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 그룹의 신임 팀장 온보딩 SBL(scenario-based-learning) 개발을 위해 썼으나, 사용되지 못한 비운의 시나리오를 풉니다.
팀원은 언제 어떤 이유로 사과를 요구할지 모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막 상처를 받았다고 하기 때문에, 팀장은 언제든 사과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나 싶다. 아니면, 별것도 아닌 말인데 이제는 내가 하면 진지하게 들린다는 건지 무섭다. 얼마 전 컨디션이 좋지 않아 다소 지친 말투로 칭찬을 했더니, 영혼이 없는 것 같다는 농담을 들었다. 요즘 팀원들은 귀신같이 알아챈다.
며칠 전, H선임과의 원온원에서 내가 너무 비겁하게 말했던 것 같아 속이 편하지 않다. 팀원을 평가할 때, 업무 스타일이나 결과물 같은 걸로 단편적으로 보지 않으려 시작한 원온원이었다. 초반에는 팀원들의 생각도 들을 수 있고, 내 적응에도 도움이 되었기에 좋았다. 하지만 조금씩 관계를 쌓다보니 점점 이슈가 깊어졌다. 팀원 중 두 명이 각자 다른 이유로 힘들다며 고충을 막 털어놓았고, 그 중 한 명은 눈물까지 보였다. 당황스러웠다. 내가 신도 아니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는데, 왜 원온원을 한다고 했을까. 결국 그게 너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며 급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채.
K선임은 팀 내 R&R과 공정성을 이슈로 들고왔다. 어떻게 회사 일이 딱 반반으로 나뉘어질 수 있을까. 반반치킨을 시켜도 어느 날은 후라이드가, 어느 날은 양념이 많은 게 인생이라고 대답할 수도 없고. 1절을 이야기하면 또 뭐라고 하고, 2절을 하면 또 저렇다고 하고. 저연차 팀원들은 유독 형평성과 공정성 이슈에 민감한 것 같다.
그래도 나보다 어리고 연차가 낮은 팀원들은 괜찮다. 문제는 나보다 연차가 높은 팀원이다. 보직에 계실 때 보고만 받으시다가 팀원으로 내려오시니 실무 역량은 부족하고, 또 의욕적으로 하시기보다는 젊은 팀원에게 치여 위축된 태도를 보이시니 팀 내 분위기에도 영향이 갈까 무섭다. 잘하는 팀원을 업무메이트로 붙여달라고 하는데, 누가 자처하겠으며, 회유적인 방법을 쓰자니 또 다시 형평성이나 공정성 이슈가 나올 것이고. 조용히 있다가 퇴사할테니 건들지 말라는 눈치인 것 같아 신경이 많이 쓰인다.
회사생활에 과속방지턱이 너무 많아 멀미가 나는 기분이다. 팀원들에게 피드백을 주고 나면, 일상에서도 그 감정의 잔여물이 남아있다. Y팀장은 팀원을 길들이라고 조언했다. 팀원을 대체 어떻게 생각하는거냐며 무시하려다가 돌연 나는 팀원들을 어떻게 생각해야될까 고민이 든다. 대체 받아보지도 못한 피드백, 코칭, 원온원은 어떻게 하라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