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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정 Oct 13. 2024

자기 자신에게 희망을 가져!

[엄마사장의 사업기록] 45살에 다시 시작하기 

밤산책을 시작하고 처음, 아이와 단 둘이 걸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버리고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걷기'를 선택했다. 걷다보면 그냥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순간이 온다. 숨차서가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들과 주변 풍경에 시선을 돌리면서 나를 잠깐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저 '있다'는 감각만 남아 마음이 편해진다. 꾸준히 걷다 보면 자신에 대한 신뢰도 생길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해주어서 혼자 많이 걷고 싶었다. 


정확히 9번을 채 다 채우지 못했을 때 아이와 걷기 시작했다. 

매일 밤 집을 나서는 엄마를 울며 붙잡던 아이가 마음에 걸려, 데리고 나갔다. 긴 시간 걷는 것이 힘드니까 따라오다가 금방 안한다 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의 즐거움이 점점 커져간다. 

9시쯤 동네 천변을 걸으면 운동하러 나온 사람, 산책하러 나온 사람들이 꽤나 많다. 배드민턴을 치고, 농구를 하고, 런닝을 하거나 개를 산책시키고 가족이 다같이 나온 모습도 보인다. 곳곳에 잘 설치된 운동기구를 이용해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도 많다. 우리도 걸으며 운동기구도 해보고, 살짝 뛰었다가 수다를 떨며 걸으니 아이가 이 시간을 굉장히 즐거워하게 됐다. 남편과 2번, 아이와 3번쯤 걸었다. 오늘이 3번째 날이었다. 


엄마, 자신에게 희망을 가져

둘이서만 걸으러 나온 3번째 산책날. 우리 동네 천변 끝에 있는 폭포에 가자고 목표를 세웠다. 혼자 걸으면 꼭 폭포까지 갔다가 온다. 그래야 왕복 1시간이 조금 넘는다. 같이 걸을 때는 아이의 다리 컨디션에 맞춰 혼자 가는 것과 비교하면 중간 정도까지만 갔다 되돌아오곤 했다. 저 다리를 넘으면 폭포가 있다고, 엄마는 거기까지 간다고 말해주니 어느새 아이에게도 다리 넘어 폭포까지 가는게 목표가 되어 있었다. 

오늘 그 목표를 향해 걸었다. 운동기구도 두 번만 이용하고(이전엔 운동기구 전부 다 한번씩 해봤다), 왜가리와 오리 구경도 잠깐만 하고 (오리랑 왜가리 구경하느라 한동안 서 있기도 했었다) 폭포에 꼭 가자고 부지런히 걸었다. 드디어 도달한 폭포 즐겁게 인증을 하고 돌아오며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한테 바라는게 있어?"


이건 오늘 하루 종일 아이에게 나쁜 말을 쏟아 불편한 내 마음을 달래는 질문이었다. 아이의 말을 듣고 고쳐야지 사과해야지 마음 먹었는데, 아이가 이런 대답을 했다. 


"자기 자신에 대해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어."

엄마는 지금 상황이 안좋다고 하지만, 엄마 자신이 노력해가는 과정을 겪고 있다는 거. 그런데 엄마는 희망을 안가지고 있어서 그래서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본인은 희망이 있노라고 차분히 이야기를 한다. 


다시 곰곰히 떠올리니, 하나님이 아이의 입을 빌어 내게 이야기를 전한게 아닌가 할 정도로 큰 응원이었다. 힘들어도 나를 벌써 포기하지 말라는 메세지로 들린다. 참 지혜로운 아이, 초3의 현명한 위로가 너무 고맙고 걱정을 안겨주어 미안하기도 했다. 


목표를 이루려면 찡찡대던 나를 잊는 것부터

대한민국 40대의 자산 평균이 4억이라고 한다. 나는 그 평균만큼의 빚만 가지고 있다. 자산으로 보여지는 결과가 처참하니 자괴감이 나의 모든 것을 흔들었다. "그지 같아" 하루에도 10번은 말하고 생각하며, 불꽃같은 분노로 나 스스로를 짓밟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기분은 고스란히 가족을 짓밟는데 사용됐다. 

오늘 같이 사는 남자랑 솔직한 내 마음을 나누었다. 걱정과 분노, 의지하고 싶은 마음 등을 나누며 우리가 참 대화를 잘 못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아이와 산책을 하며 나의 비난에 엄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는 미안함이 가득한 어린 마음도 보았다. 10년 동안 나에게 시달린 두 사람이 보였다. 


산책의 말미에 아이에게 또 물었다. 너에게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고

"내 인생을 잘 살아가는 거지"

오늘 뭘 했는지 생각하고 목표는 어땠는지 생각해 보면 되지 않겠냐고 어른처럼 뒷짐을 지고 말을 붙인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오늘은 어떤 하루였냐고 

"어제 못 걷겠다고 찡찡대던 나를 잊고, 폭포까지 가서 나 자신을 너무 칭찬해. 목표를 달성해서 너무 좋고 감격스러워."


내가 찡찡대던 너를 극복했구나 리액션하니 아이가 내 말을 정정시킨다. 그게 아니라 어제의 나를 잊은 거라고. 그래, 잊는 거구나! 그렇게 코칭을 받고 모임에 나가고 책을 읽으며 에고를 대패질하면서 겨우겨우 '나는 그래'라는 생각을 버리고, '그래서 못해'라는 틀을 지우는 일을 힘들게 하고 있었는데, 아이의 한 마디에 그냥 잊는 거라는 걸 깨닫는다.


45살, 포기하기엔 너무 어리다

최근 2, 3일 너무 우울했다. 내 한계는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들어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것이 의미없어 보이며 그간 쌓고 지탱해온 삶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아니 무너뜨렸다. 나는 안되는구나, 나는 못하는구나, 나는 이만큼이구나. 할 수 없는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오만했구나. 그렇게 몇 시간만에 나와 내 세계는 참 하찮아졌다. 

나의 절망을 옆에서 본 아이가 나보다 더 잘 알았던 거 같다. 그래서 내내 엄마를 걱정하고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을까? 덕분에 요즘이 내가 나를 포기한 상태였다는 걸 깨달았다. 희망이 없다는 거, 목표가 없다는 거 모두 내가 나를 포기하는 일이었다. 

남편과의 화해, 아이의 위로로 답답한 마음에 안개가 조금은 걷힌 듯하다. 옆 사람을 의지하니 내가 무너뜨린 세상이 다시 무언가를 디디며 세워져간다. 45살, 포기하기엔 너무 어리고 또 나도 너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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