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랑 Yoorang Oct 16. 2020

WFDYS

2017-2019 이사 활동

WFDYS 이사 활동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약 2년 정도였는데 통상적인 기간인 4년 임기 절반이었지만 정말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


WFDYS는Frontrunners 수업 중에 알게 되었는데(그 전엔 관심 없어서 잘 몰랐음)Frontrunners를 알게 되었을 때만큼 막 하고 싶다 정돈 아니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한 번 지원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떨어져도 후회 안 할 거 같았고.


그래서 한국농아청년회에 WFDYS 이사 지원하고 싶다고 하니(지원서는 각국 청년회에게 메일이 감. 개개인은 따로 지원서를 받을 수 없음) 그 당시 한국농아청년회 2대에서 3대로 넘어갈 애매한 시기라서 정기총회 끝나고 3대가 꾸려지면 그때 연락해보라는 답변 받았다. 아직 지원서 내기에 시간이 충분히 남아있어서 3대가 꾸려진 후 3대 회장단에게 물어봤지만 한국농아청년회 내 운영규정에 나온 조건을 충족하지 못 하기 때문에 어렵다는 답변 받았다. 조건 중 하나가 한국농아청년회 이사 활동을 2년 이상 한 사람이었는데 그 당시 나는 3대 국제 이사로 활동 시작하기로 한 바라 몇 개월도 못 채운 상태였다.


지원서 제출하는 날짜는 넘겼는데 지원자가 모자라서 그런지 WFDYS 정기총회 전날까진가 당일 오전까진가 지원자를 계속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터키에서 열린 정기총회였는데 한국농아청년회 3대 회장단도 현장에 있어서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한 번 더 물어봤지만 여전히 조건을 충족 못 한다고 안 된다는 답만 돌아왔다. WFDYS와 인연이 없거니 생각하고 후보자들의 공약이 이어지는 중에 Frontrunners 동기인 뉴질랜드 친구Mark와 가나 친구 Ben이 무대 위에서 당당하게 공약 이야기하는 모습 보고 대리만족했다. 물론 그 두 친구는 당당히 이사로 뽑혔다.


그 자리에서 우리 셋은 2017년에 호주에서 개최될 WFDYS 청소년캠프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 이후로 나는 청소년캠프 리더 자리를 맡기 위해 정말 많이 애썼다. 그때가 아니면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으니까. 지금도 생각하면 생명이 오가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는데 함께 활동한 3대 이사들의 도움으로 결국 리더 자리를 쟁취했다.


한 달 후 갑자기  마크에게 비보가 날아왔다.  벤이 큰 교통사고로 하늘나라로 갔단다. 꿈만 같았다.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라서 아직 살아있는 거 같은데 그 소식이 믿겨지지 않았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Frontrunners 동기 중에 마크와 벤이 특히 나에게 도움이 된 친구들이기도 해서 WFDYS 이사가 된 모습보고 정말 내 일처럼 자랑스러웠고 두 사람 인생이 잘 되길 바랐는데. 심지어 벤은 교통사고가 일어나기 몇 주 전에 결혼도 했는데.




벤 소식 듣고 난 후 벤에게 쓴 편지



비보 듣고 난 후 정말 열심히 청소년캠프팀을 챙기고 이것저것 준비했다. 참가자는 3명이었는데 다들 열심히 했고 잘 따라와줬고 예쁜 후배들이었다.


드디어 출국하기 전에 벤에게 한 번 더 편지 쓰고 비행기 탔다.


호주로 가기 전 한 번 더 쓴 편지. 벤에게.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여러 사건이 터져서 캠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기절하기 직전이었지만 캠프장으로 들어서는 버스 창문 너머로 2년 만에 보는 마크 얼굴이 보이자 다시 힘이 솟았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마크에게 달려가서 한동안 포옹을 나눴다. 서로가 아는 그 포옹의 의미는 정말 애잔했으니까 한동안 포옹하다가 서서히 풀고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캠프 조직위원회 인원수가 별로 없었는데 일손이 부족해 보여서 도와줄 수 있는 건 눈치껏 도와줬는데 캠프가 끝나갈 무렵 다른 나라 리더보다 캠프조직위원회와 더 친해졌다. 어떤 아이들은 내가 조직위원회인 줄 알고 착각하기도 한 거 보아 여기저기 많이 뛰어다녔나 생각이 들었던.


캠프는 무사히 잘 끝났고 폐막식날 캠프 기간 동안 한 스태프가 촬영한 걸 짧게 편집한 영상을 무대 위 스크린에 띄웠다. 불이 꺼지고 영상 보면서 시간 참 빠르다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마침 마크도 내 옆에 서서 영상 보고 있던 참이었는데 아무 말 없이 꼬옥 안아줬다.


"이제야 벤이 여기에 없다는 걸 느꼈어. 그 동안 안 믿었는데 이제야 그 빈 자리가 느껴져."

