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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빈 Aug 02. 2020

변화가 필요한 시점

'성공하는 서비스'를 만들겠다고 달려온 것이 이제야 한바퀴 돈 것 같다.

 올해 상반기는 코로나로 침체된 나날이었다. 만들어낸 브랜드의 매출은 처참할 정도로 바닥을 쳤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OS 이슈로 전진할 수 없는 문제도 생겼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대응을 다 하였지만,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HW 이슈로 문제 범위를 특정 지었다. 덕분에 HW 납품업체에게 해결해달라고 이슈를 넘길 수 있었다.


 숨을 돌릴까 했는데, 구형 서버가 터졌다. 예전에 계시던 개발자분이 만들어둔 구조인데, 성능과 기능을 확장할 수 없는 폐쇄적인 구조였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천천히 움직였지만, 이번 이슈로 급하게 달렸다. 오래되어 정리 안 된 것들을 청소해가며 해결해가다 보니 여러 지뢰들을 만났다. 주말 시간마저 모두 써서라도 어떻게든 이 상황을 해결해야 했다.


 뭔가 많은 일을 한 최근 6개월 이지만, 아무런 전진을 한 일이 없었던 6개월이었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정신없이 열심히 한 건지, 마냥 지치기만 했다. 사실 올해 초부터, 이 일을 계속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의문이 많았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무엇을 위해 이 시간을 쓰는 것인지. 방황한다고 손 놓으면 망할 것 같아, 일단 급한 불만 끄는 작업을 하였다.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우연한 기회로 디자인 리서치 지원 사업을 받았다. 시장 조사와 비지니스 전략을 만들어주시는 컨설턴트분과 같이 작업하게 되었다. 직접적으로 컨설팅을 해주시기보다 우리가 컨설팅 역량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다. 시장 조사하는 프로세스를 같이 경험할 수 있었고, 비지니스 전략을 만들어내기 위한 질문을 많이 해주셨다. 물고기를 잡아주시기보다 낚시하는 법을 알려주셨다.


 마침 고객 분석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없는 시간도 창조해가며 열심히 달렸다. 직접 고객을 인터뷰 하기 위해 매장으로 나가기도 하고, 설문지를 작성하고, 이를 분석하느라 늦은 밤 시간을 많이 보냈다. 사실 소비자 조사는 처음이 아니다. 다만 과거에는 경험이 부족한 체 진행하다 보니 얻을 수 있는 결론이 적었다. 무엇을 어떻게 설계해야 원하는 결론을 얻는지 몰랐다. 마침 오랜 경험을 가지신 분에게 맨토링 받으며 할 수 있는 기회이니, 이번이 아니면 얻을 수 없는 경험이라는 생각으로 달렸다.


 설문조사 결과 데이터를 받았는데, 분석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고객들의 반응이 너무 좋기만 했다. 무작위로 조사한 것이 아니고, 우리 채널로만 설문조사를 하였다. 그렇다 보니 설문조사에 참여한 대부분이 단골이어서 평가가 좋기만 했다. 몇 가지 생각할 점들을 뽑아내긴 했지만, 유효해 보이지 않았다.


 점수를 표준화하여, 약간의 차이도 높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여러 기준으로 수치들의 차이를 만들어보며 비교해보는데 흥미로운 점들이 많이 보였다. 각 집단 간의 차이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각 집단에 대한 페르소나를 정의하였다. 직접 들은 인터뷰 내용과 서술형으로 풀어준 내용을 떠올리며 페르소나에 대한 해석을 만들어갔다. 데이터가 말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게 이거구나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6개의 고객 페르소나로 분류했다. 각 6개의 페르소나가 우리 브랜드에 갖는 기대는 달랐다. 어떤 페르소나는 매우 만족하지만, 사용 빈도가 낮았다. 어떤 페르소나는 조금 만족한다고 하지만, 사용 빈도가 매우 높았다. 이 이유들도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이 보였다. SNS에서 정 반대되는 반응들이 나오는 이유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우리 고객들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지표였다. 결과물을 내부에 공유하자, 동료들은 페르소나가 생생하게 정의되어 좋았다는 평을 주었다.


 아쉽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고객을 잘 이해한다고 하여 끝난 게 아니니까 말이다. 우리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세상에 어필해야 할지 생각해야 했다. 마치 진로 상담 같았다. 아무리 이것 저것 많이 알고 있어도, 자기 자신의 역할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가치를 인정받기 힘들듯 말이다. 회사도, 브랜드도, 진로상담이 필요한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이번에 여러 고객을 만나보면서 알게 된 건, 우리 브랜드가 이미 어느 정도 성공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고객들은 우리 브랜드에 다들 너무나도 만족하고 즐거 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만족해도 되는 수준이긴 한데, 나는 여기에 불만이 있었다. 이 정도 서비스로 마무리되고 싶지 않은데, 여기서 전진할 수 없는 이 상황이 스트레스였다. 여기서 정체할 것이라면 그만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였다.


 아직 우리 브랜드에 우리가 시도해보지 못한 서비스들이 많이 있었다. 전진이 어려웠던 건, 내가 이 일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더 투자하자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해서 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전체적으로 느려지고 나뿐만 아니라 다들 지쳐가는 낌새도 있었다. 모두에게 이 일을 해나가는 동기가 필요했다. 프로세스로 일이 어떻게든 되게 만드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성공하는 서비스'를 만들겠다고 달려온 것이 이제야 한바퀴 돈 것 같다. 반성하면서, 우리 팀의 구조도 변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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