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벽과 슬레이트 지붕에 가려 빛이 들어오지 않는 창고방에 대롱대롱 매달린 길고 긴 에어컨 호스는 창고방 벽을 지나 보일러실 위를 지나 폭우가 오면 무너질 것 같은 낡은 외벽을 아슬아슬하게 뚫고 집 옆으로 나있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계단으로 나있다. 버려진 실외기와 무언지 모를 네모난 창틀 같은 부품도 몇 개 뒹굴고 있다.
두 개의 벽을 뚫어야만 찬 바람을 쐬며 잠을 청할 수 있는 이 집에 온 지도 두 달이 지났고 에어컨 없이 보내는 첫 번째 여름을 보내고 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비 덕에 창을 열고 서늘한 잠을 청했고 낑낑대며 들여온 제습기는 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주차권 있니? 우리 벤더가 이 비를 뚫고 미팅하러 오는데 주차권을 꼭 줘야겠다."
서랍 안에 몇 장 남아있다. 하지만 타 부서에서 준비를 안 했으면 준비를 안 한대로 저들이 알아서 해결하게 둔다. 한 장을 주면 다음에도 또 다음에도 부서 내에서 구매하지 않고 계속 찾아오기 때문이다. 사적인 친분도 조금은 과감히 배제해야 한다.
너네들 나눠줄 건없으니, 부서에서 알아서 구매해서 쓰라고 해도 여전히 고집을 부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자기는 준비하지 못했고 남의 부서에 와서 생떼를 쓴다. 이런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내가 니 상사한테 승인받고 알려줄게."
죽어도 나한테 빨대를 꽂고야 말겠다는 심산이다. 마지막 통보를 날린다.
"언니, 승인받고 알려줄 필요 없으니까 알아서 해결해. 주차권이 없으면 벤더랑 같이 내려가서 주차요금 법카로 정산해 주면 돼."
답이 없다. 본인이 원하는 대답이나 가이드가 아니란 뜻이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내 상사의 꾸지람이 애꿎게도 나에게 돌아왔다.
"그걸 왜 준비도 안 해놨어?"
"해당 부서에서 지금 얘기했습니다."
더 하려다 상사가 바빠서 미쳐 말하지 못했다. 남의 부서걸 우리 돈으로 왜 준비하냐고 되물었어야 했는데, 꾸지람만 남기고 그는 유유히 나를 떠났다.
주차권 한 장도 없이 그만한 마음을 쓰고 싶었던 사람이 말했다.
"이번엔 그냥 보냈어. 니 상사가 시킨 일 때문에 온 사람이니까 네가 주는 게 맞아."
맞고 안 맞고를 왜 본인이 따지는지, 상대할 맘은 진작에 사라졌다.
"임원이 시켜서 미팅을 준비한 사람이 벤더 요구조건이나 주차권까지 책임지고 준비해서 마무리해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는 예산이 없어."
"누군 많고?"
회사가 예산 줄여라, 더 줄여라, 하니 선불주차권 사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사실 무엇보다 선불 주차권 사다 주차권 대장을 기록하고 법인카드 구매내역 정산하고, 다들 그게 귀찮은 거다. 다들 저 귀찮으니 나에게 온다. 나는 그런 귀찮은 일을 하는 사람인 양, 당연하게 조금 친하다는 이유로 혹은 전에 부탁을 들어주었단 이유로, 심지어 평소에 마주쳐도 인사도 안 하고 내 뒷담화나 하는 사람조차도 주차권 쓸 일이 생기면 나에게 와서 찾는다. 대부분 나가는 돈 주머니가 다른 '타 본부' 사람들이다.
그 마음 참 비싸다. 업무상 나랑 연관도 없는 사람들이 그럴싸한 핑계를 대는 것도 하나같이 똑같다. '니 상사가 나한테 시킨 일이니까' 아니 그럼 회사 내 모든 승인과 결정은 사장님이 하는데 회사 내 모든 자질구레한 일은 다 사장님 비서실에 얘기할 건가?
그냥 제 손 귀한 것뿐이다. 그 비싼 마음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전사 주차권 거지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나라고 부서 예산을 높게 측정해 둔 것도 아니고, 짜둔 1년 치 예산은 이미 예전에 깎였는데 말이다.
