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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Mar 12. 2023

미친 사회



휴식이 필요할 때면 내 몸은 어김없이 신호를 보낸다.

어깨와 허리에서 이유 없는 불편함이 느껴져 의자에 앉아있기 어려워진다. 종아리에서 시작된 피로감이 전신으로 뻗어나가고, 집중력은 급격하게 떨어진다.


나도 안다. 이럴 때는 쉬는 게 최고라는 걸. 하지만 회사라는 조직사회는 개개인의 효율적인 컨디션관리 따위는 규칙과 문화라는 미명하에 쓰러지더라도 키보드를 붙잡고 있어야 한다며 압박해 온다.

이런 환경에서 단 15분의 적절한 휴식과 회복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에, 나는 별 수 없이 피로를 꾹 참고 일에 집중하는 척을 해야 한다. 물론, 집중하는 척을 하면 일이 될 리가 없고 괜히 건드려서 문제만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사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열심히 하는 척을 하는 건 생각보다 힘들고 지루한 일이다. 내 아까운 일분일초가 이렇게 흘러가는 것도 싫고, 자꾸만 눕고 싶어 하는 몸을 다독이는 것도 피곤한 일인 데다가, 일하는 척을 보여주는 혼신의 연기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의미 없는 글자들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해야 한다. 그렇게 수시로 시계를 바라보며 어서 퇴근시간이 되어서 정당하게 달아날 수 있기를 고대하고 기다린다.


지금은 이런 회사 문화에 대해서 큰 불만은 없다. 모두가 기계처럼 일하고 불평불만을 퇴근 후 술 한잔으로 달래며 ‘다 그런 거지 뭐’ 정도로 치부하는 상황 속에서, 내 불만을 행동으로 옮겨봐야 나는 그저 모난 돌이고 적색분자이며 자기 권리만 주장하는 이기적인 놈이 될 뿐이다. 그래서 나 역시 이미 포기한 지 오래되었고, 그들과 마찬가지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휴식은 필요하다. 특히 나라는 사람은 남들보다 더더욱 필요할 수밖에 없는데, 나는 오랫동안 쉬어본 적이 없고 휴가가 따로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1월에는 대부분의 일을 내려놓고 강제적인 휴식을 취하려 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한 달을 내리 쉰다는 건 내 통장을 매우 서운하게 만드는 일이었지만, 당시에는 그런 것쯤은 고민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내 컨디션은 엉망이었고 내 속은 진탕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한 달간의 휴식기.

내 목표는 아무것도 안 하기였다. 컨디션이 어느 정도 회복될 때까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드라큘라처럼 침대를 관짝 삼아 누워만 있겠다는 건 아니고 신경 써야 하고 시간을 써야 하는 ‘업무’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기에, 운동이나 여행, 힐링에 필요한 여러 수단들은 당연히 즐겨야 하는 일이었다.


온전한 휴식을 위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핸드폰과 멀리 하는 것.

퇴사를 하고 급여를 받지 않으며 공식적으로 업무와 관련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선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건 내 알바 아니라는 듯 당연하게 연락을 해오는 게 문제다. 사람들이 이런저런 아쉬운 소리를 하며 도와달라는 말을 할 줄 알았던 나는, 백수에 입문하는 것과 동시에 수리를 핑계로 노트북을 공장에 보냈고 집 PC 역시 완전 초기화를 해서 원격업무 자체가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또한, 다른 일을 핑계로 전화도 받지 않고 카톡은 무음으로 전환해 두는 철저함을 보였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연락을 멀리 하느라 바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지치지 않는다. 계속 연락을 하고 연락되지 않으면 메일이나 메시지를 통해 내가 해야 할 일과 시일을 정해 알려준다.


이쯤 되면 이 사람들은 미친 거 아닌가 하는 깊은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이미 그 의무에서 벗어난 사람에게 온갖 아쉬운 소리와 친분을 핑계로 ‘네 일이니 당연히 네가 끝까지 해야 한다’는 식으로 나오면 어느 누가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까?


당연히 난 일에는 손도 안 댔고 시일 따위는 기억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일정이 펑크가 나고 사고가 터져야 그렇게 하면 안 될 일이라는 걸 조금이나마 알게 되고 연락을 안 할 테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한 달의 시간을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은 상태로 흘려보냈다. 오는 연락을 거절하느라 바빴고, 연락을 무시하느라 심력을 소비하며 스트레스를 쌓아야 했다. 관계를 완전히 끊어낼 정도는 아니었기에 어느 정도 선을 지키려다가 내 아까운 시간만 낭비하고 말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차라리 나도 저 사람들처럼, 아니 그보다 더 미쳐버리는 게 내 건강을 위해 좋은 일이 될 것 같다고.


미칠 자신은 없지만, 미쳐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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