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으로 엮인 독백
작년 7월 경 살짝 불합리한 일을 겪고 돌아와 분노에 찬 심경을 어디엔가 풀 곳을 찾다가, 이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개인적으로 일기처럼 쓰고자 했고, 글을 쓰기 좋은 서비스를 찾다가 어디선가 브런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서 써보았는데 생각보다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조금씩 글의 방향을 바꾸어나갔던 것 같습니다.
점차 개인적인 이야기를 벗어나 주변 디자이너나 인터넷에서, 혹은 비디자인 직군에서 디자이너를 대하면서 어려워하는 사연들을 접하고 제 개인적인 경험과 대조해보면서 그 때 디자이너는 왜 그랬을까, 혹은 클라이언트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반응했을지를 고민해보았더니, 정답은 아닐 수도 있지만 개인적인 답은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답을 나누었던 것이, 예상보다 큰 호응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이 글들이 브런치북 프로젝트라는 브런치 내부 이벤트에서 수상하고 몇몇 출판사 관계자분들의 눈에 띄면서 출간에 대한 제안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저는 '안그라픽스'사와 최종적으로 계약을 맺었는데, 책의 목소리나 의도 등이 안그라픽스라는 출판사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디자인을 공부하던 시기, 안그라픽스의 책들을 보면서 꿈을 키웠던 영향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일종의 로망이었으니까요.
브런치에 올렸던 원고들을 뼈대로, 글을 크게는 세 번, 작게는 수십 차례 발라내고 고치면서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세세한 변화들이 많이 있는데요, 우선 몇몇 화는 새롭게 추가하여 작성했고 몇몇 화는 합치면서 목소리를 더 또렷하게 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읽기 쉽도록 딱딱하던 표현들을 부드럽게 고쳤고 어휘들을 더 쉽게 고쳤습니다. 브런치에 쓸 때는 제 스스로도 기획하고 쓴 글이 아니다보니 논설문이 되기도 하고 에세이가 되기도 했는데, 책은 에세이로 좀 더 집중하면서 더 쉽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아쉬운 점은, 저작권 문제로 도판이 삭제되었습니다. 대신에 장마다 일러스트가 들어갔고 도판 부분은 최대한 이미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서 글로 대체하였습니다. 일러스트 작가님께서 저를 본딴 듯한 캐릭터를 그려주셨는데, 하는 짓(?)이 제 취향에 딱 맞습니다. :) 도판의 아쉬움을 달래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다 디자인. 어쩌다 디자인을 하게 되면서 디자인을 조금 이성적으로(?) 바라본 제 상황을 잘 설명하는 말이면서도, 동시에 디자인의 상황이나 본질에 대해 어찌해야할지에 이야기하고 있는 책 내용을 담는 중의적인 표현의 제목입니다.
제목을 보면 디자이너들이 읽어주길 바라는 책인 것 같지만, 저는 꼭 디자이너들에게만 읽히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저는 디자이너로서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실제로는 책 내에서 디자인과 클라이언트로 호칭된 이들과 같은 형태의 관계를 갖는 모든 이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물론, 디자이너와 소통하는 분들이나 스스로가 디자이너인 분들은 비교적 공감할 내용이 더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개발자도, 기획자도 우리 모두는 수없이 비슷한 관계를 맺고 비슷하게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출간을 준비하면서 글을 쓸 마음의 여유와 물리적 여유가 없어서 새로운 글을 많이 못썼는데, 다시 여유를 찾으면서 글을 쓰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 많이 고민하고 더 좋은 내용을 써 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계신, 그리고 앞으로 도움주실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