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hie 다영 Lee Dec 01. 2021

사랑의 방식

<녹차의 맛>을 보고_스포있습니다


01 DEC 2018에 쓴 글

이렇게 가족이 툇마루에 앉아서 차를 마시는 이미지가 너무 좋았다. 나의 로망.. 툇마루…

엄청엄청 이상한 영화를 봤다. 지금 아트나인에서 일본영화페스티벌을 하는데 왠지 하나도 못보고 지나가면 아쉬울 것 같아서 이번 기회가 아니면 안 보게 될 것 같은 영화를 예매했다. 특이한 영화 취향 때문에 혼자 영화를 자주 즐기는데, 조지가 갑자기 흔쾌히 동행해주어 즐거움은 두배가 되었다. 2시간 20분 가까이 되는 상영 시간을 아무런 정보도 없이 (더더욱이 내 취향 알면서) 같이 봐주는 너란 여자... 실은 영화 시작과 함께 후회했지만 ㅋㅋㅋㅋㅋㅋ 그래놓고 마지막에 울어버려서 집에 가는 길에 조지가 ‘언니 울었어?’라고 물어봄 ㅋㅋㅋㅋㅋ 끝까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영화지만 감동포인트 만큼은 남겨두고 싶었다.

1. 영화 시간 전에 부랴부랴 끝내야 하는 일을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관에 가서 보는 영화는 항상 기분이 좋다. 엄청 큰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한 나에게 수고했다고 보상해주는 느낌.

2. 영화 전에 밥을 먹으면서 조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사랑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왠지 신중한 건 좋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엄청나게 좋아해서 작은 것에도 혼자 미친듯이 설레고 그런 진짜 순수하고 예쁜 마음이 사라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영화 속의 사춘기 소년이 좋아하는 여자아이 때문에 너무 기분이 좋아서 자전거를 타고 집까지 미친듯이 달리는 장면이라던지, 혼자 여자아이를 지켜주는 상상을 하면서 연습을 해본다던지, ‘실은 너랑 이렇게 바둑 두는게 꿈이었어’라는 귀여운 고백이라던지, 비오는 날 하나뿐인 우산을 버스 문이 닫히기 전에 덜컥 여자아이한테 던져주고 자신은 너무 기쁘게 빗 속을 뛰어가는 장면이라던지, 그 모든 장면장면에서 전해지는 사랑의 떨림이 너무너무너무 예뻤다. 누군가를 아무 이유 없이 저렇게 사랑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마음이고 선물이야.

3. (스포주의) 그 외에는 딱히 와닿은 부분은 없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진짜 슬프다는 생각도 하기 전에 눈물이 주룩 흘러서 살짝 당황했다. 나 원래 영화보면서 잘 안 우는데. 영화 끝나고 걸어가면서 지수가, ‘언니, 언니 (영화 속에서) 할아버지 죽었을 때 울었어?’라고 물어봐준 덕분에 얘기하면서 생각이 좀 정리가 된 것 같다. 딱히 할아버지가 죽은게 슬펐다기 보다는 (워낙 전개상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였기 때문에) 그 할아버지가 가족들을 위해 남기고 간 그림 선물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3-1. 영화 속에서 작은 소녀는 자신에게만 보이는 또 다른 커다란 자아의 환영 때문에 괴로워하지만 극 내내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서 고민만 하며 스스로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한다. 삼촌이 지나가듯 한 얘기를 듣고 ‘왠지 철봉 뒤로돌기를 하면 환영이 사라질지도 몰라’라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서 매일같이 철봉에 매달리지만 잘 되지 않는다. 손에 물집이 잡혀서 터지고 굳은살이 배기도록 단 한번도 성공하지 못하지만 이 작은 아이는 숨어서 조용히, 꿋꿋이 도전하고 또 도전한다. 마지막 할아버지가 그린 그림 속의 소녀는 ‘완벽한 철봉돌기’를 선보인다. 아무도 모르고 혼자서만 감당해야만 하는 줄 알았던 자신의 비밀을 할아버지는 조용히 지켜보고 응원해주고 있었던 것. 그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3-2.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특히 자신보다 어리고 약한 사람) 문제와 씨름하는 것을 볼 때 손쉽게 해결해주고자 애쓰지만 또 다른 사랑의 모습은 그 사람이 스스로 그 상황을 극복해낼 수 있도록 지켜봐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기도 했다.

3-3. 할아버지가 죽고 남은 방에는 가족들의 이름이 붙은 작은 책들이 있었고, 그 안에는 할아버지가 기억하는 그들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들이 그림으로 남아있었다. 그걸 보면서 다시한번 누군가를 ‘지켜봐주는’ 마음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항상 나는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기억될까’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지, 그 반대로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 남은 가족들의 반응을 보면서 문득 ‘내가 죽고 난 이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가 찍은 그들의 사진을 발견하면 어떤 마음일까’,라는 생각이 들있다. 나도 더 열심히 주변을 ‘지켜봐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라는 다짐을 한다.

영화보고 버스타고 오면서 막 적은 글이라 두서없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왠지 오늘 영화를 보고 지수랑 나눈 느낀점을 이렇게라도 남겨보고 싶었다. 계속해서 사진을 찍어야만 할 이유들이 생긴다.

#녹차의맛 #아트나인 #2000년대마법에걸린일본영화

작가의 이전글 제목은 없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