선불 주차권을 미리 사두기도 싫고, 없으면 주차비를 법인카드로 정산해 주기도 싫고, 그냥 내가 좀 희생해서 자기들 필요할 때마다 한 장씩 주면 된다는 그 마음, 하루 9만 원 버는 나에게 빨대를 꽂아 여기저기 나눠주기엔 너무 비싼 마음이 아닌가?
앞으로의 주차권 거지가 어떻게 불어날지 자명하다.
-누구한테 가서 니 상사 때문에 미팅 온 사람이니까 주차권 달라고 해, 나 그렇게 해서 걔한테 받았어.-
9만 원씨의 일상에 이렇게 잡무가 하나 더 늘었다.
'요청드립니다' '부탁합니다'라는 한 마디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그게 자기들이 하는 일이고 사회생활이라고 말한다. '자기 일'에서 잡무는 분리해서 생각한다. 잡무는 이 일을 자신에게 일임한 임원의 비서몫이라고 생각하기에, 임원도 모르게 그의 비서에게 요청이니 부탁이니 하는 잡무를 떠넘긴다. 자신이 소속된 본부나 부서의 임원에게 할당된 비서가 없다면이렇게 한 다리라도 걸친 '비서를 가진 임원'을 찾아내고 그 임원의 비서에게 떠 넘긴다. 잡무는 제 손으로 하긴 귀찮고 딱히 성과도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요청과 부탁이 타당하게 필요한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대부분의 요청이나 부탁은 메일 하나를 자질구레하게 쓰는 것보다 간단한 일이 더 많다. 간단하지만 귀찮은 일, 역시나 잊을만하면 사람들은 9만 원씨를 떠올린다.
80개의 의자를 옮기기 전 날, 이 주차권 소동 때문인지 한 층 더 열기 가득한울화통이 터지는 저녁을 보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귀찮더라도 나 혼자서 해낸다. 그런데 80개의 의자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4개의 본부가 모여 80명의 사람들이 2시간 동안 미팅을 진행한다. 그리고 80개의 의자는 미팅 장소를 대여한 측이 옮긴다.
"그래, 남자 직원 한 두 명 데리고 가서 옮기면 되겠네."
내 상사가 조금 더 미워졌다.
그럼 나는 누구에게 이 '부탁'이라는 걸 강요할 것인가?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묵묵히 땀을 흘리며 수신인을 숨겨 메일을 작성했다. 장마철 더위와 남이 퍼다 준 더위가 얼굴과 목에서 기름과 땀이 되어 묵묵히 흘러내린다.
타인이 내손을 귀하게 여겨주길 바라는 만큼 나도 타인의 손이 귀한 것을 안다. 남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나는 숨은 참조로 8명에게 메일을 보냈다. 누가 몇 명이 해당 메일을 받는지 알 수 없게, 그리고 부탁이라는 것은 거부의 의사도 응당하다는 메세지와 함께.
단 한 줄의 강요도 작성하지 않았다. 뻔히 보이는 수신인 리스트에서 혼자만 빠졌을 때의 뒷감당을 고민하며 불편함으로 맘에도 없는 수락을 하길 바라지 않았다. 몸을 써야 하는 일이라 더더욱 그랬다. 나 하나 편하자고 손 벌리는 그 사치스러운 혼자만의 편안함은 너무도 진절머리 났다. 하기 싫지만 들어줘야 하는 강요를 부탁이란 말로 포장하지도 않았다.
'도움'은 부탁받는 사람이 수락하여 선택할 일이지 부탁하는 사람이 강요하는 게 아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이것을 나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이런 미적지근한 '요청'의 댓가로 내일 당장 80개의 의자를 혼자 옮긴다 해도 나는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온몸에 뭍은 타인이 퍼다 준 더위를 하얀 비누 하나로 말끔히 지워냈다. 오늘 밖에서 가져온 것을 남김없이 뽀득뽀득 씻어내고 싶었다.
이런 날엔 조금은 건조한 몸이 수면의 질을 올려 줄 것이다. 바싹 마른 아사면 파자마를 꺼내 입고 폭풍우가 쏟아지는 집에서 쉬이 오지 않을 잠을 청했다.
설치 조형물, 작품 제목: 80번의 구타
오전 9시 15분, 대관장소로 향했다.
혼자서 80개의 의자를 옮기는 것을 미리 맛볼 겸 의자 간격도 확인할 겸, 8개의 의자를 깔았다. 수레에서 내려서 옮긴다. 간격을 맞춘다. 그리고 되뇌었다.