"알아. 나도 많이 보고 싶어."


정말 펑펑 울어서 지나가던 몇 사람들이 놀랐지만 마크가 조용히 무마해줬고 한동안 마크 품 속에서 울다가 비로소 벤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잘 지낼 거라고 믿고 나 역시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씩씩하게 지내고 있다.



벤, 나, 마크.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청소년캠프 한국팀 리더 자리를 무사히 잘 마무리하고 본연의 삶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삶은 한치 앞도 알 수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갑다.


가을쯤 WFDYS 이사 추가 모집한다는 공지가 떴다. 이사는 지원 당시에 만 30세라면 지원할 수 있는데 아직 지원할 수 있는 나이라서 망설여졌다. 다시 어렵사리 찾아온 기회. 4년이 아니라 2년이라 덜 부담되지만 2년 동안 내 앞일은 WFDYS 일정에 따라 복잡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한 번 해외에 나갔다 오면 최소 1-2주고 남아 있는 회의는 4번이었기에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전부 참석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정말 많은 고민을 하던 차에 마크에게 연락이 왔다.


"정말 다시 찾아오기 힘든 기회고 2년 전의 네 꿈이었잖아. 기회 놓치지 마. 벤 자리는 공석으로 두고 그 외 필요한 인원만 뽑기로 했으니 네가 우리 팀이 되면 벤도 우리와 함께 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우리 Frontrunners 10주년 행사 준비할 때 호흡도 잘 맞았잖아. 이번에도 팀워크 좋을 거라 믿어. 함께 하면 좋겠어."


마크가 구구절절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미 마음은 알고 있었다.

단지 누군가가 내 손을 잡아줬으면 했던 거였다.


왜 WFDYS 이사하고 싶었을까 2년 전의 꿈을 떠올려봤다.

농사회를 늦게 알았지만 수어도 늦게 시작했지만 정말 이 사회에 작게나마 기여하고 싶었다. 나와 같은 처지인 사람들 세계에 엄청 많을텐데 좋은 본보기, 롤모델이 되고 싶었다.

세계 각국 친구들과 한 자리에 모여 업무 처리하는 방식은 어떨지도 궁금했다.

도전하고 싶었다. 세계 무대에.


마음 결정 내리고 한국농아청년회 4대 회장단에게 이야기했다. 작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조건 충족하기에 지원서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온라인으로 각국 농아청년회에게 공약 영상 및 투표용지가 돌아갔고 이사로 뽑혔다. 또 다른 1명은 이탈리아 친구.


온라인회의로 먼저 회의, 업무 분배 등 일이 시작되었고 영어도 잘 모르는데 언어의 장벽에 울렁거릴 때도 있었지만 차근차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모르는 거나 이해가 안 되는 건 모국어가 영어권인 이사들에게 연락해서 영상통화나 영상메시지 통해 국제수화로 시원하게 해결했다.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이는 자리는 2018년 봄, 아르헨티나였다. 유소년캠프 전에 WFDYS 회의도 있었고 아르헨티나농아청년회에서 준비한 워크샵에도 참여하기로 해서 일정이 빡빡했지만 드디어 동료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굉장히 신났다.



Laura, Alejandra, Mark, Shirley, Yoorang



한국에서의 일정이 있어 좀 늦게 출발해서 회의 첫째날 점심 무렵에 중간 합류했었다. 한국 반대편에 있는 아르헨티나라서 경유도 몇 번 하고 장거리 비행으로 피곤했지만 숙소에 빨리 짐 내려놓고 회의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달려갔다. 창문 밖에서부터 나를 환영하는 동료들. 나와 같은 날에 합류하게 된 이탈리아 친구 로라는 날 보자마자 처음 만난 거 같지 않다고 와락 안아줬다.


회장 마크, 부회장 알렉산드라, 총무 셜리, 이사 로라, 유랑 5명으로 인원수가 적었지만 우리가 합류하기 전 팀보다 우리팀 팀워크가 훨씬 더 좋았다고 이야기하는 세 사람. 덕분에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이 팍팍 들었다.


바로 회의, 캠프 준비, 캠프 진행 등 모든 일정이 바삐 흘러가서 베개에 머리만 닿아도 꿈나라로 날아갔다. 매일 자는 시간이 부족했지만 든든한 동료들, 세계 각국에서 온 유소년들, 고생 많았던 캠프조직위원회 덕분에 귀한 경험을 했다. 그 중 호주 청소년캠프 조직위원회였던 한 친구가 호주팀을 이끌고 참가했는데 입장이 바꿔 서로 웃으면서 '그땐 네가 일했는데 이번엔 내가 일하네. 그땐 네가 리더였는데 이번엔 내가 리더네.' 방방 뛰었다. 서로 너무 바빠서 제대로 이야기 나눌 시간도 없었지만 스쳐지나가면서 얼굴만 봐도 참 좋았다.




