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 녘 무등산 초입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해결하고 증심사로 향했다. 일찍 찾아온 초여름의 열기가 그다지 심하지 않은 오르막에도 등줄기에 땀이 솟았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지는 오직 무등산만의 고요한 시간으로 접어드니 덩달아 내 마음도 고요해진다.
증심사는 무등산으로 오르는 길에 위치해 있다. 860년에 지어졌으니 오랜 세월 시민들과 동행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일 것이다. 증심사는 사찰을 이르는 말이라기보다 어느 지역을 이름하는 고유명사처럼 불린다. 증심사로부터 2킬로미터 떨어진 버스종점은 ‘증심사’로, 그 일대는 동네 이름이 아닌 아예 증심사로 불린다. 그 동네 식당으로 밥 먹으러 갈 때도 ‘증심사’에 가서 밥 먹자고 말한다. 어디 그뿐인가 4킬로 정도 떨어진 지하철역은 증심사 입구역이다. 증심사 입구역에서 내려 증심사보다는 그 외 의 장소로 가는 사람이 대부분일 텐데도 말이다. 어쩌면 그래서일 것이다. 사찰 증심사가 사람들과 밀착되어 있으면서도 멀리 있는 것은. 이름은 익숙하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증심사가 사찰인지도 모를 것이다. 나 역시 딱 한 번 발걸음 했을 뿐이다.
증심사로 오르는 계곡은 2002년 정비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꽤나 운치가 있었다. 계곡을 따라 여기저기 식당들이 있고 그 식당에서 내어놓은 평상에 앉아 닭볶음이나 백숙에 소주 한 잔을 기울였던 때. 꽤 많은 시민들이 퇴근 후에 몰려들었다. 그렇게 서민의 쉼터였던 계곡은 이제 반듯하게 정리되어 들어가는 것도 발을 담글 자리도 마땅치 않다. 가끔은 그때가 그리워진다. 조그만 백열등이 온 힘을 다해 어둠에 물들어가는 숲을 밝히는 저녁 무렵, 무질서한 풍경처럼 긴장을 풀고 잠시 흐트러져도 좋았던 때. 그 많던 식당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반듯하게 정리하는 것만이 좋은 것일까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다.
함께 살아도 무심하고 동행해도 다른 길을 걷는 듯하고, 하루를 끝내고 우리 집이라는 역으로 돌아오지만 가깝고도 먼, 이제는 간기가 다 빠져 슴슴한 당신과 나 사이, 꼭 증심사 같다는 생각을 하며 숲길로 접어든다.
마당을 가운데 두고 ㅁ자로 배치되어 있는 건물들 사이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참에 앉는다. 대웅전에는 스님과 몇몇 불자들이 저녁 예불을 드리고 있다. 고요한 공간에 들면 더 주의를 기울여 고요해지는 법. 행여 방해라도 될까 싶어 숨소리마저 줄인다. 대웅전 옆으로는 흰 연등이 질서 정연하게 자리하고 있고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오백전 목탁소리에 고요가 잠깐씩 흩어졌다 다시 고인다. 산은 점점 깊어지고 예불 마친 스님이 가로지르는 자갈 마당이 자그락자그락 숲으로 향한다.
밝음이 물러나야 어둠이 들듯이 부처와 중생이, 나무와 새들이, 슴슴한 당신과 내가 공생한다. 여름의 시작, 치자꽃 향기 달큰한데 깊어진 산새가 추상화처럼 흩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