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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M삼min Jul 15. 2024

찰나

여름, 장마, 열사병

 사람이 되려고 마늘 한 움큼을 주워 먹고 등산길에 올랐다.

한 시간 10분 남짓한 거리를 우습게 보고 물병 하나 없이 운동화에 모자를 쓰고 핸드폰만 하나 달랑 가지고 팔각정을 향해 걸었다.

 속이 타는데 마늘 때문인지 가장 더운 시간대인 13시가 뜨거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

 조금만 버티고 나를 덜어내면 곧 숲 길이 나오니 그때까지만 참자고 버틴다. 또 버틴다.

 편의점 하나를 지났다. 물 한 병 사 마실까 하다가 마늘 때문인지 더위 때문인지 타는 속을 골려주고 싶은 마음에 이내 접었다.

 성북동에서 무턱대고 횡단보도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곳곳에 보행자 작동 신호등 사인이 붙어 있다. 넋 놓고 기다려봤자 건널 수 없다. 여러 번 당했는데 오늘 또 습관처럼 넋 놓고 길에 서 있었다.

 마늘이 더 필요한 모양이다.


 작동 신호기 버튼을 누르자 수십 초 후, 곧 초록불로 바뀌었다. 터널 앞 횡단보도에 멈춤을 당한 차들이 일제히 정지선을 지키고 섰다. 감사한 일이다.


 우거진 숲 길이 나온다. 보기 좋게 정비된 나무 계단이 나타났다. 이제 모자는 벗고 나무 그늘 아래서 타는 속을 비운다. 내려놓을 것을 걸음마다 비운다.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곱씹는 것만으로도 마늘을 한 움큼 집어먹은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것만 같다.

 더워서 그런 모양이다.

 

 시간이 늦어 등반객이 이미 드물다. 물소리, 나무소리에 마늘 숨을 게워낸다.

 나란 년은 타이밍을 잘 못 맞춘다. 작년 여름에도 한낮의 불볕더위에 자전거를 타고 한강으로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이미 더위를 먹었다는 것을 체감하여 낑낑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돌아와 주말 내내 바닥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마 이번 주말도 그렇게 될 것이 뻔하다.

 새파란 하늘, 빛나는 태양, 한강엔 사람이 없었다.

 홀로 도로를 전세 낸 기쁨에 들떠 일말의 의구심 따위도 가지지 못하고 쌩쌩 따릉이 달을 밟았었다.

 사람들은 이미 라이딩을 끝낸 한 여름의 오후, 꼭 그렇게 한 걸음 늦었다.

 그리고 이젠 파란불이 들어올 리 없는 횡단보도 앞에 넋 놓고 서 있었다.


 아스팔트를 달구는 지열에서 벗어나 천국의 계단을 오른다. 뒷다리가 열일하느라 마늘 숨이 분에 넘치게 제 할 일을 토해낸다.

 이제 얼마나 남았는지 지도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얼마나 걸어야 하는 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팔각정에 올라야만 물을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더웠다. 여전히 속이 타들어간다. 땀에 젖은 기능성 운동복은  벌써 그 기능을 다 했는지 스포츠 브라선이 다 보이게 젖었다.

 어차피 등반객이 없어 누구 하나 볼 일이 없어 다행이었다.

 흘린 땀에 옷이 젖고 다시 마르고 또 걸음을 옮겼다. 나무 계단, 돌계단, 돌블록을 깔아 둔 좁은 숲길, 다시 계단, 그리고 또 계단.

 지방이든 마음속에 들어앉은 무거움이든 뭐든 내려놓으면 된다. 템플 스테이에서 배운 명상법을 상기하며 걸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마늘 한 움큼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

 생각.

 생각.

 한 걸음 걷고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떠올리려고 할 때마다 생각이란 단어를 외운다. 발걸음을 옮기며 머릿속에서 움직이는 잔상을 발로 툭 차버린다.

 생각.

 생각.

 생각.

 뱀 나오면 어쩌지?

 생각.

 생각.

유혈목이 그런 거 있으면 어쩌지?

아씨, 벌레!!

 생각.

 생각.

 생각.


 이래서야 나는 마늘 한 움큼 가지곤 사람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한 시도 마음을 비우지 못해서야 원.

 팔각정에 다다르자 하나 둘 등산로를 내려가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마늘 냄새가 날까 봐 입을 꾸욱 다물었다.

 배낭, 스틱, 수통, 그 어느 것 하나 들지 않은 내가 벌거벗기라도 한 듯 사람들의 이목이 쏠린다.


 팔각정 앞 마지막 초소를 지나자 조금 더 속도를 냈다. 이제 생각. 을 외던 머리가 물을 외친다.

 아이스티.

 솔의 눈.

 토레타.

 나란 인간은 얼마나 욕구 앞에 쉬이 무너지는 사람인가!

 팔각정이 보이자 무리하게 뛰었다. 등산로에서 길을 건너 편의점 앞으로 내달렸다. 냉장고를 열어 차가운 기운을 한 모금 훔쳐 마시고, 아까 생각했던 음료를 집었다.

 계산을 하자마자 벌컥벌컥 마셨다. 마늘은  이미 다 타서 재가 된 모양인지, 속 시원하기만 하다. 달콤한 음료 한 모금에 더위를 주워 먹은 정신줄을 조금 더 부여잡는다.

 집에 돌아갈 체력이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아 전망이 잘 보이는 그늘에 앉아 남은 음료수를 천천히 다 비웠다.

 벤치에 누워 한숨 잤으면 싶은데, 볕이 뜨거워 그만두기로 했다.

 아직 비축되지 않은 몸을 일으켜 다시 내려간다. 집으로 가야겠다. 씻고 이 뜨거운 볕을 피해 집에 좀 누워야겠다.

 열사병 환자가 되더라도 집에서 앓아누워야 한다.

 내려가는 길은 수월하다.

 곳곳에 시원한 바람도 불어온다.

 잠깐 쉼터에 앉아 쉬고 싶었지만 나보다 더 늦은 등산을 선택한 등반객들이 갑자기 늘어 앉을 수 없었다.

 조금 정신이 혼미해진 탓인지 내려오는 길을 잘못 들어 다시 돌아가야 했다. 그냥 집 하나만 생각하고 또 넋을 놓고 있던 탓인지도 모른다.


 숲길을 다 내려와 공중화장실 냄새에 코를 막고 다시 아스팔트 지열이 내리쬐는 도로에 다다랐다.

 이번엔 보행자 작동 버튼을 잊지 않고 눌렀다.

 길을 건너 걸었다. 조금 지치자 꽤나 머릿속을 비우며 걸었던 것 같다. 생각.이라고 더 이상 외치지 않고 뜨거운 열기를 버티며 볕이 잘 들지 않아 상대적으로 서늘한 집에 도착했다.

 차가운 물로 땀을 씻어낸다.

 냉장고 문을 열고 차가운 우엉차를 벌컥벌컥 마셨다.

 세탁기를 돌린다.

 낮잠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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