'나는 생각이 없다. 나는 감정이 없다'
생각도 감정도 유별나니 이걸 혼자 다 옮기고 어느 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 울 것 같아서 낸 묘책이다. 미리 파워포인트와 장표를 화면에 띄우며 발표내용을 점검할 부서에서 곧 사람들이 오기로 했다. 내가 메일을 보낸 수신인에선 제외된 소규모 부서였다. 이미 해당 부서는 자료 및 사운드, 각종 시설 체크로 할 일이 많다.
9시 20분, 메일을 받은 사람이 왔다. 거절해도 여러분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써놓곤 갑자기 얼굴이 화색이 된 게 부끄러워 얼른 미소를 감추었다.
나는 사실 저 사람은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보기 드물게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 남에게 자신의 일을 미루지 않는 몇 안 되는 상식적인 사람이었다. 10분이나 일찍 온 그 사람이 무척 고마웠다.
9시 30분, 메일을 받은 또 다른 사람이 내가 수신인에 포함하지 않은 자기 부서 사람을 대동하고 대관장소에 나타났다.
"에헤이, 비키라. 발 다친다."
투박하게 아무 말 없이 80번의 구타에 동참해 주었다. 나는 단 한 사람이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메일에 명시했던 9시 30분이 되자, 메일을 받지 않은 또 다른 사람이 자기 부서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왜 전화를 안 받아! 혼자 먼저 할까 봐 일찍 왔는데!"
누가 오고 누가 오지 않고 신경 쓰거나 비난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나는 생각이 없고 감정이 없다고 되뇌었는데, 메일을 수신한 모든 사람들이 다 왔다. 메일을 받지 않은 사람을 데리고, 애초부터 부탁받지 않은 사람들을 모두 끌고서.
진행 시간 20분 전, 이미 모든 세팅을 마쳤다.
강요 없는 부탁의 힘이 선택권을 묵살한 그 어떤 요청보다 위대하다고 믿고 싶다.
아침부터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제한된 집중력을 고도로 발휘하여 고된 노역까지 마치니 남은 하루가 고역이었다.
우산 쓸 기력이 없어보슬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또 어제의 주차권 소동을 생각하며 혼자 씩씩 열을 올렸다가 80번의 구타를 감당해 준 사람들을 떠올리며 식히기를 반복했다.
골목길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금세 하늘이 맑아졌다.
거실에 앉아 묵묵히 흐르는 땀을 버티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조용히, 더위에 맞서지 않고 무던하게, 냉장고에서 맥주 캔 하나를 꺼냈다. 창문을 열어 마른바람으로 환기를 시키며 찰나를 즐긴다. 내일이면 허리가 좀 아프겠지만, 금방 나아질 것이다.
온 얼굴과 목의 땀구멍에서 뿜어내는 땀방울이 끈끈하게 목덜미를 스쳐 블라우스를 적신다. 흐르는 땀이 멎으면 그때 씻어내면 된다.
불도 켜지 않아 종로 야경이 눈에 들어올 즈음 창 밖에서 때 이르게 귀뚜라미가 울었다. 도심한복판에선 말복은 지나야 듣는 걸 7월 중순에 들으니 홀로 시골 마을에 온 것 같다.
욕실 바닥에 락스를 뿌려 솔로 구석구석 닦는다.
세제 거품이 바닥을 타고 하수구로 내려가면 마침내 나를 닦는다.
하얀 비누하나로 어제 그랬듯, 머리와 얼굴 몸 구석구석 유분과 염분을, 오늘의 더위를 닦아낸다.
성난 더위를 몸에서 지운다.
말끔하게 지워내고 비워내고 80번의 구타를 함께 감당해 준 사람들로 새로이 채워나가면 된다. 도심 속의 시골 같은 이 낡은 집을 새로이 나로 채운 것처럼.
바싹 마른 아사면 잠옷을 걸치고 거실로 나오니 제법 시원하다. 창문 밖에선 서늘한 바람이 이제는 딱히 거슬리지 않는 오래된 나무 냄새를 이고 들어온다.
감히 한 여름에 홀로, 벌써부터 귀뚜라미가 우는, 습하고 더워딱히 좋아하지 않는 이 계절을 이미 훌쩍 뛰어넘은 저녁이다.