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화되고 파편화된 관찰 내용을 일반화시키기
사용자를 관찰하는 것은 즐겁고 인사이트 넘치는 과정이지만, 관찰한 데이터 자체는 너무 지엽적이거나 주관적이기가 쉽다. 특히 정성적인 조사들의 경우 조사 대상이 많지 않기 때문에 해당 관찰 대상의 특수한 문제가 자칫 사용자 집단의 문제로 오인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닌, 집단의 문제로 관찰 내용을 확대하여 더 효과적인 디자인을 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정의하기의 과정이다.
사용자 관찰의 결과는 파편화된 데이터의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들을 군집화하여 분석(Bottom-up)하거나 정해진 군집에 분류함으로써 분석(Top-down)하는 형태로 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친화도법(Affinity Diagram)과 카드 정렬법(Card Sorting)이 대표적인 기법들이다.
사실 이들은 통계학적으로 아주 기본적이고 전통적인 데이터 처리 방법들로, 이름은 특별해보이지만 내용은 아주 정석적이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학습법에도 지도학습과 비지도학습이 있는데, 카드 정렬법은 라벨을 매겨 분류하는 지도 학습, 친화도법은 유사도에 따른 군집분석인 비지도 학습에 각각 대응된다.
만약 제작하고자 하는 대상이 특정되어 있고 그 대상에 대한 분류가 명확하다면, 관찰 결과를 그 명확한 기준에 맞춰 분류하면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서비스의 '회원', '결제', '매장' 등의 기준에 따라 새롭게 발견된 관찰 결과들을 분류할 수 있는데, 이 때에는 카드 정렬법이 적합하다. 또는 스크린이나 기능 목록이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관찰들을 스크린별, 기능 별로 모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기존에 정의된 라벨에 맞춰 새로운 데이터를 분류하여 입력하고 그 집단 내에서 경험적인 인사이트를 정의하는 것이 카드 정렬법이다.
친화도법은 반대로, 기준이 아직 정해져있지 않은 관찰 내용들을 모아 유사도에 따라 배치하고, 이들의 군집을 정의하면서 경험적인 인사이트를 수립해가는 방법을 택한다. 즉 아직 정의되지 않은 분류를 데이터 간의 유사도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군집을 통해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프로젝트 진행자의 선입견이나 관념에서 벗어나 데이터에 집중하고, 문제나 수요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한 접근법이다.
KJ Mapping은 이러한 친화도법의 방법 중 하나*인데, 일본의 인류학자 카와기타 지로(Kawakita Jiro)의 이름을 딴 이 방법은 각 데이터 간 친화도에 따라 거리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지도화(Mapping)** 하는 방법이다. 이 때에 중요한 것이 각 관찰 내용을 데이터화하고 이들 간의 거리를 계산하여 배치하는 것인데, 이 데이터화와 계산의 적합성에 따라 군집의 성격이나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Affinity Diagram과 KJ Mapping 두 용어가 혼용되며 거의 동의어처럼 여겨지는 경우도 많은데, 엄밀히는 다르다고 본다. 도식화(Diagramming)는 지도화(Mapping)보다 더 넓은 범주의 용어이며, KJ Mapping은 친화도(Affinity)를 기준으로 도식화하되 좌표와 거리를 사용하는 지도화 방법이므로 친화도법의 세분화된 일종으로 여기는 게 바랍직하다는 의견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기법들이 존재하고 또 생겨나는데, 이 때 지도(Map)라는 단어로 명명된다면 기법의 성격이 2차원적일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즉, X/Y축의 2축으로 이뤄진 좌표가 의미를 가지며, 데이터 간의 거리나 상대적인 위치 등이 의미를 가질 때 지도(Map)라는 단어가 사용된다는 점이다.
때문에 카드 정렬법이던 친화도법이던 중요한 것이 관찰 결과를 처음에 잘 정리하여 분석하기 좋은 데이터로 정제하는 과정이다. 통계에서 이야기하는 데이터 전처리의 과정인데, 지나치게 지엽적인 데이터(outlier)나 관측 결과가 모호한 데이터, 이상한 데이터를 배제하고 각 데이터 안에 너무 복합적인 내용이 들어가지 않도록 구성하여 지도화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이 과정에서 추천하는 방식이 관찰 대상인 목표 사용자를 주어로 하는 서술형으로 카드를 만드는 방법인데, 이렇게 하면 지도화할 때 내용을 파악하기에도 편하고 혼란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즉, 만약 어떤 터치식 키오스크 UI 앞에서 주문을 하려다 어떤 버튼을 눌러야할 지 고민하다 돌아서는 사용자를 보았을 때 "복잡한 터치식 키오스크 UI" 대신 "주문을 하고 싶은데 어딜 눌러야 할지 모르겠어."로 카드를 작성하면 상황과 사용자의 감정 등이 분명하게 드러나면서 해당 카드가 위치할 분류도 명확해지고 사용자의 감정 등에 동기화하는 군집으로 발전시키기가 쉬워진다.
이 군집화된 사용자 분석 결과는 다시 정제를 통해 더 감각적으로 인지 가능한 인격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데, 이렇게 만들어지는 인격이 바로 수많은 사용자 경험 디자인 방법에서 제시되곤 하는 페르소나(Persona; 퍼소나)이다. '사용자 경험 디자인' 프로젝트라고 하면 거의 확실하게 등장하는 내용이 바로 페르소나인데, 대표적인 방법인 만큼 잘못 이해되는 경우도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다음에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우선 중요한 점이 사용자에 대한 관찰과 정의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대표적인 사용자의 가상인격이어야 한다는 점인데, 이러한 맥락없이 단순히 '보기 좋은' 인격을 만들어 놓고 접근하는 경우는 지양해야 한다. 충분히 사용자의 목소리를 데이터화하여 분석한 뒤에, 그 분석을 토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사용자 관찰 결과를 면밀히 바라보고 그 목소리를 모아 인격화하는 사전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이 쯤에서 디자인 결과물에 대한 계획과 확신을 가지고 접근하여 분석과 정의를 이후에 나올 디자인 결과물에 맞추는 경향이 많이 발생하는데, 이러한 접근은 절대로 금물이다. 영감과 직관에 휩쓸리다보면 모든 절차가 자칫 견강부회(牽强附會)로 끝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선입격과 예측을 배제하고 사용자와 그 데이터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 냉정한 분석에 초점을 두어야 비로소 지금까지 어렵게 끌어온 관찰과 정의가 살아있는 지표로서 인격화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