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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진 Mar 18. 2018

누구를 위하여 디자인하나

Shang H. Hsu 외 3인을 읽고

매거진 [디자이너 논문 일끼]는 이름 그대로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다양한 분야의 논문을 읽고, 그로부터 얻은 지식과 인사이트에 나름의 느낌을 담아 논문 일지의 형태로 적으려 하고 있습니다. 참고문헌은 글의 첫 부분에 표기되며, 이하 본문에서는 '논문'으로 약칭합니다.
참고문헌 : A semantic differential study of designers' and users' product form perception (Shang H Hsu*, Ming C. Chuang, Cheing C. Chang, 2000, International Journal of Industrial Economics, 25)


디자이너들은 보통 '전문직'으로 분류된다. 일반적인 정의에서 전문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력을 육성하기 위해, 많은 디자인 교육기관들이 디자인 특화된 교육을 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은 당연히 꼭 필요하다. 그래야만 사회가 디자이너에게 기대하는 전문화된 업무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교육자들 역시 디자이너로 구성되어 있고, 교육 받는 학생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 또한 '디자인' 으로 집중된다. 이 디자인으로 점철되는 삶을 통해, 디자인 학생들은 디자이너로서 남다른 감각과 실력을 갖추게 된다.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사회에 방출되면서부터 시작된다. 길게는 초등교육과정부터 10여년 이상 디자인 교육을 받으며 디자인으로 성을 쌓으며 살아온 그들은 사회로 내던져진다. 갑자기 소비자가 등장한다. 그들은 나름의 기준을가지고 디자인을 평가한다. 이 때 과연 디자이너 사회에서 더 좋은 디자인으로 생각되던 것이 절대적으로 소비자에게도 옳은 것으로 평가될까? 이 논문은 아마도 이런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논문은 동일한 24대의 전화기 디자인이 20명의 소비자와 20명 디자이너에게 각각 어떻게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지를 실험을 통해 보여준다. 이 논문이 행한 실험에서 결과가 꽤 흥미롭다. 디자이너들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 안은 소비자의 선호안에는 들어있지 않고, 소비자가 가장 좋다고 생각한 안은 디자이너 투표에서는 3위를 차지한 안이었다.


또한, 같은 디자인 형태에 대해 묘사하는 표현 자체가 달랐다. 이에 대해 논문은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는데, 하나는 디자이너와 소비자가 정말로 같은 형태에 대해 서로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소비자와 디자이너가 '이미지 표현어'에 대한 개념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논문에서 이미지 표현어와 디자인 점수표를 비교분석한 데이터를 보면 좀 더 확실해지는데, 디자이너들은 'Creative,' 'Mature,' 'Delicate'와 같은 표현들이 상관관계가 높은 반면 소비자들은 'Delicate'에 높은 수치가 나타났다고 한다. 즉, 디자이너들은 예술성이나 창의성, 완성도 등에서 높은 점수를 주었지만 소비자들은 단지 세련된 형태인지를 평가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세련되었다라는 표현은 디자이너와 소비자 둘 모두에게서 높은 상관관계로 나타나지만 세련되었다고 표현한 모델은 상기했듯이 달랐다. 이렇게 디자이너와 소비자는 서로 다른 세상에서 같은 물건을 바라보고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고민과 갈등은 시작된다. 디자이너는 더더욱 이상적인 조형미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것일까, 아니면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형태를 고민해야 하는 것일까. 디자인의 목적을 고려했을 때에는 우선적으로 후자를 선택해야겠지만, 그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만은 아니다. 만약 그것이 단순한 정답이었다면, 오랫동안 전 세계의 디자인 교육기관들이 현재와 같이 폐쇄적으로 발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상미를 찾는 것은 분명히 그 나름대로의 이유와 장점이 있고, 실제로 그러한 디자이너들에 의해 사회의 인식이 바뀌어왔으며 우리 주변은 윤택해져 왔다.


개인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정답을 내린다면, '발은 땅에 딛고 눈은 하늘을 보는' 게 답인 것 같다. 일단은 소비자에 대한 고민을 통해 만족도가 높은 디자인을 하는 게 중요하다. 2010년대부터 강조되고 있는 사용자 경험이나 사용자 연구 등은 아마도 이 논문과 같은 연구들 속에서 사용자가 원하는 바를 좀 더 명확히 알고, 그들이 원하는 가치를 충족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디자인을 하기 위해 발전되어 왔을테다. 디자이너가 소비자/사용자 속에 뛰어들어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발을 땅에 딛는' 자세다. 눈이 하늘에 있다고 하여 발마저도 하늘에 있으면 날개가 없는 한, 떨어지지 않겠는가.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용자 경험 연구 자체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한 것도 사실이다. 이미 2000년도 이전에 연구된 이 논문 역시도 그 점을 시사하고 있다. 사용자들이 '세련되었다'라는 한 가지 평가어에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면서, 그 대상이 디자이너 응답자에 비해 넓게 분포했다는 점이다. 사용자는 분명히 디자인 전문가가 아니다. 그들이 디자인에 대해 느끼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기존의 경험과 개개인에게 현재 주어진 틀 안에서 국한된다. 때문에 실제로 사용자 경험 관찰을 통해 단서를 얻으려 시도했던 몇 번의 경험에서도 생각보다 일관적이면서도 일찌감치 예상된 단서들만 나와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던 적이 많았다. 이렇게 되면 결국 그 안에서 나올 수 있는 디자인 결과물 역시 제한적이다.


결론적으로 이 연구가 중요한 것은 사용자와 디자이너가 얼마나 다르게 디자인을 인식하는지를 확인하고, 사용자 경험 중심 디자인의 물꼬를 트는 데에 기여했다는 점일 듯하다. 꽤 오래 전에 쓰여진 논문이기 때문에, 현재 시점에서 읽었을 때에는 특히 결론 부분의 연구 의의로 표현한 부분이 이미 UX 디자인의 형태로 많이 진행되어 있어 낡은 느낌은 든다. 그러나 논지의 전개방식이나 실험 방식, 실험의 분석 방식은 참고할 만하다.


개인적으로 이 연구를 읽게된 목적 중에 하나는 이미지 표현어 추출 부분인데, 실험에 앞서 이미지 표현어를 어떤 기준으로 추출했는지가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이들은 이 부분을 먼저 사전 실험에서 10개의 전화기 디자인을 정해 17명의 디자이너와 17명의 사용자에게 이 전화기 디자인들을 설명하게 하고, 그 표현들 속에서 24개의 형용사를 추출하는 방법으로 선정하였다고 한다. 그 다음 다시 30개의 전화기 디자인을 9점 척도로 24개 형용사를 이용해 평가하게 하고, 이 결과물을 군집 분석을 통해 정확도를 추출, 총 24개의 전화기 디자인과 14개의 형용사 표현어로 정립했다고 한다. 이렇게 최대한 객관성있는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 부분들은, 추후 실험이나 분석 계획을 세울 때 배울 만한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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