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과일에도 자유스러운 냄새가 났다. 프랑스는 과일 가게가 참 많았다. 진열대 위 반지르르한 자태를 뽐내는 과실들이 탐스러웠다. 그중 누가 실수로 깔고 앉은 듯 납작 짜부라진 모양이 눈에 띄었다. flat peach라는 복숭아였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이가 말랑하고 부드러우면 의외이듯이 납작 복숭아 맛도 반전이다. 한입 베어 물면 입안에 즙이 가득 퍼지면서 스르르 녹는다. 나는 이 도넛을 닮은 복숭아에서 프랑스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본 듯했다.
파리 사람들은 빨간 신호등에도 차가 없으면 그냥 지나다닌다. 최근 테러 경보가 떨어진 나라이지만, 프랑스 경찰관이 시민의 일상생활을 막는 행동을 거의 볼 수 없었다. 루브르, 오르세, 퐁피두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 앞에서도 특별한 제지 없이 더 가까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 그래도 별 사고 없는 그네들의 방식이 신기했다.
그들은 목 떨어진 인형의 가치를 서로 알아보고, 저마다의 스타일을 존중한다. 그리고 지하철, 해변 어디서나 책을 읽어댄다. 스스로 문화를 만들고 고민하는 태도가 이들이 삶의 주도권을 놓지 않는 비결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