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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빈 Sep 08. 2021

소통 가능한 자판기 브랜드 만들기

자판기에 커뮤니케이션이 정말 필요했을까?

첫 사진 인쇄 자판기, 해피인스타그램


 처음 출시한 자판기다. 인스타그램 검색을 통해 사진을 인쇄해주는 자판기다. 인스타그램 검색을 통해 사진을 인쇄하는 방식은 대만과 동남아에 꽤나 많이 퍼져있었다. 이전까지의 사진 자판기들은 사진을 인쇄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USB 저장장치를 준비하거나 스마트폰에 USB를 연결해야 했다. 이 과정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연결 도중에 이탈하는 고객이 많았다. 온라인과 달리 오프라인 특성상, 불편함이 있어도 이탈률이 적은 편인데 말이다. USB 대신에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진을 전송하는 방식이 약간 어색하지만, 신기하게도 USB 연결보다는 훨씬 나았다. 사람들에게 USB 연결보다 SNS가 훨씬 익숙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출시했기 때문에 당장의 비즈니스 가능성과 HW 안정성에 대한 검증이 필요했다. 덧붙여 새롭게 시도한 사진 전송 과정이 한국 고객에게 편리함을 주는지 알아봐야 했다. 디자인과 브랜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지 않았다.


고객 반응을 보기 위해 만들었던 이벤트 판넬. 최근 창고에서 발굴한 덕에 많이 지저분하다.


 최근 다시 보니 별로였던 사진 레이아웃과 디자인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잘 팔렸다. 사진을 뽑을 수만 있다면 문제가 없었던 것 같다. 필드 테스트를 하며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객분들이 자신의 사진을 뽑을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연예인 사진을 많이 뽑아갔다. 인스타그램에 공개 계정에 올라온 연예인 사진들이 많았으니까 말이다. 사진 인쇄 시장에 여러 고객 군집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아쉽게도 이 프로젝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실패로 끝났다. 인스타그램을 매개로 둔 서비스이다 보니, 인스타그램 정책에 흔들렸다. 2018년 당시에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있었다. 덕분에 여러 API에 대한 검수가 이루어졌던 것 같다. 우리가 활용하던 API는 닫혀버렸고,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 생산한 장비도 많지 않아 다행이기도 했지만, 김 빠지는 결과였다.


 그래도 오프라인에서 사진 스티커 시장의 가능성을 알게 되었으니 수확은 있었다. 다른 방법으로 사진 전송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어떤 방법이 좋을까 아이디어 토론 중, 카카오톡을 활용한 사진 전송 방법이 나왔다. 그날 바로 카카오톡 API를 테스트해보았다. 가능하다는 확신을 얻은 뒤,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


 연결 방법으로 번호를 입력하는 경우가 많았다. 번호로 연결하는 방식을 만드려다가 뭔가 아쉬웠다. 꼭 숫자로만 할 필요가 있을까? 보통 채팅방에서 키보드를 띄우면 한글 키보드부터 뜨지 않던가? 한글로 연결하도록 만들면 재미있지 않을까. 그래서 랜덤으로 만들어진 별명으로 자판기와 고객을 연결하는 방식을 만들었다.


 이 연결 방식이 사람들의 뇌리에 꽤나 남았나 보다. 트위터와 블로그에서 여럿 언급되었다. 랜덤하게 별명이 만들어지다 보니 이번엔 어떤 별명이 지어질지 궁금해했던 것 같다. 친구들끼리 와서 사용할 땐, 대화의 소재거리로 발전하기도 했다.


연결 문자열을 활용해 자판기와 연결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며 변화를 주기로 했다. 브랜드를 만들었다. 기존의 자사 브랜드가 있었으나, 마치 OEM 제품 마냥 자사 브랜드가 돋보이지 않았다. 고객들은 자판기의 브랜드보다 자판기가 입점한 매장을 더 잘 기억했다. 열심히 만들어보았자, 우리 브랜드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당장은 문제가 아니었겠지만 확장엔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중장기적으로 다른 브랜드에 종속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다른 브랜드 속에서 비즈니스를 하더라도, 독자적인 브랜드로 표현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우리를 고객에게 돋보일 방법이 필요했다.


