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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M삼min May 30. 2024

9만 원씨의 신기루

허상을 쫓은 대가

 나는 더위가 오기 전 이맘때 창문을 열고 잠드는 것을 좋아한다. 새벽녘 잠시 찬 공기에 얇은 솜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겨 내 몸으로 만든 온기로 나를 데우며 '조금만 더'하고 신에게 애원하는 한 시간 남짓.

 

 문 밖에 이런 아침이 존재하는 삶에는 조금 까다로운 조건이 동반되어야 한다.

 

맑은 날씨

적당한 일조량

비둘기 말고 다른 새

창을 열고 밤을 보내도 안전한 치안

모든 루트를 차단당해 입실을 포기한 벌레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무 냄새.


 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 동안 부합하는 조건의 집에서 거주하지 않았고, 날씨도 일조량도, 그런 날은 1년에 며칠 지 않는다. 오래전에 단종된 과자의 맛을 떠올리며 잔뜩 아쉬워 곱씹어 보듯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런 아침을 꽤나 자주 꺼내어 보았다.

 

 창 밖의 젖은 나무와 흙냄새를 양껏 들이켰다 내쉬는 한숨에 놀란 참새가 포르르 날아오르며 짹짹 지저귀는 소리로 시작하는 하루가 좋았다.

 뽀송한 파자마와 잘도 바스락거리는 이불의 수다를 좋아했다. 마룻바닥에 첫발이 닿는 차가운 기운정신을 차리면 그하루도 두 발로 단단히 설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을 아주 오랫동안 그리워했다. 그런 아침을 맞이해 본 적 없는 사람처럼 시치미 뚝 떼고 처음으로 돌아가 모든 것이 처음인 양 다시  맛보고 싶었다. 

 

 원하는 것을 바라며 회상하는 기억들은 변질되기 마련이다. 나는 그것이 너무 그리워 미화하고 또 미화하고 유료 필터를 씌우듯 기억을 조작해서 아주 오랫동안 맘속에 품어두고 틈날 때마다 여러 번 꺼내 보았다.

 그것은 원래의 모습을 잃고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뀌었고, 경험은 사라졌다. 경험이 사라지자 나는 알던 것도 겪어본 것도 망각하기 시작했다.

 신기루를 쫓던 내가 허망하게도 마침내, 유료필터를 해제하듯 미화되고 조작된 기억을 하나씩 걷어낸다. 하지만 이미 미화된 기억을 몸소 '체험했다' 착각한 두뇌는 그것을 놓아줄 없다.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없어 차만 다니는 오르막길을 아침에도 저녁에도 혼자 오르내린다. 온전히 진 삶의 무게에 거친 숨을 내쉬며 터덜터덜 혼자 걷는다. 종일 앉아 쓰일 일이 없는 발목과 무릎이 힘들다고 아우성친다.

 나뭇잎과 땅 벌레들이 뒤엉킨 계단을 오르자 마주하기 달갑지 않은 것들이 우두커니 버티고 있다.

 오늘도 이 골목만 분리수거에서 제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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