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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진 Apr 27. 2018

디자인, 왜 경험이 필요할까

Seda Yilmaz 외 1인을 읽고

한때는 디자인은 신선한 발상이 무조건 우선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디자이너로서 약간의 경력을 쌓은 지금으로써는 경험과 노련함이 디자인에 얼마나 중요한 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예전에 그린 스케치를 보면서 현재의 스스로의 모습에 반성이 될 때가 있습니다. 이번에 읽어본 연구는 이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참고문헌 : Creativity through design heuristics: A case study of expert product design (Seda Yilmaz*, Colleen M. Seifert, 2011, Design Studies, 32)


우리는 '디자인'하면 새로움, 뭔가 색다름을 떠올리곤 한다. 이것은 지난 읽기(https://brunch.co.kr/@yjjang/47)와도 연관이 있는 이야기로, 디자인이라는 어떤 활동을 하고 난 후라면 어딘가 달라질 것을 기대하는 심리 때문일 것이다. 이 때문에, 디자인이라는 영역은 신선하고 독특한 발상이 오랜 시간 다듬어져 어찌보면 '일반화된' 표현보다 더 우월할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리고, 실제로도 디자인 영역에서 이러한 독창성, 개성, 예술성 등은 노련함을 뛰어넘어 부각을 받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일명 '백설공주의 관'으로도 불리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인인 Braun사의 SK4 Music Center는 1956년에 디터 람스에 의해 디자인되었는데, 이 때 디터 람스의 나이는 불과 27세였다. 디터 람스는 브라운의 전성기로 일컬어지는 1960년대와 70년대를 수석디자이너로서 이끌었는데, 20대 후반~30대 중반의 연령대에 행해졌던 것이니 노련함보다는 신선하고 개성적인 영감에 의한 것이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SK4 Music Center (Dieter Rams, Braun)


그러나, 그렇다고 디자인이라는 영역을 개성이 중요한 영역이라고 속단하기에는 이른 듯하다. 어떤 분야에서든 남들보다 성취가 빠르고 이른 나이에 많은 것을 이루어내는 천재는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경험이 주는 선험적 경향성(Heuristic)이 디자인 결정이나 결과물의 질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 분석하려 시도한다.


이 연구는 선험적 경향성에 대해 먼저 대략적으로 1) 항상 좋은 결과 - 혹은 심지어 단지 그냥 결과 -로 이어지진 않는, 그리고 종종 해결책으로 적용 가능한, 빠르지만 정돈되지 않은(quick and dirty) 결과를 제안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경험이 있는 디자이너들은 선험적 경향성을 통해 새로운 디자인 해결에 대한 특성이나 요소들을 얻는데 도움을 받을 것이다.'라는 가설을 제안한다. 


Heuristic Sink design, Figure 4, Seda Yilmaz et al, 2011.


예를 들어, 디자이너들은 존재하는 표준적 형태를 단순화하려는 경향성(Simplifying the existing, standard solution)을 보이는데, 이로 인해 디자인은 더 나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위 그림에서 a는 처음 싱크대를 디자인한 스케치인데, 냉수와 온수에 따라 구분된 모서리를 누르면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이 나오도록 고안한 것이다. 이를 피실험자는 스케치를 전개하면서 b의 디자인으로 발전시켜갔는데, a의 경우 왼손과 오른손으로 자유롭게 활용하기 어렵고 파트가 늘어나 비용도 올라가는 데다가 심미적으로도 아름답지 못하게 평가될 가능성이 높은 반면, b로 단순화시킴으로써 더 자유롭게 조작할 수 있고 파트가 줄어들며, 미적으로도 개선될 가능성이 높은 형태로 발전한다는 점을 제시한다.


Heuristic Sink design, Table 1, Seda Yilmaz et al, 2011.


이와 같은 식으로 연구자는 2명의 피실험자가 그린 50개의 스케치들로부터 위의 총 21개의 경향성을 수집한다. 이 경향성은 디자인을 해오면서 피실험자들이 체득한 것으로, '이런 식으로 하면 더 좋은 디자인이 되는 경향이 있더라'는 인지적 수집의 결과일 것이다. 바꿔말하면, 이 경향성의 집합이 보다 정밀하게 정의되고 정리될 수 있다면, 이들을 학습시킴으로써 좀 더 '디자이너스러움'에 가까워질수도 있다는 가설에 닿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밖에도 연구는 기호적 휴리스틱과 과정 상의 휴리스틱까지도 분석하는데, 다 포함하려면 너무 양이 방대해지기도하고, 크게 와닿는 부분은 없어 생략한다. 


본 연구는 주제의 특성상 많은 디자인 전문가를 대상으로 자료를 수집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절대적인 데이터 자체가 신뢰성이 높다거나, 실험 결과로 나온 데이터 자체가 '이것이 디자이너다'라는 정답을 담보하는 성격의 연구는 아니다.


다만, 디자이너들의 성향에 집중하면서 오랫동안 훈련된 디자이너들이 가지는 성향, 이 경험적 성향이 결국 노련함으로 이어지고 더 나은 디자인 결과물을 이끄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일부나마 실험적으로 보여줬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본다. 본 연구에서 이 노련함이 이끄는 도드라지는 장점으로 언급하는 것이 1) 환경, 맥락과의 적용성 2) 디자인 결과물의 다양성 증진 3) 제품 요소의 이면적 사용인데, 위의 표를 참고하면 이 세 가지가 어떤 식으로 갖춰져갈지를 예견할 수 있다.


주관적인 판단이 많은 점은 연구 주제 자체의 한계로 볼 부분이나,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이 연구를 정답이라고 믿기보다는, 접근 방법이나 연구자의 생각 등을 참고하면서 보다 객관적인 연구로 발전시킨다면 더 나은 디자인을 위한 혁신적인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난 3주간 몇 편의 연구를 더 읽었지만, 큰 인사이트나 소개할 만한 내용이 없어 글을 작성하지 못했습니다. 혹시 읽어볼 만한 연구가 있으면 댓글 등으로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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