그 다음 회의는 2018년 10월 우루과이. 알렉산드라가 사는 나라이기도 해서 덕분에 우루과이 구경도 편하게 했다. 로라는 안타깝게 불참했지만 회의 중 중요한 안건이 있을 때마다 온라인으로 참여해서 멀리 있어도 한 자리에 있는 거 같았다. 우루과이에선 보다 더 중남미, 남미 안건에 더 신경 썼었고 더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알렉산드라가 중남미, 남미 위해 애 많이 썼다는 거도 느낌으로서 정말 한 사람 한 사람 영향력이 중요하구나 알 수 있었다. 별 거 아닌 거 같아도 정말 한 사람의 시작으로 서서히 퍼져나갈 수 있으니까.




세번째 회의는 파라과이. 또 남미인가 싶을 수도 있는데 로라와 내가 이사로 합류하기 전에 이미 다 정해졌다고 한다. 그 전 2년은 남미에서 회의한 적 한 번도 없었고 유럽, 아시아 쪽이었다고 한다. 어쩌다 보니 가기 힘든 남미를 세 번이나 방문하게 된 셈이었다. 파라과이는 일정이 있어 딱 회의기간만 머물렀다가 따로 여행 안 하고 돌아갔지만 이번 회의가 특별했던 건 WFD와의 합동 회의였다. WFD의 분위기도 볼 수 있었고 정말 다르다 싶은 건 몇 배나 더 많은 안건들로 인해 우리보다 더 회의 시간에 굉장히 예민했었다. 안건마다 회의 시간을 딱 정해놨을 정도로 엄청난 안건들과 팽팽했던 공기. 물론 회장에 따라 회의 분위기가 다르겠지만 WFD는 세계 여러 안건들을 다뤄야 하니 WFDYS 업무와 비교 안 된다. 우리들끼리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언젠가 우리 모두 WFD 이사가 된다면 그 또한 멋질 거라고 이야기 나눴다.



마지막 회의, 우리 모두 수고 많았어.


마지막 회의는 프랑스 파리. 청년캠프 전에 회의하면서 정기총회 준비하려고 했지만 정기총회 준비하기에 시간이 너무 촉박했었다. 캠프 기간에 틈틈이 준비하려고 했지만 캠프에 온전히 참여한 우리들은 준비할 시간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지만 다들 좋은 추억을 쌓았고 세계 각국 청년들에게서 밝은 미래를 봤다. 한 명 한 명 모두가 미래의 리더였고 어느 누가 우리를 이끄는 멋진 리더가 될 지도 모르니까. 정말 기뻤다.


캠프 끝나고 바로 정기총회를 진행해야 했는데 말 그대로 시간 전쟁이었다. 걱정 많이 했지만 정작 정기총회가 시작되자 다들 침착하게 잘 마무리했다. 서로가 서로를 믿어서 가능했던 게 아닐까. 정기 총회 끝나도 컨퍼런스 개막식, 폐막식에도 참가, 인수인계, 지역청년회들과 다 함께 모여 회의, 부스 관리 등 여러 일을 해야 해서 따로 쉴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특히 회장 마크는 또 회장이 되었기에 컨퍼런스 중간 WFD와 함께 해야할 일들도 많았다. 셜리는 총무였는데 이번에 부회장으로 4년 더 연임하게 되었다.


2015-2019 / 2019-2023 WFDYS 이사진들


새 이사진 모두가 새 사람이 아니라 다들 안심하는 눈치였다. 적어도 1명이라도 전에 활동했던 사람이면 인수인계 후에도 업무가 잘 돌아갈 수 있으니까. 새 이사들은 거의 다 청년캠프 참가자였는데 캠프 기간 동안 여러 활동 통해 보였던 리더십, 역량 등 통해 WFDYS 새 팀의 미래도 밝아 보였다. 나머지 한 사람은 호주청소년캠프 때 리더로 참가하기도 했고 자국에서의 청년회 경험이 풍부해서 믿음직했다. 컨퍼런스 기간 동안 매일 1시간씩 가졌던 인수인계, 지역청년회들과 합동회의 등 통해 새 팀은 우리팀보다 더 막강한 팀이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마음이 든든해진 기분이었다. 우리 셋은 팀에서 물러나가지만 마크와 셜리에겐 막강한 새 팀원들이 있으니까.


2017-2019년 2년 임기는 짧고도 길었지만 내 청춘 중 빛나는 기록 하나로 남았다. 평생 잊지 못할 경험 중 하나 그리고 소중한 동료이자 친구들.


WFDYS, Frontrunners는

영원히 내 마음 속에서 꺼지지 않는 빛으로 마음을 환하게 비추는 든든한 등대와 같은 존재.   



다들 잘 지내고 있지, 늘 그리운 사람들.










작가의 이전글 WFD & WFDY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