고 뛰어간 아들의 모습에서 보이듯, 결국 사람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가게 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쓸모가 되어주는 가족의 존재였다. 오히려 서로가 가장 쓸모없는 개인이 되었을 때 가장 큰 사랑의 대상이 되어지는 이 가족의 모순적인 모습이 그동안 사랑받고, 받아들여지고 싶어서 아등바등 살아오던 내 마음을 훑고 내려갔다.


그동안 나의 '쓸모'를 증명해내느라 아등바등 살아왔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엄마가 떠올랐다. 스무살 무렵,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끊임없이 일 했을 엄마의 작은 두 손이 생각났다. 끊임없이 그 쓸모를 증명받기 위해 애썼을 그 두 손.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도 막상 아무도 잡아주지 않았던 그 손. 부르트고, 거칠고, 두꺼워진 엄마의 손. 엄마는 어디에 있는 걸까.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엄마, 어디있어?]

[엄마, 걱정되니까 연락 좀 주세요]

[왜 전화를 안 받아????? 핸드폰 왜 들고 다니는거야 대체. 전화 좀 주세요]

[엄마가 사춘기 애야? 왜 집을 나가? 그리고, 잘못한 건 아빤데 왜 엄마가 집을 나가,]

[추운데 걱정되니까 제발 연락 좀 줘..]

엄마는 외출복도 별로 없고, 여행가방도 없어서 짐도 많이 못 싸서 나갔을텐데. 엄마가 가 볼만한 곳을 생각해봤는데, 떠오르는 곳이 단 한 곳도 없다.

[엄마, 나는 계속 불안했던 것 같아. 항상 내가 뭐라도 증명해내야 좀 쓸모있는 사람처럼 느껴질 것 같아서 너무 내 삶만 바라보고 살았던 것 같아. 나는 내가 쓸모있고,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 엄마한테 이미 그렇게 차고 넘치게 사랑을 받으면서도 이상한 방법으로 그 사랑을 붙잡아두려고 했던 것 같아. 엄마, 엄마없는 집은 너무 춥다.]


이내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한참을 뜸을 들이셨다. 이내 시내의 작은 모텔 이름을 대셨다. 전화를 끊고 엄마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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