 여러 아이디어가 있었다. 사진관을 모티브로 하기도 했고, 선물 상자를 열어보는 느낌을 주려고도 하였다. 그러나 단순한 상점으로 브랜드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현재는 자판기이지만, 미래는 오프라인에서 접객하는 서비스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소통 가능한 자판기라는 느낌을 주기로 했다. 그렇다면 채팅처럼 화면을 꾸미면 좋을까. 채팅처럼 만든 사례를 찾아보니 별로였다. 여러 고민을 하다가, 캐릭터로 브랜드를 표현하기로 했다. 의인화된 브랜드가 주는 느낌이 자판기라는 기계적 느낌을 희석시켜주리라 생각했다.


최초의 UI 프로토타이핑
자사 브랜드, '폴라폴라'의 배너 화면


 우리는 '폴라폴라'라는 브랜드를 출시했다. 단기적으로는 자판기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무인 매장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라 생각했다. 이 당시에 로봇을 상상하기도 했고, 말을 주고받는 AI이기도 했다. 구현되지 않은 상상은 한낯 꿈이라 시간이 지나며 희석되었지만, 생각하는 순간은 즐거웠다. 언젠가 기회가 생긴다면 뻗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단순히 브랜드를 출시한다고 끝이 아니었다. 여러 제휴사와의 협상이 필요했다. 입점 매장별로 여러 커스텀의 욕구가 있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자사 브랜드가 방해되기도 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아 자사 브랜드가 훨씬 가치 있다고 믿고, 이를 밀고 나갔다. 단기적인 기회에 매몰되지 않기로 했다.


 초기엔 테스트로 출시했다. 다들 확신을 가지기 어려운 상황이기도 했다. 오프라인 매장은 평당 매출을 크게 보는데, 폴라폴라는 넓이에 비해 높은 수익을 보였다. 덕분에 다들 확신을 많이 가졌던 것 같다. 여러 이해 관계자들에 의해 요청들이 쏟아져왔지만, 영업팀과의 협업을 통해 하나씩 해결해나갔다. 덕분에 폴라폴라를 무사히 출시할 수 있었다.


최초 출시했던 폴라폴라


 현재의 폴라폴라에게 많은 이들이 대화를 건다. 의견일 때도 있고, 기쁨에 대한 표현일 때도 있고, 관심사 공유일 때도 있다. 자판기이지만 여러 대화들이 만들어져 가고 있다.


 이런 적도 있다. 어떤 기능을 출시했는데, 한 고객이 우리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 고객은 우리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댓글로 달았는데, 언젠가 폴라폴라가 조용히 그 아이디어를 출시했다고 한다. 폴라폴라가 아이디어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해주지 않았다며 서운해했다. 마케터님이 직접 소통하며 오해가 풀렸는데, 인상 깊은 일이었다. 서운한 일이 생겼다는 말은 그만큼 애정을 주고 있다는 말이니 고마웠다.


 대화를 건 이유가, 단순히 의인화된 캐릭터여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속적인 기능 업데이트와 SNS를 통한 애정 어린 커뮤니케이션, 오프라인 필드에서의 문제없는 운영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본다. 이 전체를 균형감 있게 운영하였기 때문에 고객이 반응하였다고 본다. 단순 캐릭터 브랜드가 아니니까 말이다.


인스타그램으로 소통하는 고객


 시간이 흘러 카카오톡을 통한 연결보다 QR을 통한 연결이 많아졌다. 비용의 문제로 카카오톡 홍보보다 인스타그램으로 홍보로 전환했다. 이제 고객들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DM을 주고받는다. 의외로 DM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정말 활발하다.


 이젠 회사를 나왔기 때문에 나는 더이상 미래를 만들지는 못한다. 하지만 되돌아보며 여러 질문이 생긴다. '소통 가능'한 자판기 브랜드로 한 걸음씩 전진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비지니스 가치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 질문

1. 굳이 자판기에 커뮤니티를 형성할 필요가 있었을까?

2. 이렇게 만들어낸 효과를 검증할 수 있을까? 있다면 무엇인가?

3. 효과를 검증할 수 없다면, 믿음의 영역일 텐데, 이 믿음을 꾸준히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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